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화 수선 전문가, 혹은 등반가 국윤경씨 이산저삶 당신의 발에 산신이 깃들기를
[MOUNTAIN=글 민은주 기자 사진 신희수 기자]
통화는 간략하게 끝났다. “네”, “오세요, 그럼” 단답형의 범연한 목소리에는 방문을 반기는 기색이 없었다. 홈페이지는커녕 간판도 없는 등산화 전문수선업체 ‘빅스톤 리페어’를 찾아가는 길, 북한산자락 고적한 주택가에 묵은 눈이 쌓여 불청객의 발걸음을 텁텁하게 했다. 비거덕, 비스듬한 빌라 2층의 두터운 쇠문이 열리자 은둔자의 동굴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약간 매운 냄새, 널찍하고 낡은 책상, 동선에 따라 배치된 작업대, 결벽하진 않지만 깔끔하게 배열된 도구들, 그리고 다치고 닳아 이곳을 찾은 무수한 등산화의 행렬. 그 사이 국윤경씨가 느긋하고 위엄 있게 앉아 있었다. 수선공, 장인, 혹은 모든 산신의 수명과 생사를 관장하는 마술사처럼.
망가진 등산화들의 성채에서 홀로
“일에 치여 살아요. 혼자 하니까 바쁠 땐 정말 정신없죠. 누가 찾아오면 대접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마주 앉아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좀 곤란하지요.”
수인사를 나누고 따끈한 모닝커피를 함께 마시는 동안 초면의 어색함이 사그라진다. 불퉁하게 느껴졌던 통화는 그저 무수한 낯선 이들에게 너무 잦은 전화를 받아야하는 사람의 생존법일 뿐, 국윤경씨는 다정한 성품이다. 폭신한 소파에 등을 파묻고 그의 나지막하고 울림 좋은 목소리를 듣다보니 약속도 없이 굳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심보도 이해가 된다. 오래된 기계의 기름때, 괴이한 모양의 강철도구, 층층이 쌓인 거칠고 부드러운 가죽, 20평 남짓의 공방은 유년의 호기심과 흥분을 일깨우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주로 하는 건 등산전문브랜드의 AS. 암벽화나 빙벽화는 개인적으로도 많이 들어와요. 전 따로 업체를 찾아가거나 홍보해본 적 없어요. 일만 제대로 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굴러가게 되어있거든요.”
봉급쟁이보다는 벌이가 낫다지만, 등산화 수선은 대가에 비해 노고가 많은 일이다. 간단한 수선이라도 신발 한 짝을 온전하게 고치기 위해서는 서른 번 이상을 손에 들었다 놔야하고, 일단 시작하면 꼬박 하루는 작업의 흐름에 몸을 맞춰야한다. 본드가 마르는 타이밍, 가죽이 부드러워지는 시간, 긴 호흡의 일을 붙잡을 때는 각오가 필요하다. 과거 TV 프로그램에 몇 번 나간 후 쏟아지던 관심의 후폭풍에 질려버렸다는 그는 자신의 공방이 박물관이나 전시장이 아님을 분명하게 한다. 인터뷰 역시 집중에 방해가 되는 듯, 국윤경씨는 점심때가 다 되도록 작업대 근처에도 다가가지 않는다.
“타고 나길 손재주가 좋아요. 예민하고 까칠하고, 뭐든 잡으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니까. 이렇게 손 많이 가는 일을 하고 살 팔자인 거죠.”
처음엔 공부하기 싫어서 시작한 일이다. 금강, 에스콰이어, 엘칸토, 유명한 제화업체에서 여성용 구두를 제작했다. 구두 한 켤레가 한 달 월급만큼 귀했던 때, 그는 뒷굽에 다이아를 박은 파티용 제품을 만들었다. 벌이도 대우도 좋은 시절이었다. 어느 순간 저가의 중국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고, 사람들은 구두 대신 운동화를 주로 신게 되었다. 직장생활의 보람은 줄어갔고, 그의 열정은 이미 산과 바위에 있었다.
“구두제작은 힘들어요. 골치 아프고 마진도 적죠. 헌데 수선은 제작보다도 더 복잡하단 말이죠. 신발마다 내용이 다 다르니까 하나 배워서는 못해요. 정해진 프로그램도 없고. 혼자 디자이너, 패턴사, 스타일리스트, 미싱사의 일을 다해야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렵죠. 저도 뭐, 어디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나? 혼자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한 10년 배웠어요. 처음엔 재밌었죠. 산에 다니는 사람이니까 등산화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재미있었다고, 그가 과거형으로 말한다. 50년대에 만들어진 점잖고 엄숙한 가죽 등산화와 지퍼가 고장 난 최신 삼중화가 공존하는 매혹적인 왕국에서 어쩐 일인지 그는 좀 무료하게 보인다.
지치고 지겹고 아름답고 사랑하는, 산
“산이 궁금하지가 않아요. 전에는 언제나 신비로운 곳이었는데.”
고해성사를 하듯 나직하게 국윤경씨가 말한다. 한때는 산에 가기 위해 살았건만 이제는 약속이나 잡혀야 움직이지 굳이 찾아 나서지는 않는다고. 이유야 적지 않다. 사람이 너무 많아졌고, 규제는 그만큼 늘었고, 산에서 할 짓 안할 짓 다하면서 여자나 꾀는 인종들도 보기 싫다. 거기 침울하게 덧붙여지는 마지막 문장. “노상 등산화랑 싸우다보니 산이 예전 같지 않은가봐.” 마땅한 대꾸도 질문도 떠오르지 않아 벽면에 걸린 나무 팻말을 가만히 바라본다. ‘빅스톤 리페어’ 양각이 멋스러운 그 이름은 2004년 국윤경씨가 창립한 큰돌산악회에서 따온 것이다.
한때 그는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고” 산에 다녔다. 89년 전문등반을 시작해 김용기등산학교와 서울등산학교에서 강사를 역임했고, 인수봉 남면 학교A, 학교B 개척에도 참여했다. 설악산 토왕성, 소승, 대승폭포를 올랐으며 2005년엔 가평군 용추계곡 인공빙벽 개척에 몸과 마음과 시간을 바쳤다. 대한산악연맹 경기도 고양시연맹 기술이사, 한국산악회 해외산악위원장, 산악계에서 받은 기대와 권한도 적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그는 일본 오쿠호다카다케봉과 쿠호다카다케봉을 동계 등정했으며 대학생 한중일 교류등반에 참여했다. 그런 국윤경씨가 산을 얘기하며 물에 젖은 종이처럼 무거워진다.
“옛날 친구들 중엔 이제 산에 안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가끔 추억 때문에 산에 가도 예전처럼 치열하진 않죠. 산도 많이 변했고. 이젠 등반이 대중적인 스포츠잖아요. 가끔 인수봉 가면 배려도 없고 예의도 없고, 속상하죠. 게다가 전 하루 종일 산과 연관되어 있으니 더 떠나고 싶어져요. 역시 산과 직업은 구분했어야 했나 싶고.”
너무 많이 소진한 것일까? 과밀한 회의가 이미 수선 불능일지 몰라 불안해질 때, 국윤경씨는 눈사태로 일 년에 백 명은 죽는다는 가마구찌 능선에서 죽기 살기로 3시간 동안 눈을 팠다는 얘기를 하며 과거를 부축하듯 웃음 짓는다. “그만두고 자시고가 어디 있나요. 나이를 먹으면 먹은 데로 안 내킬 때는 좀 덜 가고, 그리워지면 또 열심히 다니는 거죠.”
속도를 즐겨 종종 드라이브를 나서고, 작년 봄부터는 당구에 빠져 살고, 오지를 헤매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는 여전히 산자락에 살며 낡은 등산화를 보살피고 인수봉을 지붕 삼아 잠이 든다. 정말 푹 빠져서 살았다고, 열심히 올랐다고, 아쉬울 것이 없다고 말하는 국윤경씨에게 결국 산은 수구초심의 대상이다. 언제고 자신의 이름과 기술을 건 등산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 역시 그가 여전히 산사람이라는 증거이고.
“기술력은 되니까. 주문제작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있는데. 맞춤은 단가 맞추기가 힘들어요. 요즘은 뭐든 대량생산하는 시대니까, 한 사람만을 위한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기 쉽지 않죠. 그래도 브랜드 마크 하나 달랑 달아놓고 이삼십 만원 받는 신발들을 보면 속 터져요. 돈이 생기면 해보고 싶은데. 글쎄, 모르죠. 어떻게 될지.”
신발에서도 사람이 보인다
수거하러 다니는 구두닦이도 아닌데, 산에서 암벽화를 벗어주는 사람은 얄밉다. 바위 앞에서 국윤경씨는 등산화 수선공이 아닌 등반가다. “듣기 싫죠. 암벽 하러 갔는데 만날 신발 얘기만 하니까.” 때문에 종종 그는 산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성가시다.
더 얄미운 사람들은 빨지도 않고 수선을 맡기는 사람이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빨지 않은 암벽화에선 이루 말할 수 없는 냄새가 난다. 무좀균이 득실댈 듯 더러운 암벽화를 다룰 때는 섬뜩한 모욕을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도저히 만질 수가 없어서 직접 세척한 후에 작업에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둬두면 썩어요. 뭐든 마찬가지죠. 오래 신어서 삭는 게 아니라 밀폐된 곳에 넣어놔서 썩는 거에요. 자주 빨고 통풍되는데 꺼내 쉬게 해야 되는데.”
신발에게도 사람에게도 통하는 조언을 건네는 사이 전화벨이 여러 번 울린다. 수선을 부탁하는 전화, 언제 완료되는지 묻는 전화, 그는 간결하게 대답한다. “사진 찍어서 보내보세요.” “아직 손을 못 대서, 금요일까진 끝날 겁니다.” 택배가 계속 쌓이고 누군가 수선이 필요한 신발들을 가지고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점심을 함께 먹고 한담을 나누는 내내 국윤경씨는 여전히 작업대에서 멀리 있다. 일을 방해하고 있는 걸까, 조마조마한 건 차라리 이쪽이다. 수선 장면을 꼭 보고 싶다는 몇 번의 읍소 끝에 드디어 그가 몸을 일으킨다.
작업대의 불이 켜지자 국윤경씨는 연극의 주인공처럼 증폭된다. 가장 간단하고, 가장 하기 싫은 일이라는 등산화 뒤축수선이다. “신발을 왜 이렇게 신을까?” 대상도 없는 질문이 마구 구겨 신어 다 헤진 뒤축에 고인다. 침침한 색깔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안경을 쓴 그가 자애로운 의사처럼, 손상된 등산화들을 쓰다듬는다.
“등산화가 제일 중요한 장비인데, 요즘은 다들 패션이라고 생각하죠. 업체도 가격을 올리는 대신 부자재 값을 자꾸 낮추고. 가죽이 많을수록 오래 신는데 이거 봐, 다 비닐과 스펀지잖아요.”
아픈 신발의 줄을 풀고 밑창을 빼더니 그가 혀를 찬다. 아마도 흰색이었을 밑창은 이제 잿빛을 넘어 밤하늘처럼 새카매져있다. 보는 사람이 면구스럽게 지저분한 신발이지만 장갑을 끼고 일할 수는 없다. 그가 맨손으로 신발을 들고 너덜너덜한 부분을 가위로 잘라낸다. 연한 가죽을 사이즈에 맞춰 자르고 본드를 바른다. 은은한 냄새에 취기가 오른다. 만지고 당기고 붙이고 꿰매고 공기를 넣어 다시 신발이 살아나는 과정은 숙련된 노동의 현장이자 일종의 예술이다. 그리고 국윤경씨는 거기서 사람을 만난다.
“별 사람이 다 있죠. 깔끔한 사람, 까칠한 사람, 지저분한 사람, 이상하게 걷는 사람, 키랑 체중은 물론이고 성격까지, 신발 하나 고쳐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충 다 나와요.”
그러니 산다는 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질질 끌고 다니는 신발조차도 제 주인을 반영한다. 신발에 배인 습관과 행동양식을 통해 누군가는 나를 본다. 저절로 신고 있는 운동화에 눈이 향하는 기자에게 국윤경씨가 웃으며 말한다. “뒤꿈치 괜찮아요? 온 김에 좀 대줄까요?”
등산화에는 산이 깃들어 있다.
좋은 신발을 사서 오래 길을 들이고 고쳐 신는 것은 한 사람의 본령을 거기 깃들게 하는 일이다. 가죽은 영양제를 주고 내피는 자주 세척하고, 땀, 송진, 이물질 때문에 신발이 딱딱해지게 하지 말라는 국윤경씨의 충고는 하여 삶의 자세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수선공들은 모두 현자인걸까. 헛된 호기심으로 ‘빅스톤 리페어’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는데 국윤경씨가 이제 취재는 그만 하고 당구나 치러 가자고 닦달한다. 산으로 향하는 신발을 수선하느라 그는 산에서 조금 고립된 듯도 하다. 허나 근심 대신 가만한 웃음을 짓는다. 쇠문이 닫히기 직전, 다치고 헤져 제 몸 수선할 차례를 기다리던 등산화들이 모두 산을 닮아 있었으니.
민은주 기자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부동산"은 "김정현"공인중개사에게.... "세무"는 세무사에게 "회계"는 회계사에게 "건축설계"는 건축사에게...전문가에게 상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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