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페이스와 함께 떠나는 100대 명산 주왕산
주왕산(720.6m) / 상의매표소∼촛대봉∼칼등고개∼후리매기∼학소대∼대전사
글·사진 오상훈
푸른 땅에 우뚝 솟은 붉은빛 영산
대전사 일대가 온통 오색연등으로 불을 밝히는 4월 초파일 무렵이면, 세밭골과 사창골 허리를 가로질러 굽이도는 주방천 계곡가는 으레 붉은빛으로 물들어간다. 전해 내려오기를, 쇠잔한 조국의 재건을 꿈꾸며 당나라에 항거하다 이곳에서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는 진나라의 왕손 주도의 혼령이 봄마다 핏빛 꽃망울을 틔워 천변을 뒤덮는 것이라 했다.
덕종 12년,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도읍지 장안을 치려다 적군의 세력에 밀려 패주하던 주도는 주왕산의 험준한 산세를 방패삼아 이곳 주방천 계곡에 숨어들었다. 패배의 굴욕을 되새기며 와신상담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그는 당의 사주를 받고 활시위를 당긴 신라 장군 마일성의 발아래 쓰러지고 만다. 후주천왕(주왕)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은 주도의 피는 산비탈을 따라 주방천으로 흘러들었는데, 이듬해부터 천변 곳곳에는 전에 볼 수 없던 붉은 꽃들이 피어났다고 한다.
봄마다 주왕의 혼을 머금고 피어난다는 이 꽃의 이름은 수달래. 이야기대로라면 주왕산자락에 수달래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건 어림잡아도 천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가슴속에 주왕산을 각인시키는 원색의 계절은 비단 봄만이 아니다. 이곳을 처음 찾았던 몇 해 전 가을, 유독 붉고 창연한 빛으로 산자락을 물들이는 주왕산의 단풍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주왕의 전설을 떠올렸었다. 그의 염원이 꽃이 아니라 단풍으로 현현했다 해도 좋았을 것을, 그 빛깔 또한 매한가지 붉디붉은 핏빛이었기 때문이다.
남하하는 단풍전선을 따라 또 한 번 청송으로 향하는 길,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왕산의 모습은 까마득히 솟은 암봉이나 헌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 따위의 풍광이 아닌 원색의 빛깔이었다. '색깔로 기억된다’라는 광고 카피처럼, 푸른 소나무의 고장을 뜻하는 청송이란 지명과 산자락을 물들이는 꽃과 단풍의 붉은 빛깔은 주왕산을 단청무늬처럼 강렬한 보색의 대비로 기억되게 한 거였다. 서울에서 5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주왕산자락엔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고, 자욱한 어스름 너머로 보이는 산자락은 아직 제 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단풍구경 하려면 아직은 좀 이르죠. 아마 다음 주나 돼야 할 거예요. 한주 정도 늦춰 왔으면 좋았을 걸."
아직은 10월 중순, 숙소 안주인의 말대로 일행을 실은 버스는 단풍전선보다 일주일 남짓 먼저 도착한 셈이었다. 하지만 자못 마음이 부푼다. 꼭 붉은빛 풍광이 아니더라도 괜찮은 것이다. 깎아지른 기암계곡과 웅장한 산세, 산간오지 청송 땅에 솟은 석병(石屛)의 모습은 조금도 변함이 없을 테니까.
안개에 휩싸인 진경산수화의 비경
둘째 날 아침엔 다행스럽게 비가 그쳤다. 그리 맑은 날은 아니지만 숙소를 나서며 올려다본 주왕산자락은 따가운 가을볕 아래였다면 볼 수 없었을 태고의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대전사 앞 돌탑을 지나 산자락으로 들면서 인솔자와 산행스태프로 참가한 지역주민 박운학씨가 일행들에게 산행 일정을 일러둔다.
"오늘 산행 구간은 들머리 갈림길 왼편으로 주왕산 정상을 먼저 오른 뒤에 후리메기에서 제2폭포 제1폭포를 지나 다시 대전사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입니다. 보통 4시간에서 5시간 걸리지만 넉넉히 6시간 정도로 잡고 출발하겠습니다."
포장도로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자 길게 늘어선 행렬의 선두가 자욱한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깊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맑고 촉촉한 기운이 폐부 깊숙이까지 스며든다. 청송이란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이 지방의 삼림 대부분은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원도 산간지방의 울창하고 빽빽한 수림은 아니지만 사철 푸른 솔숲의 정화능력 덕분에 대기의 신선함은 전국에서 최고로 꼽는다.
청송은 예로부터 오지 중의 오지로 알려진 만큼 사람과 교통수단의 왕래가 드물어 식생이 풍부하고 육산과 암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산세가 웅장하기로 유명했다. 특히 오랜 세월 침식에 의해 형성된 거대한 바위협곡과 완만하고 넉넉한 품을 가진 주왕산은 육덕과 비경, 맑은 공기를 두루 갖춘 탓에 경북의 소금강 또는 낙동정맥의 허파라 불려왔다. 나무계단으로 정비된 초입구간을 지나다 멈춰서 바라본 주왕산은 운무에 휩싸인 한 폭의 진경산수화다. 대전사를 출발한 지 30분여, 나무계단이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 무렵 평평한 쉼터에서 일행을 멈춰 세운 산행스태프 이치상씨가 뒤돌아서 산 맞바라기를 가리킨다. 일행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진다.
"공짜로 보여주기엔 아까운데요, 뒤로 돌아 경치 감상하시려면 돈들 내세요."
말의 귀를 닮았다는 전북 진안의 마이산 정수리처럼 뾰족이 솟아오른 암봉들. 그 사이로 피어난 운무가 바람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모습은 한참동안이나 참가자들의 시선을 묶어둔다. 산사진 촬영을 위해 계절에 한두 번씩 동행하는 사진작가 김우일씨는 숨도 고를 틈 없이 서둘러 카메라 삼각대를 펼친다.
첫 번째 쉼터에서 정상에 이르는 길은 사뭇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며 걷는 이른바 '일품조망’ 코스다. 가을 단풍이 펼쳐 보이는 화려한 빛깔 대신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선 몸태와 치마폭처럼 일렁이는 운무의 춤사위는 일행이 주왕산 정상에 올라 매무새를 만지고 기념촬영을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남근을 상징하는 원기둥 모양의 자연석에 산 이름을 음각해 표지석을 세워둔 주왕산 정상은 생각보다 비좁았다. 스태프들이 보기에도 40여명의 일행이 다른 등산객들과 함께 불편 없이 쉬어가기엔 적당치가 않아보였던 모양. 참가자들을 불러 모은 인솔자가 기념촬영에 앞서 점심식사 장소를 변경한다.
"자리가 다소 좁기도 하고 아직 시간도 이르고 하니 점심식사는 하산길 계곡 주변에 적당한 곳을 잡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게다가 잡목 숲으로 둘러쳐져 이렇다 할 조망 또한 없는 터, 촬영을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린 일행들은 앞선 스태프를 따라 제1폭포 쪽으로 방향을 잡고 하산로로 접어든다. 하산로 초입은 구불구불 흙길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육산의 모습. 그러나 물줄기가 굵어지는 계곡에 다다르면 다시 각양각색의 바위벽들이 늘어서기 시작한다.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 5개면 17개리에 걸쳐있는 주왕산은 1976년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금의 이름으로 불린 것은 신라 말부터이며 그 전에는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 솟아있다 해서 석병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수달래 군락이 만개하는 5월 무렵과 단풍이 절정인 10월 말경이 되면 주방천 계곡 일대는 탐방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수달래를 비롯해 천년이끼, 송이버섯, 회양목은 주왕산이 자랑하는 풍부한 식생 중 4대 명물로 꼽히고 있다.
육덕과 비경 갖춘 낙동정맥의 허파
계곡가에 적당히 자리를 잡아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이 산행의 마지막 구간이자 주왕산의 백미로 꼽힌다는 제1폭포∼망월대 구간의 바위협곡을 지날 무렵, 행렬의 선두께에서 누군가 앳된 음성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아버지 안성수씨와 동행한 이날 산행의 최연소 산행참가자 초등학교 6학년 자은양이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 아버지와 함께 오른 북한산 백운대가 첫 산행이었다는 자은양은 "올라갈 때는 힘들어서 좀 짜증이 났는데 지금은 괜찮아졌다"며 "기회가 되면 다음에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다"고 말한다.
학소대, 급수대를 지나고 청정계곡을 따라 산행기점인 대전사로 내려가는 길, 이번엔 등 뒤의 누군가가 웃음 섞인 말투로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는다.
"천자산이 있는 중국 장가계나 '산수갑천하’라고 하는 계림에 못잖은 곳이 주왕산이네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해외로만 나다녔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에요."
이제 며칠 후면 단풍에 붉게 타오를 주왕산을 상상하자 문득 발걸음이 묵직해진다. 아쉬운 마음에 머뭇거리는 동안 일행들의 긴 행렬은 붉은 전설이 깃든 산자락을 빠져나와 푸른 소나무의 땅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EVENT
이달의 초청 강사
채경석 티앤씨여행사 본부장
"트레킹으로 새로운 감동을 경험해 보세요"
10월 13일 오후 8시 30분∼10시.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나들이 황토 방갈로식당’ 1층 단체실에서는 산행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채경석 티앤씨여행사 본부장의 강의가 열렸다. '세계 명산 트레킹’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그는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대륙에 분포되어 있는 각국의 명산과 기후 및 지리적 특징, 트레킹 코스 등을 소개했다.
"현재 히말라야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릴 만큼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지만 오랜 과거엔 바다 속에 잠긴 땅이었습니다. 지각 충돌로 인해 지금의 모습이 된 거죠. 이곳이 '대지의 주름’이라 불리는 이유도 이러한 형성과정에 있습니다."
2007년 <트레킹 세계의 산을 걷다>라는 트레킹 백과를 펴내기도 한 그는 아르헨티나 서부 안데스 산맥의 아콩카구아를 시작으로 자신이 경험한 세계의 오지와 명산의 풍경을 슬라이드 영상을 통해 그림책을 넘기듯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키나발루를 비롯 필리핀 마운틴플럭, 홍콩 해안 트레킹코스, 중국 옥룡설산,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과 마운틴쿡 등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질 때마다 참가자들 사이에선 탄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현재 KBS 제1라디오 토요일 생방송프로에서 '낯선 곳으로의 초대’라는 여행 및 트레킹 관련 코너를 맡아 진행하고 있는 채 본부장은 "트레킹은 전문등반과 같이 산의 정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산의 풍광을 감상하고 그 지역의 문화를 함께 경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간이 허락된다면 트레킹을 통해 국내외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흥미로운 문화를 널리 경험해 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주왕산 산행 참가 독자
민숙희 박성종 박옥미 이달환 이인숙 정순목 최성용 황경아(서울) 이난영 이용호 최형란(경기) 최성환(원주) 안성수 안자은 안정환(음성) 박운학(청송) 소영규(칠곡) 고임표(울산) 원윤경 이동관(김해)
다음 산행은 11월 10∼11일 경남 고성군 연화산입니다. 참가를 희망하는 분들은 10월 31일 정오까지 알파인뉴스(www.alpinenews.co.kr)를 통해 신청하시면 추첨을 통해 20분을 선발합니다. 다음 산행은 12월 모악산, 2008년 1월 소백산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INFORMATION
나들이 황토방 방갈로식당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대전사 입구에 위치한 '나들이 황토 방갈로식당’은 도로변 약 1,000㎡의 부지에 목조방갈로와 식당, 야외원두막 등을 갖춘 팬션형 숙박업소다. 4∼25명까지 다양한 인원이 이용할 수 있는 단층 숙소 9동과 50∼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층형 식당, 평상처럼 나지막하게 세워진 원두막 7동이 지어져 있다. 숙소 내부에는 간단한 조리시설과 냉장고 등 가전이 비치되어 있으며, 마당에서 이용할 수 있는 야외용 파라솔과 숯불바비큐그릴 등이 준비되어 있다.
객실 이용요금은 비수기 주말 기준 단체동(1실·70㎡) 13만원, 중형동(2실·26㎡) 7만원, 소형동(6실·17㎡) 5만원이다. 식당 메뉴로는 이 지방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와 달기약수로 요리하는 토종닭약물백숙(3만5천원), 토종닭약물매운탕(3만5천원), 약물닭백숙(2인·2만원), 더덕구이백반(2인·2만원), 표고버섯찌개(8천원), 해물파전(6천원), 김치찌개백반(6천원) 등이 있으며, 각종 주류와 주인이 손수 빚어 제공하는 동동주도 맛볼 수 있다. 단체 이용객의 경우 사전 주문에 따라 맞춤식 메뉴를 준비할 수도 있다.
나들이 황토방 방갈로식당
054-874-5200∼1,
이상희 대표 018-748-6075
주산지
청송군 부동면 이전동 약 3km 지점의 절골계곡에 있는 주산지는 조선 경종 1년인 1720년 하류의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이공(李公)이 땅을 파고 둑을 쌓아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길이 100m, 넓이 50m에 수심은 약 7∼8m로 그다지 큰 저수지는 아니지만 오랜 가뭄이 들어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으며, 물 한가운데 뿌리를 내리고 있는 왕버드나무와 능수버들 30여수가 울창한 수림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풍경 때문에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는 이 연못은 몇해 전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주변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계곡을 따라 별바위까지 이르는 등산로도 매우 운치 있는 경관을 자랑한다. 가을이면 굴참나무, 굴피나무, 망개나무가 빽빽이 늘어선 단풍 숲길 또한 일품이다.
대전사
고려태조 2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을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문무왕 12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으나 보광전 앞뜰의 석탑에 새겨진 조각이나 주변에서 발굴된 불상과 유물의 연대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측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라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여러 차례 화재로 사찰 건축물 대부분이 소실되고 현재는 보광전고 명부전 정도가 남아있으나 주변에 드러나 있는 주춧돌을 통해 원래의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부동산"은 "김정현"공인중개사에게.... "세무"는 세무사에게 "회계"는 회계사에게 "건축설계"는 건축사에게...전문가에게 상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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