강원도 방태산 자락의 '아침가리골' 계곡 트레킹 이야기‘천혜의 은둔처’ 3둔4가리에 들다
걷기만 해도 땀방울이 송송 맺히니 벌써 여름의 중심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가는 세월을 배낭으로 막고 오는 계절을 스틱으로 세우고자 방태산 자락에 있는 아침가리골로 계곡 트레킹에 나섰다. 말이 좋아 트레킹이지, 실은 물놀이에 다름 아니다.
어릴 적 여름이면 매일 냇가에 나가 멱을 감았고, 겨울이면 얼어 빙판이 된 냇가에서 신나게 썰매를 탔다. 속옷 바람으로 냇가 수문 위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깨진 유리병에 발가락을 베기도 하고, 빙판이 녹을 즈음 썰매를 타고 그 위를 지나다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물속에 빠지기도 했다. 불을 피우고 양말을 말리다가 구멍을 내 어머니에게 혼이 나던 기억도 이젠 입가 웃음으로만 남았다. 세월은 가도 추억은 남아 기억은 늘 고향 언저리를 헤맨다.
산신령의 계시 받은 산삼이 발견된 곳에서 솟는 방동약수
머릿속에 남은 추억의 편린들을 꺼내 들고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방동약수 삼거리에서 버스에서 내린다. 주변의 비탈은 온통 진초록이다. 강원도의 비탈은 모두 고구마나 감자밭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온통 콩밭이다. 방동약수 삼거리에서 좌측으론 방동약수터, 우측은 방동고개로 오르는 길이다. 약수터를 앞에 두고 왼편엔 민박집이, 오른쪽은 사찰 약수사가 자리를 잡았다. 약수사 확성기에서는 여느 절에서나 울려 퍼지는 염불소리가 가득하고, 식당 2층 민박집에선 궁벽한 바닷가 모래사장 한켠에 쳐 놓은 듯한 천막과 해변나이트클럽에서나 울려 퍼질 70~80년대 곡조의 드럼과 기타 소리로 요란하다.
방동약수는 어느 착실한 심마니가 꿈 속 산신령이 알려준 자리에서 잎이 6개 달린 ‘육구만달(심마니들의 은어로, 해발 800m 이상 되는 고지대에서 자란다는 800년 이상 묵은 산삼)’을 발견한 곳에서 솟는 약수다. 약수(藥水)는 이름 그대로 ‘마시면 약이 되는 샘물’로, 예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약수는 설악산 오색약수와 평안도 삼방약수를 꼽았다. 하지만 방동약수에도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미네랄이 풍부하고,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엄나무 성분까지 듬뿍 담겼으니 약수 중엔 특급이라고 할 만하다. 그 맛은 마시기 전 집어든 녹슬고 생채기투성이의 플라스틱 바가지에서 이미 결정됐다. 씁쓸하고 찝찔한 김 빠진 맥주 맛 또는 김도 빠지고 단맛도 빠진데다 살짝 데워진 사이다 맛이 난다. 안내문에는 “탄산과 철분, 망간, 불소 등 다량의 미네랄이 함유되어 위장병과 소화기장애에 좋다”고 쓰여 있지만, 입에 머금은 약수를 꼴깍 마실까 아니면 도로 뱉어낼까 고민하게 된다.
300년 먹은 엄나무 밑 바위틈에서 퐁퐁 솟는 약수터의 석축 위로 정자를 지어 동네 어르신들의 휴식공간을 마련했으니, 산신령께선 신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안정까지도 책임지는 약수터를 방동리에 주신 모양이다. 5대의 버스가 한꺼번에 도착한 탓에 산삼을 우려낸 약수를 맛보고 아침가리골로 향하려는 이들로 약수터가 시끌벅적하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 옥황상제, 둘이면 신선, 셋은 마을 느티나무 아래, 그 이상이면 시장바닥”이라더니, 현재 이곳 상황이 꼭 시장바닥이다. 누군가 이런 상황을 빗대 “산신령께선 만인을 위한 약수를 널리 알리기 위해 1인을 위한 산삼을 미끼로 썼다”는 제법 그럴듯한 얘길 한다.
방동약수터 우측 산기슭을 오르니 울울창창한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을 지나니 산 속이 아니라 방동고개로 향하는 임도가 보인다. 뙤약볕 아래에 콘크리트 임도를 오르려니 죽을 맛이다. 임도라지만 농부들이나 마을사람들의 통행은 별로 없고, 방동약수 삼거리에서 하차한 등산객들을 방동고개까지 실어 나르는 1톤 트럭만이 분주하게 오갈 뿐이다. 트럭 앞 유리창에는 농가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특혜인 휘발유 보조금 혹은 면세 자동차를 증명하는 딱지가 붙었다. 비록 여름 한철 장사지만 국민혈세로 보조금을 받아 허가 없는 대중교통 사업을 하는 셈. 한양도성 일부 몰염치한 벼슬아치들이 특권과 기득권을 이용해 각종 특혜나 편법의 술수를 부려대니, 전국 방방곡곡 일반 국민들까지 법을 어기는 일이 독버섯처럼 번진다.
굳이 세월호 사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편리함을 이유로 탈법과 불법에 동승했던 자세에서 철저한 준법정신을 따르는 자세로 고칠 때도 됐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다. 누가 먼저 변화의 바람을 세차게 맞아야 할지 말만 안 할 뿐, 다들 알고 있다.
몸을 13번 틀어야 빠져나올 수 있는 아침가리골
1시간 이상 임도를 오른 끝에 드디어 방동고개(방동리고개, 848m)에 당도했다. 이곳까지 오르는 동안 누구 말대로 욕을 세 가마니쯤은 토해냈다. 그 욕 중에서 1가마니는 뙤약볕에게, 또 1가마니는 콘크리트길에, 마냥 오름길에도 1가마니를 나눠줄 요량이다. 방동고개엔 산림감시초소, 차단기, 음료수 노점이 있다. 길가 그늘에 앉아 오름길이 끝났다는 기쁨을 서로의 눈빛으로 나눈다. 이제 이곳에서 20~30분 정도 내려가면 아침가리골을 상류와 하류로 나누는 조경동다리(조경동교)가 나온다.
아침가리골은 오지여행이나 계곡 트레킹을 좋아하는 트레커라면 여름철 꼭 들르는 필수 코스다. 물론 예부터 유명했던 무주구천동 계곡이나 요즘 각광 받는 덕풍계곡, 덕산기계곡 등 여러 유명 계곡들도 있지만, 계곡 트레커들은 유난히 아침가리골을 많이 찾는다. 아마 3둔4가리(三屯四耕)라는 독특한 지명이 ‘순수한 자연 속의 오지’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인 듯하다. 둔(屯)은 ‘머물 수 있는 평평한 산기슭(둔덕)’, 가리(耕)는 ‘밭을 갈 수 있는 좁고 긴 골’을 의미한다. 3둔4가리 중 3둔(살둔, 달둔, 귀둔)은 내린천 상류의 홍천 내면에, 4가리(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가리)는 방태산 북쪽 인제 기린면에 위치한다.
홍천과 인제에 분포된 3둔4가리는 조선 후기 예언서 <정감록>에서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의 비장처(秘藏處)로 꼽는 곳이다. 때문에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란 후 단종을 옹호했던 문신들이 목숨을 부지하고자 이곳으로 숨어 들었다는 설, 그 후로 조정의 당쟁에서 패해 쫓기는 문신과 반역을 품었다고 고변을 당한 벼슬아치들, 포졸에게 쫓기는 도둑놈 등이 흘러 들어와 화전을 일구고 살아갔다는 설 등이 전해진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도 국군과 인민군이 들어오지 않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니, 그야말로 ‘천혜의 은둔처’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국경 산정(山頂)에 봉화가 오르고 발 빠른 파발마가 한양도성으로 갈기를 휘날릴 때, 도성 안 양반사대부들은 이를 미리 알아채고 깊은 산골로 줄행랑을 쳤다. 조선시대 벼슬을 탐하던 선비들의 이상향은 오직 대대로 부귀영화와 목숨 하나 보존이었다. 벼슬아치 출신 선비들이 쓴 <택리지>(이중환) <격암유록>(남사고)과 작자 미상의 식자(識者)가 쓴 <정감록>을 보더라도 전쟁이나 난리를 피할 수 있는 곳, 양반사대부가 몸을 숨기기에 좋은 곳, 삼재팔난불입지처(三災八難不入之處), 십승지지(十勝之地) 등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곳만을 찾아다니며 기록했으니, 조선의 일부 지도층에 아쉬운 생각이 간절하다.
조경동다리는 아침가리골 상류와 하류의 분기점이다. 사가리 중 가장 멋진 곳은 적가리요, 가장 깊고 긴 골은 아침가리골로 알려졌다. ‘아침나절 밭을 갈면 곧 해가 떨어져 더 이상 밭일을 할 수 없는 곳’이라는 아침가리골. 어여쁜 우리말 ‘아침가리’가 한자 이름인 조경동(朝耕洞)으로 바뀐 건, 우리 것이라면 천하게 생각하고 업신여겼던 유자(儒者)들의 지식자랑 때문이다. 다리를 건어 남쪽으로 내려가면 명지가리와 조경동약수가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 월둔(달둔)고개를 넘으면 바로 홍천인데, 홍천 내면에 3둔이 자릴 잡았다.
우리 일행은 다리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었다. 평지라곤 이곳밖에 없는데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면 정확하게 점심시간이 되니, 트레커들은 계곡 트레킹에 나서기 전 이곳에서 시장함을 해결한다. 시절이 바뀌니 아침에만 잠시 해가 비췄다는 아침가리골에도 2시가 가까워지는 시간까지 중천에 해가 떠있어 한여름의 열기가 계곡물을 달구는 중이다.
아침가리골은 상류보단 조경동다리에서 방태천(진동계곡)과 만나는 합수곡까지 이어진 하류가 오히려 더 적막하고 고요한 자연미를 간직했다. 하류는 직선거리론 3km지만, 구불구불한 곡선거리론 7km의 계곡 트레킹 코스다. 진동1교가 있는 갈터(진동1리) 마을회관까지 3시간 이상 걸리는 계곡 트레킹은 처음부터 바로 물속으로 들어간다. 누군가 “아침가리골 트레킹은 물속으로 또 물가 길로 13번이나 몸을 틀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풀장역할을 하는 아침가리골엔 물을 담은 담(潭)들이 지천으로 널렸다. ‘물을 건너는 곳엔 징검다리가 있거나 겨우 무릎까지 물이 올라오겠지’하는 생각을 했다면 그건 큰 착각이다. 지금은 물이 많이 빠졌다는데도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니 마음은 공포로 철렁거린다. 물 속 돌엔 기름을 발랐는지, 바나나 껍질을 깔아 놨는지 몹시 미끄럽다. 녹색 이끼가 낀 암반이나 큰 돌을 밟으면 어김없이 미끄러져 가방이나 카메라가 물속으로 풍덩. 때문에 계곡 트레킹 시작 전 “배낭 속 갈무리를 잘 하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들었다. 물속을 걷는데도 요령이 있다. 걸을 땐 스케이트 타듯 발바닥으로 계곡바닥을 훑으며 가고, 되도록이면 자갈이나 작은 돌을 밟아야 한다.
풀장이 연이어 나타나고 그곳을 빠져 나오면 자갈이 깔린 얕은 곳을 지나다가 다시 모래가 깔린 깊은 풀을 만난다. 물결은 잔잔하고 물의 온도 또한 적당하니 땀이 나오거나 더위를 느낄 새가 없다. 더우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자연의 소(沼)에 몸을 맡기고, 이내 시원해지면 스틱으로 중심을 잡곤 걷고 또 걷는다. 계곡물이 트레커들의 무수한 발길에 차여 이리저리 물방울을 튀겨댄다. 튀긴 물방울에 햇빛이 반사되니 마치 은빛 날치가 물을 박차고 하늘로 나는 듯 반짝인다.
햇볕이 비추니 산은 붉게 물들고, 물은 밝고 맑다는 뜻의 산자수명(山紫水明). 아침가리골 산수의 풍취와 흥취는 산자수명이긴 하나, 자구의 의미로만 본다면 산록수명(山綠水明)이 더 어울린다. 계곡 바닥의 돌과 바위의 모양에 따라 물 표면엔 각양각색의 파문이 일렁이니,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을 뜻하는 명경지수(明鏡止水)와는 차이가 있다. 계곡은 출렁이는 파문을 따라 남녀 모두 왁자지껄하고, 물길 또한 속세를 따라 호호탕탕 일색이다.
한여름에도 가을준비를 하고 있는 나무들
계곡물은 구불구불 유유히 흐르며 제법 멋에 겨워 여유롭다. 그러다 갑자기 계곡이 좁아지면 날렵한 물살이 우당탕탕 소릴 내며 괴물로 돌변한다. 얌전한 사람이 한번 폭발하면 더 난폭해지듯, 아침가리골 협곡 역시 제법 거친 성정을 보여준다.
아침가리골에 많은 인파가 몰리다 보니 사람들의 옷차림도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아웃도어 제품들이 점점 고급화, 고가화가 되는 이유는 속속 개발되는 최첨단 기능의 섬유가 한몫을 하겠지만, 우리네 고유 정서인 과시욕 그리고 명분욕 또한 큰 몫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못 먹어도 고(Go)”라는 허세를 부려야 남이 날 멋지게 봐주고, 또 일확천금의 쪽박정신도 허장성세에 가담한다. 아침가리골도 시대에 발을 맞추느라 그런지 오후 햇빛이 여전히 계곡을 따라 다닌다. 요즘과 같이 바쁜 시대에 오전에 잠시 해가 들고 곧 진다면, 이곳 또한 세상에 적응치 못하고 지금도 옛 3둔4가리로 은둔자들의 거주처로나 묻힐 일이다.
트레킹 시작점보다 더 하류로 내려오니 햇볕은 차츰 그 열기가 잦아들고, 방태천과의 합수곡에 가까워졌는지 계곡물도 점차 열기를 잃고 서늘해졌다. 물이 차가워지니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햇볕을 받는 물가로 인파가 몰리는 걸 보니, 새삼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게 느껴진다.
아침가리골은 강원도 산하 중 가장 먼저 낙엽이 떨어지는 산골이다. 설악에 단풍이 한창일 때면 이곳의 나무들은 월동준비를 마치고 앙상한 가지들만 수두룩하고, 강원도 명산에 단풍놀이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면 아침가리골 수면 위엔 나무들이 흘린 형형색색의 낙엽만이 뒹굴고 대지는 낙엽으로 동면에 쓸 이불 속 솜을 튼다고 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금, 계곡 가장자리 나무들은 사람이 눈치를 못 채게 가을준비를 하고 있다. 진녹색 단풍나무들이 계곡을 향해 휘늘어지고, 자신을 드러낼 세월이 곧 온다는 듯 치장하기에 분주한 여름 한낮이다.
옥빛 물색이 자욱한 ‘뚝밭소’엔 물놀이객들로 가득하다. 바위 점프대에선 연신 불룩 나온 배와 물이 맞부딪히며 뭔가 깨지는 소리가 진동해 우릴 기절초풍케 하고, 또 어떤 이는 날렵한 다이빙 포즈와 멋진 입수자세로 트레커들의 박수를 받기도 한다. 거의 종착점에 다다랐을 무렵 풀에 몸을 담그니 물이 많이 차다. 햇볕도 점차 열기를 잃어가니 그늘 속을 통과할 땐 더욱 물이 시렸다. 지나는 트레커들도 이곳을 놓치기 싫음인지 아니면 아쉬움인지 물놀이에 여념이 없다.
그 많던 계류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계류 위 산기슭 가장자리 길을 따라 가니 갑자기 불쑥 솟은 바위가 나타난다. 그렇지 않아도 ‘방동리 선바우(선바위)’가 보고 싶었는데, 원거리라 가질 못했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솟은 바위’로 그 아쉬움을 달랜다. 선바위(입암 또는 입석)는 불교에서 말하는 선암(禪岩)이 아니다. 불교의 고승대덕이나 선지식들이 자리를 잡고 수행 정진했던 좌선대인 선암은 원래 우리 고유의 토속신앙 중 하나인 바위토템이었다. 선암은 여러 바위토템 중 기자석(祈子石)의 일종인 손암(孫岩)이나 선돌(선바위) 등의 음운변화요, 그 훈(訓)의 변질이다. 물론 솟았다고 다 선바위는 아니나, 그래도 솟은 바위에 스민 신성한 장소라는 의미는 비슷하리라 본다. 풍요를 가져다주는 노동력이 절실한 농경시대에 불임여성들에게 아기를 점지해주는 신보다 더 신성한 신이 있었을까?
계곡가를 걷고 있지만, 주변에 큰 키의 나무들이 숲을 일구니 산 속을 걷는 느낌이다. 물가에서 습기를 많이 먹었으니 피톤치드로 습기를 정화시키란 얘긴지, 아리송한 느낌을 주는 아침가리골이다. 햇빛은 강렬하나 나뭇잎에 부딪혀 한번 굴절되어 들어오니 눈이 덜 부시다. 나뭇잎 속에서 보는 햇빛, 청하(靑霞)라는 의미로 답하리라.
계곡 끝에 밧줄이 걸려있는 걸 보니 수량이 많을 때면 계곡을 건너기가 만만치 않은 곳인 듯하다. 저 줄이 지금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줄이 되었듯이 세상만사 제 역할이 끝나면 매정한 찬바람이 끝도 없이 불어온다. 어른들의 “세월을 쪼개 선업(善業)을 쌓고, 능력을 키우며, 좋은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이 빈말이 아님을 코앞에 닥쳐야 깨닫는다. 이내 몸이 세파에 시달려 백발이 됨에 그제야 자각됨을 뉘 탓을 하랴.
골짜기는 완전 하류로 방태천과의 합수점을 향해 성큼 다가선다. 시끌벅적하던 트레커들이나 계류 또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침가리골은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떠나는 트레커들의 잔상이 아쉬웠던 모양인지 계곡은 여전히 옥빛 물결과 푸른빛을 활짝 발하고 있다. 웃고 떠들던 트레커들 역시 회색빛 탁류와 같은 일상으로 되돌아가야지만, 아침가리골을 떠올리며 숨을 쉬고 살아갈 것이다.
아침가리골 트레킹은 인제 군내버스의 종점인 기린면 진동리(갈터) 마을회관 앞에서 끝이 난다. 갈터마을 방태천 주변엔 캠핑을 나온 피서객들의 텐트로 울긋불긋하다. 아무래도 가을이 오긴 올 모양이다. 봄엔 여름준비, 여름엔 가을준비 선행학습이 습관이 됐다. 방태천을 나와 정자 쉼터에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어 물을 짜낸다.
정자 앞에 놓인 비각이 눈에 띈다. 약 200여 년 전 이 마을 사람이던 엄경홍의 공덕을 칭송하는 공덕비를 담은 비각이다. 당시 나라에서 마을에 세금을 너무 많이 부과하자 기린현 사람들의 삶은 점점 척박해졌다. 방태천과 내린천 등에서 잡은 물고기에도 세금을 붙였는데 물고기 사투리마다 세금을 따로 부과해 이중삼중의 세금을 물렸다고 한다. 이를 항의하고 부과된 세금을 철회시키고자 엄경홍 등 12명으로 구성된 항의단이 한양으로 떠났다. 하지만 두려움과 피로 때문에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고, 결국 엄경홍 혼자 한양으로 올라가 관리들을 상대로 세금감면을 촉구하여 결국 나라로부터 세금을 반으로 줄여갖고 왔다는 일화다. 마을에선 엄경홍의 공을 기려 비석을 세웠으나, 세월이 흐르자 비석의 명문(銘文)이 마멸되어 지금은 글 없는 몰자비만 비각 안을 지키고 있다.
트레킹 종점 갈터마을에서 차량으로 한 2~3분 정도 거리에는 송어양식장이 있다. 일행 30여 명이 둘러 앉아 송어회와 매운탕을 먹고 상경 길에 올랐다. 평창 송어가 유명하니 평창 인근인 이곳까지도 송어 맛을 즐기는 식도락가들로 들끓는다. 송어회 맛을 아직 잘 모르는 탓일까? 평창 송어나 서울 근교 송어나 그 맛이 그 맛이다.
사진 전종현_산 이야기 연구소 소장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부동산"은 공인중개사에게.... "세무"는 세무사에게 "회계"는 회계사에게 "건축설계"는 건축사에게...전문가에게 상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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