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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 자료☆★★/★☆ 등산 여행☆

지리산통신/청학사~형제봉~신선대~외둔리 코스

지리산통신/청학사~형제봉~신선대~외둔리 코스

     


지리산통신/청학사~형제봉~신선대~외둔리 코스
그대 꽃길 걸어 저문 강에 그림자로 서보세요 글 황소영 기자·사진 임대영 www.jiriphoto.com


▲ 악양 형제봉으로 올라서는 취재진. 정상 가까운 곳에 활공장이 있어 차량으로도 접근이 쉬어졌다.


지리산 남부능선을 종주하는 사람들 중에도 경남 하동군 악양면 형제봉(1115.5m)을 거쳐 외둔리까지 혹은 외둔리에서 세석까지 오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30여㎞의 장쾌한 길이지만 식수가 드물고 곳곳에 복병처럼 깔린 조릿대 숲 때문에 1박 2일을 고스란히 헌납하고서야 마칠 수 있는 것. 휴게소는커녕 대피소도 전연 없어 청학동이나 쌍계사로 내려서는 게 일반화된 지 오래다.
남부능선 종주가 힘들다고 형제봉(성제봉) 산행까지 어려운 건 아니다.

그 키만도 1000m가 넘어 별도의 산행이 가능하며 등산로 상태와 조망도 최적인 까닭이다. 이미 지난 가을 세석고원~삼신봉~쌍계사 코스를 소개한 적이 있으니, 이번에는 있는 듯도 없는 듯도 하게, 5월이면 핏빛 철쭉으로 한껏 불붙는 형제봉을 올라설 차례다.
남부능선 형제봉은 세석과 바래봉 철쭉에 철저히 숨겨진 채 붉은 빛으로 그리운 가슴을 태우고 있다.

J에게 띄우는 편지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그의 책 <택리지>에 “흙이 두텁고 기름져서 온 산이 모두 살기에 알맞다.
산 안에 100리나 되는 긴 골이 있어, 바깥쪽은 좁으나 안쪽은 넓어서 가끔 사람이 발견하지 못한 곳도 있고, 나라에 세를 바치지 않는다.

지역이 남해에 가까워 기후가 따뜻하여 산중에는 대나무가 많고 또 감과 밤이 매우 많아 저절로 열렸다가 저절로 떨어진다. 스님이나 속인들이 대나무를 꺾고 감, 밤을 주워 수고하지 않아도 생리가 족하며, 농부와 공장(工匠) 또한 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충족하다. 이리하여 이 산에 사는 백성은 풍년과 흉년을 모르므로 부산(富山)이라 부른다”라고 지리산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산 남쪽에 화개동과 악양동이 있다. 모두 사람이 살고 산수가 매우 아름답다”며 지리산의 수많은 지역 중 화개와 악양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디 그것뿐인가요. 이자겸의 난을 피해 악양으로 들어온 한유한이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얘기도 함께 실은 것은 물론 시인묵객들이 화개와 남부능선 일원을 이상향으로 꼽을 때에도 이중환만은 악양땅(매계)을 청학동으로 치켜세웠습니다.

화개가 김동리의 소설 <역마>나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로 유명하다면, 악양 평사리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 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등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4대에 걸친 최참판댁 가족사와 함께 한 마을의 집단적 운명을 조명한 5부작 16권, 집필 기간만도 반 세기에 달한다는 대하소설 <토지>. 그러나 정작 평사리는 <토지>의 1부에 중점적으로 묘사될 뿐이고, 작가 자신도 먼발치에서 평사리를 스쳤을 뿐 들어가 본 적은 없다고 하네요.

동·서·북으로 지리산이 호위병인 양 둘러쳐져 있고,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어머니의 탯줄처럼 굽이져 흐르는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지형이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악양루와 악양 소상 팔경 중 하나인 동정호(湖) 이름도 그대로 옮겨 땄습니다. 어쨌든 ‘산수가 매우 아름다운’ 화개와 악양은 유토피아가 되기도 하고 문학작품의 토대가 되어주기도 하며 참으로 오래 살았습니다.

신라 사람 최치원이나 고려의 이인로가 이상향 청학동을 찾아나서기 전, 이중환이 인문지리서 <택리지>를 집필하기 전, 작가 박경리가 소설 <토지>를 쓰기 전, 이미 지리산은 그 자리에 솟아 묵묵히 지켜 섰고, 산자락마다 풍부한 자연식생과 신비한 전설과 슬픈 역사를 품고 살은 셈이죠.
악양 형제봉은 지리산의 태동과 역사의 중심에 소리도 없이 잘 버티어 온 진정한 보물입니다.

시지프스의 돌 같은 너덜길

산행 초입인 청학사에는 별다른 안내 표지판이 없었습니다.
1472년 지리산을 다녀온 점필재 김종직의 기록에 따르면 함께 산행에 나섰던 해공이 악양 고을의 북쪽을 가리키면서 “저기가 청학사가 있는 동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김종직은 “아! 바로 저곳이 옛날 신선이 살던 곳이란 말인가. 저곳은 인간이 사는 곳과 과히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데, 미수 이인로는 어찌 찾지 못하였을까? 일을 좋아하는 자가 이인로의 마음을 사모하여 절을 지어 명칭을 붙인 것은 아닐까”라며 깊이 생각하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조선시대 역사지리서인 <신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 기록된 지리산의 사찰은 대략 38개. 김종직은 그 수를 무려 400여 개에 이른다고 했으니, 그 사이 지리산 품에서 태어나고 숨을 거둔 절집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청학사도 결국 질곡의 역사를 벗어나진 못했을 거라 생각해볼 뿐.

줄줄이 달린 안내 표지기를 커튼처럼 열고 들어서면 시원한 대나무 숲길입니다. 지리산에서 대숲을 보는 건 어렵지 않지만 창을 들고 도열한 병사처럼 그 위세가 사뭇 진지하고 근엄합니다. 어쩌다 바람이라도 불어올 때면 사그락 사그락 바람에 댓잎 스치는 소리가 곧잘 귓속을 간지럽히죠.

대숲의 청신함을 마음껏 들이킨 후에야 산으로 오르는 급경사가 나타납니다. 이 길을 따르면 곧 형제봉에 닿을 테지요.
20여 분간 오르다 조그만 석간수 하나를 만났습니다. 바위 위에 배낭을 내리고 등줄기를 흠뻑 적신 땀을 애써 식히며 연거푸 몇 잔의 물을 마십니다.

이제는 팔목까지 내려오는 긴팔 등산복이 버거운 계절이 되었네요. 반팔로 갈아입으려다 그만 두고 주섬주섬 배낭을 꾸려 다시 오르막을 올라섭니다.

길은 바위 너덜지대로 바뀝니다. 어디서부터 생겨나 굴러왔는지 커다란 바위들이 들쭉날쭉 경사면을 따라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발을 헛디뎌 바위틈으로 빠진다면 낭패를 볼 것 같아 조심조심 한 걸음 한 걸음 정성을 다해 옮깁니다.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지리산에 기대어 살던 어느 산신이 매일 밤 이 돌을 올리고 올리다 결국 포기하고 만 걸까요. 천왕봉의 이마까지 올리려던 돌은 형제봉도 미처 넘지 못하고 이 기슭에 눈물을 뿌리며, 그 방울방울 바위로 굳어졌는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한반도 남녘을 감싸 안던 지리산에는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우주의 비밀이 숨어 있을 겁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발견할 수도 없고, 발견해서도 안 될 이 산만의 비밀스러운 시간들이 오늘도 계속 반복됩니다.
산행객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시간, 지리산의 형벌을 받은 어느 산신은 우루루 우루루 돌덩이를 올리려 애를 쓰고 있을 것입니다.
너덜길이 끝나는 곳에 다시 샘이 나타납니다. 아예 고무통에 파이프까지 연결해뒀더군요. 이미 수통에 가득 물이 들어찬 터라 가던 걸음을 서두릅니다.

곧 키 작은 산죽 숲 오르막이 이어지면서 걸음은 마냥 늦어집니다.
간간히 뒤돌아서서 악양의 들판(이곳 분들은 ‘무딤이들’이라고 부릅니다)을 바라보지만 그것이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가파른 길에 지친 걸음이 점점 늦어질 때쯤 둥그런 능선이 코앞에 바짝 다가섭니다. 청학사를 출발한 지 두어 시간이 지나서 형제봉 갈림길에 닿은 것이지요.

▲ 신선대 일원의 철쭉군락지. 형제봉에서부터 약 1만5000평 규모를 자랑한다. 5월 중순을 전후해 붉은 꽃바다를 만날 수 있으리라.


형제봉 VS 성제봉

이정표 오른쪽으로 170m만 더 가면 형제봉입니다.
청학사로부터 약 3.5㎞를 걸어왔군요. 능선 아래에서 올려다본 형제봉은 마치 왕관을 쓴 모습이었습니다. 나무 몇 그루 머리에 얹은 형제봉에 서면 노고단~천왕봉 주능선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아득하게 멀리 서서 새하얀 눈을 덮어 쓴 세석과 제석봉과 천왕봉을 보았습니다. 악양에 큰비가 내리던 날 지리산 주능선에는 새하얀 눈이 내렸습니다.

1000m가 조금 넘는 형제봉 뜨거운 태양 아래서 히말라야를 보았습니다. 눈을 덮어쓴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은 히말라야의 희끗한 이마와 다를 바 없어 한동안 마음을 심하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계절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것도 지리산의 힘인가 봅니다. 꽃 보러 오른 산에서 새하얀 눈을 보고 마냥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형제봉 정상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해발 1115m의 지리산 최남단으로 정상 주변 1만5000여 평 정도의 철쭉 군락지에서 매년 5월 악양산우회 주관으로 철쭉제가 개최되고 있다.

성제봉 아래에는 통천문·신선대·봉수대·고소성이 있으며, 여기서 주변을 둘러보면 정면으로 백운산이, 오른쪽으로는 노고단에서 반야봉·세석·천왕봉 지리산 주능선 코스가 한눈에 들어오고, 왼쪽으로는 금오산과 사천의 와룡산, 그리고 뒤쪽으로는 청학동을 넘어가는 회남재가 보이고, 아래로는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평사리와 최참판댁·동정호, 굽이 도는 섬진강과 백사장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굳이 안내판이 아니더라도 이곳에 서면 모든 장면이 사방으로 펼쳐집니다. 고래등처럼 누운 왕시루봉까지 합하여 도대체 어느 곳에 시선을 두어야할지 난감할 지경이지요. 형제봉에 서면 바둑판 같이 반듯한 경작지와 실핏줄처럼 지리산 깊숙이 퍼진 길들, 유려하게 휘어진 섬진강이 보입니다.

형제봉을 내려서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거기서 남쪽으로 높이 솟은 암봉이 하나 더 있는데 아마도 두 봉우리를 합쳐 형제봉이라 했겠지요. 이정표를 사이에 두고 형제는 갈린 셈이지만,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안부는 두 형제의 단단한 어깨동무일지도 모릅니다. 형인지 동생인지, 어쩌면 쌍둥이일지도 모를 봉우리에 올라서면 정상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형제봉이 아닌 성제봉(聖帝峰)으로 새로운 이름표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경상도 방언에 의해 성제봉으로 불리던 것이 어느새 ‘성스러운 임금’으로 거듭난 것이지요. 무엇이 잘되고 잘못된 것인지 판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형제봉은 왕관을 쓴 것처럼 우뚝 솟았고, 연리지가 된 나무처럼 우애를 과시했으며, 마을 주민들에겐 지리산의 혈을 받아 악양 무딤이들을 주관하는 성스러운 봉우리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형제봉을 내려서면서부터 길은 한없이 부드럽습니다. 왼쪽으로 악양의 보리밭, 5월이면 연초록 숲과 맞물려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보리밭이 깔리고 저 끝으로 섬진강의 은은한 자태가 떠나질 못합니다.

저문 섬진강에 꽃잎을 띄운다

형제봉에서 35분쯤 더 걸으면 신선대에 닿습니다.
형제봉 주변을 붉게 물들인 철쭉은 이곳 신선대에 이르러 절정을 이룹니다. 발아래의 비탈진 경사면은 온통 철쭉나무뿐. 지리산 세석고원을 선분홍 빛깔로 색칠한 철쭉군락은 음양수에 한 움큼의 눈물을 쏟아내고 바람처럼 석문을 지날 겁니다. 삼신봉에 닿아 천왕봉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남으로 내달려 형제봉과 신선대에 붉은 피를 토해내듯 철쭉을 피우겠지요.

아니, 이곳의 철쭉은 섬진강의 물줄기를 등에 업고 지리산 주능선까지 휘돌아 세석의 너른 뜰에 엷은 빛으로 별처럼 쏟아질 테지요. 꽃은 남에서 북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5월 중순이 되면 섬진강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머릿결을 날리며 붉은 철쭉바다를 항해할 수 있습니다.
꿈을 꾸듯 바다와 가까워진 섬진강과 민초들의 애환도 함께 익는 악양 보리와 지리산 남부능선의 끝자락 형제봉, 이 능선에 서서 철쭉의 불붙는 살풀이를 마음껏 즐길 것입니다.

신선대의 매력은 철쭉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곧게 빗어 넘긴 가르마처럼 붉은 바다 사이로 뚜렷한 외길, 그 길로 또박또박 조금씩 멀어지는 산행객들의 뒷모습, 암봉과 암봉을 잇는 철다리와 기다란 철계단과 출렁출렁 흔들다리까지 산행의 재미를 자꾸만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보리밭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에서 점심을 먹다가 고개를 들면, 신선대로 내려서는 봉우리 위로 새파란 하늘이 드리웠을 뿐 모든 것이 차분하고 평안합니다.

흔들다리를 건너면서 또 하나의 세상과 작별을 고합니다. 최치원과 이인로가 그렇게 찾아다녔던 이상향을 떠나 속세로 내려서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 위태롭게 내려서면 길은 다시 모양을 달리합니다. 암릉과 소나무가 섞인 오솔길이 펼쳐지는 것이지요.

지난 달 다녀온 황장산은 형제봉 능선의 이웃입니다. 당연히 비슷도 하였지만 산행 내내 황장산에게 미안하였습니다.
황장산의 매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이미 형제봉 산행에 반쯤 마음을 줘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렁그렁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반짝였던 섬진강, 굳이 전망대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가는 곳마다, 서는 곳마다, 앉는 곳마다 전망대가 되어주던 길….
오롯한 성곽 돌담길이 나오면서 섬진강이 가깝게 얼굴을 맞대옵니다.

고소산성입니다. 삼국시대에 쌓은 견고한 석성으로 나당 연합군과 백제군이 격돌했던 곳이라 전해오지만 확실치는 않다고 합니다.
눈앞에 19번 국도가 보이네요. 섬진강을 따라 그 모양대로 굽이진 길입니다.

벚꽃축제와 맞물려 4차선 확장 논란에 휩싸인 도로인데, 빨리 달려야 좋은 길이 있다면 천천히 달려야 참맛을 아는 길도 있기 마련. 바로 19번 국도가 그렇습니다.

굳이 급하게 달리지 않아도 좋을 길, 섬진강과 지리산과 광양 백운산을 사이에 둔 이 길에서는 서둘러 달려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씨는 “지리산 노고단을 저 멀리 두고 왕시루봉, 형제봉에서 뻗어 내린 산자락 아랫도리를 끼고 섬진강을 따라가는 길은 이 세상에 둘이 있기 힘든 아름다운 길”이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고백이 한 사람의 몫만은 아니겠지요.

저무는 악양 들판에 형제봉처럼 나란히 선 소나무 두 그루를 남겨 두고 섬진강 노을 속으로 서서히 접어듭니다.
두 눈과 두 발에서 지리산의 흙냄새와 악양의 보리 냄새와 섬진강의 노을 냄새가 묻어납니다. 노을처럼 붉은 철쭉이 흐드러지는 날, 그대도 이 길을 걸어 저문 섬진강에 그림자로 서보세요. 그러하시길 바라며 두서없는 긴 글을 마칠까 합니다.

▲ 고소산성 성곽에 앉아 섬진강을 바라보는 취재진. 어디서 시작하든 외둔리(19번 국도)로 내려서는 코스를 따를 경우 산행 내내 악양 들판과 섬진강을 조망할 수 있어 좋다.


Information
형제봉 길잡이


산길
지리산 남부능선은 주능선 세석에서부터 외둔리(19번 국도)까지를 가리키지만 길게는 2박 3일이 소요되는 먼 길이다. 5월은 아직 산불경방기간에 해당되므로 당일 산행이 적합한데, 청학사~형제봉~신선대~외둔리 코스가 비교적 무난하다.
형제봉 인근에 활공장이 있어 차량으로도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쌍계사 내원골 등을 통해 오르는 길도 있지만 역시 청학사 코스를 권할 만하다. 청학사에서 형제봉은 2시간 걸리며 여기에서 올라야 산행이 수월하고 섬진강과 악양 들판을 여유롭게 조망할 수 있다.
악양에서 청학사까지는 별다른 안내판이 없으므로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이동하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일단 청학사에 들면 산행을 마칠 때까지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초반 올라서는 2시간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능선부터는 철쭉과 암릉과 소나무 숲길이 나란히 이어지며, 무엇보다 뛰어난 전망으로 정신이 없다. 외둔리까지 내려오지 못할 경우엔 한산사로 내려와 조금 일찍 산행을 마칠 수도 있다.

비가 많은 계절이 아니므로 식수는 충분히 챙겨가는 것이 좋다.
청학사 코스에서는 청학사를 포함 능선까지 3군데의 샘터가 있고, 신선대 철쭉제단 옆에도 샘터가 있다. 산불경방기간은 각 국립공원별로 탄력적으로 조절되므로 남부능선 종주를 하고 싶다면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www.npa.or.kr)를 통해 미리 통제 여부를 확인하고 떠나야 한다.

교통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ww-w.nambuterminal.co.kr)에서 화개행 버스를 탈 수 있다.
요금은 2만500원. 구례를 거쳐 하동까지 가는 버스인데 악양에는 정차하지 않으므로 화개에서 내려 버스나 택시로 갈아타는 게 좋다. 서울에서 약 4시간 20분 소요. 하동까지 가서 내리면 갔던 길을 되짚어 악양으로 오게 되므로 화개에서 내리는 것이 편하다. 악양까지는 버스가 다니지만 산행 기점인 청학사에는 별다른 대중교통이 없으므로 화개에서 내렸다면 그곳에서 아예 택시를 타는 게 낫다.
요금은 약 1만6000원이다. 기차의 경우 구례구역(용산역에서 승차)이나 하동역에서 내려 악양으로 이동해야 한다.
부산 등 경상권에서는 진주 등을 거쳐 악양으로 올 수 있고, 광주 등 전라권은 구례를 거쳐 올 수 있다.

자가용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에서 장수나 함양IC로 진입 후 88고속도로를 타고 남원~구례를 거쳐 오면 된다. 남해고속도로의 경우 하동IC를 이용한다.

가볼 만한 곳

하동 야생차문화축제
올해로 9회째를 맞는 하동 야생차문화축제(www.hadong.go.kr)가 5월 20일부터 23일까지 화개면 운수리 차시배지와 진교면 찻사발 도요지 일원에서 나흘간 열린다.

문화광관부 지정 문화축제로 첫째 날은 선고다인헌다제례·개막축하길놀이·소망한마당, 둘째 날에는 야생차 글짓기 및 그림그리기대회·궁중다례시연·야생차국악동요제, 셋째 날에는 야생녹차요리강좌·야생차학술세미나·남원시립국악단공연, 마지막 날엔 차잎따기대회·차여인선발대회 등 다양한 행사로 진행된다.

평사리와 최참판댁
산행 내내 평사리를 굽어보지만 하산 후 마을로 들어서서 가까이 보는 것이 좋다.
평사리는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널리 알려진 마을로 매년 5월이면 황금빛 보리와 돌담이 정겨운 풍경을 자아낸다. 상평마을로 가는 길목에는 둘레가 약 2m, 높이가 약 27m나 되는 커다란 팽나무가 있다.
조선시대 부사 전청상이 마을사람들이 모여 쉬는 곳이라 하여 ‘위민정’이라 이름 지었다.

하동군에서 복원한 최참판댁은 물론 최근 TV 드라마 <토지> 촬영과 맞물려 조성된 초가집 세트장도 만날 수 있다. 평사리 들판의 얼굴 격인 소나무 두 그루의 정취도 빼놓아선 안 된다.
이 소나무는 드라마를 타고 인기를 얻을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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