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닮은 집값 과열···풍선효과 잘못 타면 10년 고생[안장원의 부동산노트]
3년 3개월새 수도권 31곳→43곳
집값 과열은 전염병 확산과 닮아
확산 방지 못지 않게 면역력 키워야
집값 과열이 확산하면서 이를 규제하기 위한 조정대상지역이 대폭 늘어났다. 사진은 지난 21일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경기도 수원 일대 아파트. |
지난 21일 정부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권선·장안구 및 안양시 만안구, 의왕시를 조정대상지역에 추가했다. 조정대상지역은 2016년 11월 정부가 ‘국지적 과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주택시장이 과열됐거나 과열 우려가 있는 지역’을 규제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당시 서울 전역(25개구)과 과천시 등 경기도 6곳, 해운대 등 부산시 5곳, 세종시를 처음으로 지정했다.
3년 3개월이 지나는 사이 일부 추가되고 일부 해제되면서 현재 조정대상지역이 전국 44곳이다. 수도권으로 보면 처음 지정된 31곳에서 43곳으로 12곳이 늘었다.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조정대상지역이 들어있는 자치단체가 6곳에서 12곳으로 2배로 증가했다.
조정대상지역이 증가하면서 규제 ‘파워’가 세졌다. 원래 청약제도 규제였다. 청약자격과 전매제한을 강화했다. 그러다 2017년 8·2대책과 2018년 9·13대책을 거치며 양도세(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와 종부세(다주택자 종부세 중과), 대출(9억원 이하 담보인정비율 50%)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규제 범위를 대폭 넓혔다.
조정대상지역 확대는 정부의 잇따른 고강도 대책에도 집값 상승세가 쉽게 잡히지 않고 오히려 확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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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과열 지역' 확대
2000년도 초·중반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투기지역’으로 대응했다. 2003년 2월 3곳으로 시작한 투기지역이 2007년 6월 전국 250개 자치단체 3곳 중 하나가 넘는 93곳(37.2%)으로 급증했다.
집값 과열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과 같은 전염병을 연상시킨다. 한 곳에 그치지 않고 퍼지는 모양새가 닮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는 일찍이 2000년대 중반 미국 집값 폭락을 예견하면 집값 급등을 전염병과 연관 지어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비이성적인 집값의 주범으로 ‘야성적 충동’을 지적하며 5가지 요소를 꼽았다. 그중 가장 주요한 게 ‘이야기’다. 토지 한계 등으로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과거 집값 상승이 반복된다는 ‘학습효과’와 규제지역 인근이 반사이익을 보는 ‘풍선효과’도 이야기에 속한다. 이 이야기가 집값 상승 기대감과 믿음을 나르며 전염병을 퍼뜨리는 바이러스 역할을 한다.
집값 규제지역 현황. |
실러 교수는 2009년 쓴 책『야성적 충동』에서 “이야기가 바이러스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10년이 지난 지난해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의 경제학』(Narrative Economics)이란 책을 내며 이야기를 경제학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국가·지역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전염병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범위가 넓어지듯 스마트폰과 SNS 등의 발달로 집값에 미치는 이야기의 영향력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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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늑장·적정 논란
전염병 대책도 집값 대책과 비슷하다. 확진자 동선을 뒤지듯 주택구입자금 흐름을 샅샅이 조사한다. 확진자가 다닌 곳을 폐쇄하고 접촉 범위에 든 사람을 격리하듯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으로 묶는다. 위기경보를 올리듯 규제 강도가 더 센 규제지역으로 지정한다.
전염병과 집값 모두 대응을 둘러싼 논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으로 중국인 입국 금지, 위기경보 수준 등이 쟁점이다. 주택시장도 규제의 시기·강도·범위·대상 등을 두고 시끄럽다.
적정대응 여부는 지나고 나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전염병을 다루는 데선 화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울 수 있는 늑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고 하지만 주택시장에선 집값 과열을 너무 잡아도 안 된다. 선제적 과잉대응은 '맞춤형' '핀셋' 규제의 반대로, 미리 규제지역을 넓히고 규제 강도를 확 올리는 것일 텐데 경착륙 후폭풍이 경제 전반에 미칠 수 있다. 실러 교수가 '야성적 충동'을 제어하는 데 현명한 부모와 같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현명한 부모가 되는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응 과정에서 일관성·투명성으로 신뢰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바이러스 전파를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하더라도 바이러스가 발병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바이러스가 몸속으로 들어오더라도 병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다.
주택시장도 면역력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주택 공급과 교육·문화·교통 등 주거환경 격차 줄이기 등이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라는 바이러스가 전파돼 실제로 집값 과열로 이어지는 데는 주택공급 부족, 뛰어난 교육환경, 개발계획 같은 재료가 있어야 한다.
주택시장의 체력이 강하고 면역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애초에 감염병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바이러스를 이겨냈을 것이다.
주택 수요자는 집값 과열 확산기의 풍선효과에 주의해야 한다. 잘못 타면 긴 터널을 만날 수 있다. 12년 전인 2008년 서울 주택시장에서 강북이 뜨거웠다. 강남 집값이 2007년 꺾인 뒤 풍선효과와 뉴타운 개발 공약이 쏟아진 4월 총선 영향이었다. 그해 상반기 6개월간 노원구 아파트값이 30% 급등했다(서울 평균 9%, 강남3구 1% 선).
집값이 뛰던 4월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10단지 저층 전용 54㎡를 샀다면 어땠을까. 시세가 2억6000만원이었다. 4개월 뒤 금융위기가 왔고 이후 반짝 상승기 때 2010년 2억8000만원까지 올랐다가 줄곧 내리기 시작해 2013년 2억3000만원까지 하락했다. 그 뒤 3년이나 지나 2016년이 돼서야 2억6000만원으로 올라섰다. 그동안의 물가상승률과 이자 등을 고려하면 2017년이 되어서야 ‘본전’을 찾은 셈이다. 10년에 가까운 터널이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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