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산악인의 좌충우돌 산행기, 불암산동서남북 산악회의 불암산 등반
동서남북 산악회. 내가 소속되어 있는 이 산악회는 20대와 30대로 이루어져 있다. 산에서 뵙는 분마다 우리보고 젊다고 하시니 우리는 젊은 산악회가 맞는 듯하다. ‘젊다’의 사전적 의미중 하나가 ‘혈기 따위가 왕성하다’인데, 우리와 딱 맞는다. 우리에겐 늘 도전, 열정, 신념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바꿔서 보자면 젊다는 건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뜻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늘 산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워서 돌아간다.
2014년 6월 정기산행의 목적지는 서울시와 남양주시에 걸쳐 있는 불암산이었다. 나는 불암산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상계역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해있던 산악회원들이 날 반겼다. 한 달 만에 봐서인지 할 얘기가 무척이나 많았으나 일단 산에 오르는 게 우선이었다. 우린 불암산 등산로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등산로 입구와 코스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이었는데 그 한 명이 지각을 한 것이다. 나머지는 불암산에 처음 와보는 초짜들. 우린 그 한 명을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세상이 좋아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면 길을 알 수 있었지만, 전에 산에서 길을 잃어 큰 고생을 했던 사람들은 안전산행을 외치며 그 한 명을 기다리기로 했다.
험난한 우리의 산행을 예고라도 하듯 지각한 대원을 기다리는 동안 한 차례의 소나기가 퍼부었다. 천둥번개까지 치면서 무섭게 내리는 비에 우리는 약간 긴장했다. 비가 오더라도 산행은 하기로 했으니 빨리 비가 멎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약 한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한 명과 함께 이번엔 정말 등산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등산로 입구를 찾아 가는 길이 주거지역이라 여기저기 담으로 막혀있는 곳이 많았다. 동네 온 골목을 헤집고 다니다 한 할머니의 도움으로 겨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에는 오르지도 않았는데 입구에 도착하니 땀이 아까 내렸던 소나기마냥 주룩주룩 흘렀다. 상계역부터 등산로 입구까지 우린 이미 모험을 한 것이었다.
안전산행을 위해 스트레칭을 하며 긴장한 몸을 풀어주곤 등산로에 진입했다. 비가 온 뒤 해가 나서인지 날씨가 매우 덥고 습했다.
우리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올라가자며 얘기하곤 불암산 정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 올라가는 곳곳이 모두 바위였다. 아뿔싸! 생각해보니 불암산의 ‘암’이 바위 암(巖)이었다. 이름이 벌써 산의 특성을 말해주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던 것이다. 앞으로는 산행 전에 내가 오를 산 정도는 검색해서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가야겠다는 다짐을 몰래 하게 됐다. 아무튼 우리에게 가진 건 열정과 힘이었으니 그 가파른 바위산도 맨손으로 열심히 올라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음 산행부터 장갑을 꼭 가져와야겠다는 두 번째 다짐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니 넓적한 바위 하나가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우린 그쯤에서 잠시 쉬기로 하며 뒤를 돌아봤다. 아직 정상도 아니었는데 이미 노원구 전체가 눈 안에 다 들어올 정도였다. 우린 정상에 온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신세대답게 스마트폰으로 찰칵찰칵 인증샷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우린 정상이 곧 나올 줄 알았다.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건 우리들의 착각이었고 불암산을 너무 과소평가 했던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린 불암산을 동네 뒷산쯤으로 여기고 올랐는데, 막상 올라가다보니 그냥 동네 뒷산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불암산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정상으로 다시 옮겼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정상임을 알리며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들의 첫 번째 불암산 등정이었다. 올라오는 동안 로프를 너무 많이 잡아서인지 손에서는 쇳내가 났지만 냄새가 좀 나면 어떠랴. 그건 내가 진정 산을 올랐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감격에 더해 우리는 동서남북 산악회의 기(旗)를 펼쳤다. 처음으로 펼치는 우리의 기는 우리를 더욱 자랑스럽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우리가 수많은 산들과 함께할 것이라는 걸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밀려드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정상에서 조금 내려왔다. 그곳엔 아이스크림을 팔고 계신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니 불암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을 아직 먹지 못했던 우리들의 눈길은 자연스레 아저씨의 아이스크림통으로 갔다. 천사 같은 한 멤버의 사랑으로 우린 정상 바로 아래에서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서울 시내를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 기분이란! 조금 과장해서 신선놀음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산만큼이나 인심 좋으신 아저씨는 그 옆 바위를 돌아가면 경치도 끝내주고 그늘이 있는 좋은 장소가 나온다며 우리들에게만 몰래 알려주셨다. 마음 같아선 그 장소에서 점심을 먹고 싶었으나 일정에 변경이 생겨 우린 하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다음에 오면 잊지 않고 찾아가리라 두 눈에 쾅 박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산을 하는데 세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올라가는 데 급급하느라 내려갈 때의 길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러 번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모두의 눈과 뇌를 굴려 하나의 길을 정했어야 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던가. 여러 명의 의견을 합쳤더니 올라갔던 길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제법 정확한 길로 다시 내려올 수 있었다. 아마 혼자였다면 벌써 길을 잃었거나, 다른 길로 내려왔을 거다.
이번 불암산 정기 산행은 우리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초보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생긴 지 1년이 조금 넘은 젊은 산악회는 이렇게 조금씩 어려움을 겪고, 문제에 부딪치며 수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산행을 통해 다짐하고 새로이 알게 된 사실들은 다음 번 산행을 대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그렇게 우리 산악회도 조금씩 성장해 나가며 초보의 티를 벗게 될 것이다. 나중엔 이 경험들이 모여 우리의 소중한 자산과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연륜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지금은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는 용기와 열정만으로 세상에 나아간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며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는 인생 초보다. 이런 내 모습이 젊은 우리 산악회의 모습과 오버랩 돼서일까? 동서남북 산악회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내 자신도 발전하는 것 같아 괜히 흐뭇해진다. 언젠가 우리 산악회도 나도 ‘초보’를 벗고 ‘연륜’의 길로 들어서는 그날이 오길 학수고대 해본다. 그리고 그 옆엔 언제나 산이 함께하길 바란다.
금보령_동서남북 산악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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