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과 함꼐 떠나는 즐거운 산행 - 치악산(1288m)
동행취재 영원과 함께 떠나는 즐거운 산행-치악산(1288m)
금대리야영장~영원사~아들바위~남대봉~상원사~금대리
글 주성희 기자·사진 양계탁 기자·협찬 (주)영원무역
치 떨리고 악쓰며 올라가니 단풍이 손짓하네
금대리야영장~영원사~아들바위~남대봉~상원사~금대리
글 주성희 기자·사진 양계탁 기자·협찬 (주)영원무역
치 떨리고 악쓰며 올라가니 단풍이 손짓하네
우리나라의 등줄기인 백두대간 오대산에서 서남향으로 분기되어 뻗어나온 곳에 위치한 치악산(1288m)은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강원도 원주시와 횡성군, 영월군에 걸쳐 있다. 비로봉과 매화산, 향로봉, 남대봉까지 해발 1000m 이상의 준봉들로 연결된 치악산은 원주를 배경으로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예로부터 '동악 명산'이라 일컬어져 왔다. 또한 강원권의 교통 요지인 원주시에 인접해 있고 수도권에서 당일 등산이 가능한 거리에 위치하여 사철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이다. 특히 가을에는 단풍이 고운 산으로 유명해 성황을 이룬다. 1984년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치악산국립공원에는 비로봉 미륵불탑, 상원사, 구룡사, 성황림, 사다리 병창, 영원산성, 태종대, 입석대 등 산의 역사와 관련 깊은 '치악 8경'이 있다.
섬강이 어디메뇨 치악이 여긔로다
옳다구나. 가을 치악이다! '영원과 함께 떠나는 즐거운 산행' 일정이 잡힌 후 입버릇처럼 송강정철의 <관동별곡> 중 원주의 비경을 표현한 한 구절을 중얼거리고 다녔다. 치악산은 이 즈음이면 단풍이 곱게 물들어갈 산이다. 처음 가는 치악산 산행에 잔뜩 부풀어 '치악, 치악' 노래를 부르며 산행일을 기다렸다.
그런데 주변에서 '치가 떨리고 악에 받혀 치악산'이라며 엄포를 놓는다. '악'자가 끼어 산세가 험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과연 어느 정도일까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전날 잠을 설치고 10월 13일 오전 7시 치악산으로 향한다. 출발시간이 일러 제때 못 일어날까봐 걱정을 하고 잤더니, 출발 시간에 눈을 떠 버스를 놓치는 꿈까지 꿨다. 치악산이 무엇이기에 이리 마음 졸이나. 그러나 버스가 출발하자 다시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버스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을 거쳐 고속도로에 올라 치악산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10시 반경 들머리인 금대리야영장 주차장에 도착한다.
일행이 산행채비를 하는 동안 인솔자가 "영원사에서 남대봉 구간이 치악산에서 가장 험한 코스"라며 "빨리 정상을 밟는 게 산행의 전부는 아니니 무리하지 말고 치악산의 경치도 감상하며 천천히 오르자"고 안전한 산행을 당부한다.
야영장에서 영원사로 가는 좌측길로 들어서 산행을 시작한다. 요즘 태풍이니 뭐니 해서 툭하면 비가 왔는데, 날도 잘 잡아 모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 주말에 올해 첫 단풍을 볼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왼편으로 흐르는 냇물만 봐도 히죽, 이제 막 옷을 갈아입으려고 머리가 울긋불긋한 양지의 나무 한 그루만 봐도 히죽. 그저 좋아서 자꾸만 입이 벌어진다.
30여분 정도 계곡을 옆에 둔 임도길을 따라 걸어 올라오자 영원사 입구와 상원사로 길이 나뉜다. 일행은 잠시 쉬며 후미를 기다렸다가 오른쪽 상원사 방향으로 난 나무다리를 건넌다. 왼쪽은 영원사와 고려 충렬왕 때 침입한 원나라를 원주 백성과 원충갑이 함께 적군을 물리친 유서 깊은 격전지인 영원산성으로 향하는 길이다. 양길과 궁예가 웅거했던 곳이기도 했던 영원산성은 현재 4km 정도 석성이 보존되어 있다.
나무다리를 건너자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숲이 우거진 골짜기 속은 그늘지고 계곡물이 흘러 시원하다. 영원골 안의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와 맑은 물을 한눈에 담으려고 사방으로 고갯짓하다 발목을 삐끗한다. 그 순간 '아차' 싶다. 1000m가 넘는 봉우리를 무슨 수로 초행길에 다 알고 가겠다고 욕심 부렸던가.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천천히 낙엽 깔린 길 위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가지 않아 아들바위 앞에 이른다. 이 바위에서 득남하기를 빌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아들바위라 한다. 커다란 아들바위는 경사지고 벽면이 움푹 파여 동굴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 틈 여기저기 아들을 기원한 흔적인 돌무더기들이 얹어져 있다.
아들바위를 끼고 돌면 철계단이 이어지고 다리가 나온다. 제법 물살
이 세게 떨어지는 작은 폭포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소를 구경하며 서너 개의 다리를 건너서 경사가 심한 철계단을 오르느라 숨이 차다. 한숨 돌려볼까 하지만 진짜 오르막은 그때부터였다.
앞만 보고 너덜길을 오른지 20여분. '상원사 1.3km' 이정표가 있는 큰 바위 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일행을 기다린다. 계속된 바윗길 오름에 선두와 후미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참가자들이 사과를 나눠 먹으며 한 말 중 그 순간을 가장 잘 표현한 한마디는, "아따, 힘들다."
일행들이 어느 정도 모이고 땀이 식어 한기가 몰려오자 다시 출발한다. 가팔막에 발걸음을 떼는 모양새가 묵직해 보이는데 유독 한 참가자만 가뿐하게 오른다. 앞서 나간 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안정봉도 붙잡고 로프도 잡으며 40여분을 올라 도착한 안부. 날쌘 참가자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그는 '영원과 함께 떠나는 즐거운 산행'의 두 번째 산행지였던 작년 2월 한라산 산행부터 빠짐없이 참가해온 계영철씨다. 그는 "치악산 산행은 4번째인데 오늘 코스는 별로 힘들지 않은데요"라고 말해 다른 참가자들의 입이 딱 벌어지게 한다.
한편 '숨은벽산악회' 회원 5명과 함께 참가한 장훈씨는 "능선을 타야 시야가 트이고 오르내리는 재미도 있는데, 이쪽 코스는 계곡을 따라 계속 오르막길만 이어지니까 지루한 면이 있다"며 "힘든 것보다 지루해서 '악'자가 붙은 모양"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의 취향은 '북한산 바위맛'인 듯.
단풍옷 갈아입은 봉우리에 바치는 시 한 수
안부에서 숨을 고르고 왼쪽길로 올라간다. 여기서부터는 능선으로 올라타 산길이 편안하다. 부드러운 능선 오르막을 얼마 가지 않아 갈림길 직전 왼쪽으로 난 샛길로 들어가니 그제야 시야가 탁 트인다. 시원한 조망과 단풍에 목말랐던 참가자들이 붉게 물든 용안을 배경으로 저마다 기념사진을 찍는다. '용안'이란 우측에 우뚝 솟은 바위봉으로 임금의 얼굴을 닮았다 하여 '어두상'이라는 이름이 있다.
"아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돌아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치악산 단풍맛을 한 입 베어 문 장훈씨 입에서 만해 한용운의 시가 줄줄줄 쏟아져 나온다. 그가 재치 있게 읊조리는 '님의 침묵'을 들으며 10여분 정도 능선길을 더 밟아가자 또 다시 왼쪽으로 난 샛길이 있다. 영원사~남대봉 코스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그렇게 학수고대했던 가을 치악이 여기 있었다. 이제 막 붉게 물들기 시작한 숲은 발간 홍조를 띈 새색시 얼굴처럼 마냥 곱디곱다. 푸른 숲 깨친 단풍 물결이 찰랑찰랑 가슴 속에 차오른다. 치악산의 원래 이름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 하여 '적악산(赤岳山)'이었다.
적악을 가슴에 품고 남대봉 정상에 이른다. 정상은 잡목과 안개에 가려 전망바위만큼 조망이 좋지 않지만 향로봉을 지나 입석대를 거쳐 저 멀리 비로봉까지 이어진 능선을 확인할 수 있다.
남대봉에서 간단한 행동식으로 점심을 먹고 상원사로 내려선다. 상원사는 구렁이에게 잡힌 꿩을 구해준 선비가 그날 밤 구렁이의 처에게 잡혀 위기에 처해 있자 꿩이 몸을 던져 종을 울리게 해주었다는 '은혜 갚은 꿩' 이야기의 근원지다. 이 꿩의 보은 설화로 인해 원래 적악산이었던 이름이 꿩 치(雉)자를 써 '치악산' 바뀌게 된 것. 경내에서 설화 속에 나오는 동종도 확인하고 대웅전 앞에서 치악산 남부 일대의 시원한 조망도 즐기며 절을 둘러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상원사는 1100m 고지에 자리해 산자락이 단풍에 물들거나 설화가 만발하면 장관이 펼쳐진다.
한 보살이 절 앞 바위틈에서 솟아오른 샘물로 목을 축일 것을 권해 고맙게 받아 마시고 일주문을 나선다. 들머리였던 영원사를 다시 날머리로 잡고 원점 회귀한다. 올라올 때는 가팔막에 숨이 차 보이지 않던 아름다운 경치가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한가롭게 영원골에서 비경을 발견해가며 천천히 하산한다.
8월 월출산 산행에도 참가했던 이용주씨는 "월출산 역시 암릉이 험하지만 조망이 탁 트여 기암 구경으로 고된 점을 잊을 수 있었는데, 남대봉까지 오르는 길은 숲이 우거져 경치가 잘 보이지 않아 힘들었던 것 같다"고 산행 소감을 이야기한다. 이에 본지 '엔조이마운틴' 필자이기도 한 노만우씨는 "오르막이 가팔라 힘도 많이 들었지만 전망바위에서 본 단풍은 가을 정취를 물씬 풍겨 아름다웠다"고 한다.
참가자 전원이 하산한 시간은 5시경. 온산이 붉게 타오르는 만산홍엽은 아니었지만 가을 치악산이 어찌 물들어 가는지는 봤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언제나 그곳에 있는 산, 또 오면 될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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