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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옮음에 중독되지 말라[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나의 옮음에 중독되지 말라[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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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아직 유년의 치기가 남아 있을 때였다. 친구와 나는 구내 식당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옆 자리에 앉은, 일면식조차 없던 한 학생과 언쟁을 벌였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하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고, 우리는 승리에 도취됐다. 내 친구의 눈가에서 감도는 웃음에서 승리감을 읽었다. 친구 역시 내 얼굴에서 똑 같은 것을 읽었으리라. 하지만 분명했다. 우리와 언쟁을 벌였던 그 학생은 우리가 옳다고 생각해 입을 다문 게 아니었다. 우리는 둘이었고, 그는 하나였다. 그는 수(數)에 밀려서 입을 다문 게 분명했다. 그의 질끈 깨문 입술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좋았다. 어쨌든 우리가, 다시 말해 내가 옳다는 게 관철됐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는 느낌은 내 두뇌 속 어딘가의 쾌락중추를 자극하는 듯 했다.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알았다. 인간은 옮음에 중독된다는 것을 말이다. 마치 담배에, 술에 중독돼, 니코틴과 알코올을 찾아 헤매듯이, 인간은 '나의 옮음'에 중독된다. 그래서 직장 동료와의 회의에서, 배우자와의 언쟁에서, 자녀와의 대화에서, 인간은 중독적으로 '나의 옮음'에 집착한다. 나의 옮음이 관철됐을 때, 인간은 마치 부족한 니코틴 또는 알코올이 몸 속에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쾌락과 안도감을 느낀다. 이는 우리 몸 속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작용이다. 주디스 E 글레이저가 쓴 '대화지능'이라는 책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옳음이 관철됐을 때, 몸속에서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들 호르몬은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고, 권력감을 느끼게 만든다. 대학교 1학년 때 필자가 두뇌의 쾌락중추가 자극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도 생리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옮음'에 '중독'되면 우리는 타인과 제대로 소통하거나, 대화할 수가 없다. 그저 상대방에게 '내가 왜 옳은지' 설명하려고 한다. 상대방이 나의 옮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 상대방의 얘기에서 옳은 점을 찾아내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자가 애타게 알코올을 찾듯이, 나의 옮음에 중독된 사람은 '나의 옮음'이 관철됐을 때 몸 속에서 분비되는 도파민만을 간절히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나의 옮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 상대방을 아예 무능하거나, 나쁜 사람이라고 판정하려고 한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을 찾느라 두뇌의 에너지를 허비한다. 필자의 옛 동료 역시 그랬다. 팀원에 대해 불만에 가득한 나머지 퇴근길 버스 안에서 그가 무능한 이유를 찾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다. 이처럼 나의 옮음에 중독되면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내 몸이 원하는 도파민 분비를 가로막는 상대가 미울 뿐이다.

리더가 '나의 옮음'에 중독되면 조직은 위험해진다.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영감을 불어넣는 리더의 역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부하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한다. 이렇게 되면 부하들이 리더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말하지 못한다. 리더의 눈치를 보며, 자기 한 몸 지키는데 몰두하게 된다.

최근 정치권에서 보여준 일련의 사건은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얼마나 '나의 옮음'에 중독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9월 18일자 한 조간신문에 실린 '청와대의 경직된 풍토가 부른 禍'라는 제목의 칼럼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다른 의견 한번 냈다고, 그냥 바꾸는 것도 아니고 굳이 면직까지 시켜서 응징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의 산물이다."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옮음을 추구하는데 중독돼 있음이 거의 틀림없다고 할 것이다. 리더의 이 같은 태도는 조직내 소통 부족을 부른다. 해당 칼럼은 이런 사실도 밝히고 있다. "임기 마칠 때까지 대통령 앞에서 보고 한번 못한 장관들이 있어서 총리가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 좀 받아달라'고 건의했을 정도다."

옮음에 중독된 리더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의 선량한 '의도'(intention)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신의 말과 행동이 미치는 '영향'(impact)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는 대통령이 최근 국회를 향해 한 작심발언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만약에 (국회가) 국민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민에게 그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도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말은 선량한 의도에서 나왔을 것이다. 국민에 대한 국회의 의무는 삼척동자도 다 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무 반납은 특히 야당의 국회의원 사퇴, 나아가서는 국회 해산까지도 시사하는 말이다. 이 말의 직접 대상인 야당이 발끈하고 반발할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오히려 여야간 협상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는 박 대통령의 자신의 선량한 의도에 바탕을 둔 옮음만 추구했을 뿐, 자신의 말이 끼칠 부정적인 '영향'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리더가 '나의 옮음'에 중독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가 인터뷰했던 노리나 허츠 런던대 교수가 좋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 곁에 '최고 이의 제기자(chief challenger officer)'를 둬야 한다. 내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 말이다. 리더일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 필요한 사람은 '최고 이의 제기자'다. 그래야, 반대편 의견을 제대로 전달받을 수 있다. 그래야만 리더에게 숙명과 같은 '나의 옮음'에 중독되고픈 욕망을 차단할 수 있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의 회의 진행 방식을 본받아도 좋다. 슈밋 회장은 회의에서 미심쩍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는 "당신의 견해는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청취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견과 부합되는 증거만을 보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확증편향은 '나의 옮음'에 중독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보여주는 증거다. 리더라면, 그 같은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만약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면, 리더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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