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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 자료☆★★/★☆ 등산 여행☆

덕항산 - 산행

덕항산 - 산행

      

산 행 안개의 강을 거쳐 드러내는 산의 두 얼굴

예수원~구부시령~덕항산 정상~환선봉~자암재~천연동굴~환선굴

'안개의 강' 넘어 드러나는 산의 두 얼굴


▲ 운무는 걷혀질 생각이 없는 듯, 전망대에서도 희미한 벽의 형태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칠월이 왔다. 서구적인 개념에 의하면 7이란 숫자는 행운의 숫자다. 그 이유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이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7일째에 쉬었"기 때문이라든가, 한옥타브를 구성하는 '도레미파솔라시'처럼 7이 완전한 숫자이기 때문이라든가하는 말은 많지만 그런 부연설명 따위는 뭐 별로…. 그저 7이 행운의 숫자라 믿고 즐거운 위안을 얻는 것이면 족하다.

그래서 7월은 노래하는 달이다. 이육사가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 했듯이 이 달에는 뭔가 희망에 부풀어 오르기에 노래를 부를 만하다. 그건 7월이 1년의 반을 끝내고 후반기로 접어드는 첫 달인 까닭도 있으리라. 그래서 1년의 중간을 막 넘긴 7월에는 만물이 기운차게 생장하고 더욱이 전국의 산들은 절정의 청산을 이룬다.

이 희망찬 달에 푸르름의 극치를 달리는 산을 찾자면 역시나 강원도가 아닐까 싶다. 백두대간을 꿰찬 높은 지형 때문에 언제나 추운 오지를 떠올리게 하는 강원도지만, 한반도 전체가 공평하게 불볕더위를 발산하는 7월만큼은 추울래야 추울 수가 없다. 그래서 강원도로 간다. "1950년 한국전쟁이 났던 것도 까맣게 몰랐을 정도"로 깊은 오지 덕항산을 찾아간다. 7월은 새로운 달이어서 희망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이다.

장마전선이 드리워진 강원도의 고개

 덕항산이 있는 삼척으로 오기 위해 대관령을 넘었다.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이 고개를 피하기 위해 위아래로 빙빙 돌아서 다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대관령이 동해안으로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하필 장마에 시달리는 시기여서 그런지 잘 뚫린 도로도 앞길을 쉬이 터주지는 않았다. 햇빛도 들지 못할 만큼 하늘을 메운 먹구름은 바늘과 실의 관계이기라도 한 듯이 고갯길에 허연 안개를 잔뜩 뿌려놓았다. 골이 깊어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는 여름의 덕항산을 보기 위해 찾아왔건만, 이 거대한 안개의 강은 그런 기대를 싸그리 무시해버리는 듯 했다.

산행을 계획한 아침까지 장맛비는 그치지 않았다. 윤흥길의 <장마>에서처럼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하게 적시"고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인지, 빗물이 얇아지긴 했어도 그쳐줄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 산행을 함께 하기 위해 먼 주문진에서 찾아온 김상관씨(주문진등대산악회 회장)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 발로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오르는 주문진등대산악회 일행들. 저곳을 지나면 자암재를 거쳐 하산길이 시작된다.


"이 정도 내리는 비야 땀에 젖으나 비에 젖으나 똑같아요. 오히려 시원해서 좋지 뭐."
하지만 기어이 이곳까지 불러낸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럴 것인가. 다행히 김상관씨와 같이 온 전태걸씨와 손야라씨도 비를 개의치 않는 표정이라 '이정도 비쯤이야'하는 분위기 속에서 산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산지점으로 정한 환선굴 주차장에 차를 한 대 세워 놓고 산행기점인 예수원으로 향했다. 덕항산의 깊은 산세를 반바퀴 돌아 태백 하사미까지 넘어가야 하는 이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삼척에서 가까운 길을 놔두고 굳이 태백을 산행기점으로 삼은 것은 익히 알려진 등산길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길로 가고 싶어 한 취재진의 생각이었다. 삼척과 태백은 백두대간을 경계로 삼고 있기에 차도 헉헉거리며 강원도의 힘을 절감하게 해주었다. 댓재를 지날 즈음 김상관씨가 설명을 해준다.

 "여기 댓재에서도 덕항산으로 올라갈 수 있어요. 매년 1월 1일이면 신년맞이로 댓재에서 덕항산까지 백두대간 길을 따라 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댓재의 지도 명칭은 큰재. 큰 대(大)자를 쓸 만큼 높은 고개는 대관령과 비교해 전혀 위세가 뒤지지 않는 듯, 이곳에도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한다. 구불구불한 산악도로라 앞선 차가 있는지 없는지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안개를 헤치며 가는 길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이대로 길을 따라가면 허연 수염을 기른 신선을 마주칠런가. 그야말로 신선이 되는 동굴 '환선굴'로 더 유명한 덕항산을 찾아가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딱 들어맞는 설정이었다. 그렇게 꿈을 꾸는 듯 안개 내린 고개를 내려와 마침내 예수원 앞에 도착했다.

서둘러 산행 준비를 마치고 등산로에 올라서자 김상관씨가 시간을 확인한다. "예정했던 것보다 15분 늦었네"하며 걸음을 빨리 하는 일행들. 아니, 그보다는 아직 안개의 꿈에서 깨지 못한 정신에 쫓아가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산행길 초반 낮은 지대에는 안개가 깔리지 않았지만 고요한 숲길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태백에서 오르는 덕항산의 서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꽤나 힘겹게 올라야하는 길이었다. 더구나 알맞게 젖은 때깔 좋은 흙 위에 무성히도 자라있는 각종 이름 모를 풀들은 웬만한 어른 키높이까지 막아선다.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발밑에 신경 쓰자니 나뭇가지에 가로막히고, 나뭇가지를 피해 지나가다 보면 발밑이 미끌리며 고생을 조금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청산의 절정 여름산행의 묘미. '온 청산을 물걸레처럼 질펀하게 적신' 비는 가녀린 풀잎마저 쪽빛보다 푸른빛으로 짙게 만들어주었고, 높고 울창하게 뻗은 나무들은 천연우산이 되어 쉼 없이 내리는 가랑비를 막아준다. 어느 정도는 잎으로 받아놓았다가 무게가 못 버틸 즈음에야 리듬감 있게 '투두둑' 떨어지는 빗물은 청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여름비다.

그런 리듬에 취해 산을 오르다 보니 곧 구부시령(九夫侍嶺)에 이른다. 구부시령은 태백 하사미 외나무골에서 삼척 도계읍 한내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이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고 하여 무려 아홉 서방을 모셨다는 전설에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기구한 팔자를 가진 여인의 사연이 담긴 고개에서 한숨 돌린 다음부터는 편한 백두대간 길로 접어든다. 이 곳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한의령으로 가는 길이고, 북쪽으로 올라가야 덕항산으로 가는 길이다. 길이 잘 나있기로 알려진 백두대간 길로 1.1km만 가면 정상에 오른다는 표지판은 오히려 금세 정상에 올라 버릴까봐 걱정을 끼치기도 했다.
안개비에 취해 길을 놓치다

빗길산행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했던지 일행들의 입에선 쉴 줄 모르고 대화가 오간다. 빗소리와 함께 이 얘기 저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나아가던 중, 갑자기 급한 경사의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이렇게 내려간단 말인가'란 생각을 하면서 한 10분 넘게 걸었을까? 김상관씨가 의아함을 느끼며 큰소리로 앞서 가던 전태걸씨를 불러세운다. "이 길이 맞는 겁니까?" 저 편에서도 큰소리로 대답을 하지만 비와 안개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멈춰봐요! 이런 길일 리가 없어!" 결국 앞선 일행을 멈춰 세우고 그들이 있는 곳까지 내려간다. 김상관씨도 오랜만에 덕항산을 찾았던지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백두대간 길이 이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취재진과 주문진등대산악회 5명이서 모여 상황을 타진해 보지만, 안개가 자욱한 산 중턱에서는 시계가 제로에 가까워 위치 파악이 힘들다. 다행히 휴대하고 있던 나침반이 있어 방위를 파악하고 이내 길이 살짝 어긋났음을 알아냈다. 결국 내려왔던 길을 되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내려올 때도 급경사에 진흙이 미끄러워 무릎 아래가 온통 진흙발이 됐는데, 다시 올라가려니 드는 힘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 산행에서 이정도 흙탕쯤은 예상했던지라 오히려 농을 치면서 올라간다.

"이건 완전히 심마니들이 다니는 길이래요. 이거 산삼을 캐야 하는데 원 보이지를 않네."

그 말처럼 며칠 전 소백산 자락에서 발견됐다는 대형 산삼이라도 하나 눈에 들어와 주기를 기대해보지만, 불기둥 꿈을 꾼 것도 아니고 그런 대물이 쉽게 눈에 뛸 리는 없었다. 산삼은 커녕 도라지도 안보이니, "정말 도라지가 없는 건지 아니면 이제 하도 자연에서 멀어져 생활하다보니 도라지도 발견 못하는 건지"하고 손야라씨가 한탄한다. 그렇게 아쉬움을 남긴 채 백두대간 길로 돌아오니 일행이 지나왔던 길에는 나아가지 말라고 나무막대 몇 개를 눕혀놓아 통제를 해놨다. 그걸 보고 김상관씨가 걸걸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이거 보래요. 이래 막아놨는 데도 그냥 통과했다는 건 입이 떠드느라 눈이 신경을 안 쓴거거든."
"아, 너무 그러지 말아요. 해봐야 30분 허비한 건데…."
"시간은 30분이지만 사기는 한참 떨어지는 법이거든요."

길을 잘못 든 것이 딱히 누구의 잘못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걸쭉한 강원도 사투리로 이루어진 대화는 누구를 탓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로 힘을 북돋아주는 느낌이다. 그런 입담에 시달리며(?) 오르다보니 금세 정상에 올랐다. 100대 명산 덕항산이라더니 작은 배낭만한 정상석에 표지판 하나만이 달랑 서 있어 마음이 초라해진다. 거기에 시계가 흐려 조망까지 좋지 않으니 가장 눈에 띄는 건 높게 세워놓은 산불감시초소 뿐이다. 싸늘히 식는 마음에도 김상관씨는 걸걸하게 "여기가 원래 이래요. 정상이니까 사진이나 찍읍시다"하면서 기념촬영을 제안한다. 그 말처럼 덕항산 정상에 도착했다 해도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기에 실망은 일렀다.

그렇게 정상을 지나 조금 내려가자 일행이 올라왔던 예수원에서 오르는 다른 길과 골말에서 올라오는 길이 합쳐진 쉼터가 나왔다. 보통 사람들은 골말에서부터 많이 오르고, 일행도 이쪽으로 올라올 수 있었지만 어차피 덕항산 정상을 보고 가려면 여기서 되돌아가는 것보다 한번에 지나온 길이 더 나은 것도 같다. 어쨌든 이곳도 가볍게 통과, 점심식사는 다음 쉼터에서 먹기로 했다. 이곳에서 환선봉까지도 1km만 가면 되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금세 도착한 환선봉에 잠시 짐을 풀고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며 살펴보니 표지석에는 환선봉이라 적혀있는데 등산로 표지판에는 이곳이 지각산이라 한다. 더구나 산높이도 지각산이 덕항산보다 높은데 어찌하여 이 산군은 덕항산이라 불리며, 지각산은 이름도 분명치가 않은 것일까. 주문진 일행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른다"는 대답 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어쩌면 이것이 두 얼굴을 가진 산이라 불리는 덕항산의 비밀이런가. 화전민들이 이 산을 넘으면 화전을 일굴 만한 편편한 땅이 많아서, 또는 그러한 정성을 다하면 늘 덕을 봤다해서 덕메기산이라 불렀다는 덕항산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더 살갑게 다가왔을 성 싶다. 하긴 따지고 보면 산의 높이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각자에게 얽힌 사연이 얼마만큼 더 사람의 삶에 깊이 관여했느냐는 것이 산을 크게 하고도 작게 줄이기도 하는 것을. 그래서 지금 우리가 오르는 산은 덕항산이라 불리었나 보다. 허나 지각산을 환선봉이라 부르게 된 연유가 없지는 않을 터, 환선봉이라 이름 붙여진 것은 환선굴과 가깝기에 더 친숙함을 불러일으키려 그랬던 것은 아닐까.

▲ 백두대간으로 접어드는 구부시령 갈림길. 오른편으로 가면 한의령, 왼편으로 올라가야 덕항산이다.


야누스의 하산길은 가파르다
환선봉에서 1.5km 정도만 이동하면 만나게 되는 자암재에서 백두대간 코스와 갈라서야 했다. 물론 길이야 나있으니 계속 따라가면 댓재로 이어지겠지만, 덕항산을 올랐으니 깔끔하게 환선굴로 하산해야 하지 않겠는가. 덕항산 정상을 지난 지는 한참 되었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되는 것이다.

혹자들은 덕항산이 육산과 돌산을 함께 지닌 산이라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자암재까지 오는 동안 그 말은 잊은 지 오래였다. 쭉쭉 뻗은 나무 아래서 우거진 수풀을 밟으며 지나왔던 길에 돌이 있어봤자 얼마나 보였겠는가. 하지만 돌산이라는 덕항산의 두 번째 얼굴은 하산길부터 시작이었다. 로마신화를 보면 야누스(Janus)라는 두 얼굴을 가진 신이 있다. 주로 성이나 집의 문을 지키는 신으로 형상화되었는데, 문을 통과하는 방법에 따라 행운과 불운을 가져오는 것이 있어 전쟁과 평화를 상징했다고 한다. 그에 따라 지금까지의 길이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면 내려가는 길은 전쟁으로 봐도 손색이 없었다. 한 발자욱씩 걸음을 떼기 위해서는 있는 힘껏 다리를 벌려 디딜 곳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 게다가 조각조각 난 돌들이 경사 심한 흙 위에 널려있어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돌이 채여 낙석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지금 내려가고 있는 덕항산의 동쪽사면을 두고 사람들은 돌산이라고 표현했던 것일까. 무르디 무른 석회암이 쪼개지고 갈라져 널부러져 있는 이곳의 풍경은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산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바람에 치이고 빗물에 녹아 해체되었을 돌들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돌산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발치를 신경 쓰며 그런 길을 얼마쯤 걸었을까. 자그마한 약수터가 있다는 표식이 있지만 오늘 같은 날엔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약수라기보다는 그냥 지하수죠. 오늘 같이 비오는 날엔 빗물일테고…."
그 말 한마디에 무사통과다. 가파르다고는 해도 어차피 하산길. 물 한방울보다는 편편한 땅을 밟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 이 전쟁 같은 하산길에서도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있다면 중간중간에 설치된 전망대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덕항산이 감춘 비경을 보라고 공을 들여 만들어 놓았을 전망대에서는 짙은 안개에 가린 희미한 바위벽만 확인할 수 있었다. 전망대 자리엔 친절하게 앞에 보일 절경 사진을 표지판에 붙여놓았지만 그 사진 때문에 오늘은 아쉬움만 더할 뿐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잠시 안개가 겉히기를 기다려도 보겠지만 잔잔한 대기는 운무를 걷어 줄 생각이 없다.

비경, 절경 다 놓치고 하산하는 길에서도 한가지만은 건졌다. 커다란 바위봉우리 가운데 시원하게 뚫린 천연동굴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상관씨 말에 따르면 "아직도 석회암이 녹으면서 계속 생성되고 있는 중"이라 했다. 과연 벽면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과 바닥에는 원래 붙어있던 것이 떨어져 나간 것이 분명한 바위들이 계단을 이루고 있다. 안전을 위해 옆에 철제계단을 만들어놓았지만 어찌 이 동굴을 통과하지 않을쏜가.

천연동굴을 통과하고 다리 찢기를 얼마나 하였을까. 고도가 낮아지면서 안개가 걷히고 사람의 손을 많이 탄 흔적이 엿보이는 계단이 이어진다. '끝무렵이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어느덧 환선굴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까지가 덕항산 산행의 마무리인 듯 싶었다. 남은 일은 연중 시원하다는 환선굴을 들러 땀을 식히는 일. 그리고 관람객들을 위해 만든 길 좋은 등산로를 따라 하산하며 보지 못한 덕항돌산에 아쉬운 눈길을 보내는 것이었다. 실제로 하산하는 동안에도 덕항산이 쓴 구름모자는 벗겨지지 않았고, 사진으로만 확인한 베일 속의 촛대봉을 그리워하며 신선이 산다는 산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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