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걸었는데 신선이 되었네.. 월악산국립공원 제비봉 트레킹
국민일보 단양=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신선이 다스리는 빛 좋은 고을’
연단조양(鍊丹調陽)에서 충북 단양(丹陽)을 일컫는 말이다. 단양을 감싸고 있는 소백산맥과 휘돌아 흐르는 남한강이 빚어낸 풍광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육로와 수로를 따라가면 한 구비씩 돌아설 때마다 비경이 드러난다. 제비봉(해발 721m)에 올라보면 이를 실감하게 된다. 제비봉 등산로 대부분이 훌륭한 전망대다. 각도와 높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겨울산과 호수의 풍경이 눈을 즐겁게 만든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한번쯤은 봐야 할 명작(名作)이다.
제비봉은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연비산(燕飛山)’이라며 ‘높고 크고 몹시 험하다’고 적혀 있다. ‘연비산’을 우리말로 풀어쓰니 ‘제비봉’이 됐다. 배를 타고 구담봉(龜潭峰) 쪽에서 보면 부챗살처럼 드리워진 바위능선이 제비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인다. 가을철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얼어붙은 남한강의 물줄기를 줄곧 눈에 담고 가는 산행의 맛도 쏠쏠하다. 산 전체가 기기묘묘한 바위로 이뤄진 점도 매력적이다. 온갖 모양의 기암이 이어져 산세가 당당하다. 자연이 그린 수묵화나 다름없다.
산행은 장회리 장회나루에서 출발해 정상에 오른 뒤 다시 원점 회귀하거나 반대편 얼음골로 내려서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5㎞ 거리로 넉넉잡아 3∼4시간이면 족하다. 다만 입산 시간 지정제가 시행되고 있으니 사전에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겨울 시즌(11∼3월)에는 오후 2시 이후 입장이 제한될 수 있다. 눈이 내렸으면 아이젠은 필수다.
장회나루 인근 제비봉 공원지킴관리소를 들머리로 삼아 산행에 나선다. 남한강을 등지고 오르는 산길은 초입부터 가파르다. 통나무계단을 다 올라서면 다시 왼쪽과 오른쪽으로 급사면이 이어진다. 제비 날개를 타고 가는 길이다. 봉우리의 동쪽, 남쪽, 북쪽 등 세 방향의 시야가 탁 트인다.
숨이 턱에 차고 허벅지가 뻐근하지만 아름답게 휘어진 소나무들이 반기는 암릉길마다 전망대가 따로 없다. 철제 난간으로 이뤄진 나무계단은 아찔하지만 환상적인 풍광을 내어준다. 오성암 갈림길을 지나면 암릉이 떠받친 나무계단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잠시 숨을 고르는 틈을 타 뒤돌아본 풍광이 시원하다. 구담봉(龜潭峯·330m), 둥지봉, 말목산 사이를 휘감아 흐르는 남한강 줄기는 그대로 얼어붙어 장쾌하기 이를 데 없다. 마치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을 펼친 듯하다.
암릉마다 분재 같은 작은 소나무들이 여기저기에 자리잡고 있다. 척박한 바위에 붙어 바람결 따라 휘어진 자태가 멋지다. 양 옆 학선이골과 다람쥐골의 절벽이 아찔하다. 첫 번째 안내판(제비봉 1.3㎞, 매표소 1㎞)에서 수림지대를 거쳐 삼거리에서 학선이골 방면으로 들어서자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제천 쪽으로 향하는 물길이 크게 휘어지는 곳 왼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구담봉이다. 강물에 비친 기암절벽이 거북 등껍질을 닮았다는 봉우리인데 그 웅장하고 당당한 모습은 예부터 숱한 시인묵객들의 풍류의 대상이 됐다. 산 위에서 보니 더욱 옹골차다.
고도가 높아지면 얼어붙은 충주호의 물길도 하나 둘 나타나고 나중에는 제천 쪽 물길까지 아득하게 펼쳐진다. 북쪽 말목산 아래 2기의 무덤이 점처럼 보인다. 왼쪽 것이 두향(杜香)의 무덤이다. 두향은 단양군수로 있던 퇴계 이황과 사랑을 나눴던 기녀(妓女)다. 훗날 퇴계의 요청으로 기적(妓籍)에서 지워진 두향은 퇴계가 풍기군수로 전임하자 강선대(降仙臺) 아래에 초막을 짓고 그리워했다. 이후 퇴계의 타계 소식을 듣고 강선대에 올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때 나이가 26세였다. 둘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짠하다.
두향의 무덤 위 말목산 능선 너머로 금수산 봉우리가 보인다. 월악산과 맥을 같이 하는 등곡산, 동산, 신선봉, 미남봉, 망덕봉, 가은산, 둥지봉 등이 줄줄이 이어진 풍광이 장대하다. 정상에 발 딛는 게 목표가 아니라면 이쯤에서 내려가도 아쉬울 건 없다. 이후 정상까지는 조붓한 숲길이다. 내린 눈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얼음 호수가 나무들 사이로 잠깐씩 모습 드러낸다.
정상에서 맞는 세상은 ‘한 편의 그림’이다. 만지면 묻어날 듯한 파란 하늘, 그 아래 첩첩한 산들이 어우러져 티 없이 맑은 풍경을 만든다. 가까이로는 제비봉 모산인 사봉(879m)과 마주하고 멀리 소백산 능선도 시야에 들어온다. 나무데크로 만들어놓은 전망대에 서는 순간 입이 절로 쩍 벌어진다.
남한강을 마주하며 내려가는 하산 길은 오를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산을 내려와 장회나루로 향한다. 이곳에서 뱃놀이는 예부터 천하제일의 흥취로 꼽혔다. 지금은 꽁꽁 언 강물에 배들이 갇혀 있다. 햇살 좋은 봄날 다시 찾고 싶다.
단양=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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