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의 봄은 천천히 온다해빙기 암벽등반 _새봄, 바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주의사항
[MOUNTAIN=민은주 기자]
바위의 겨울은 길다. 기상악화, 암반붕괴, 낙석, 마음은 봄볕을 내달려도 발밑엔 여전히 겨울의 위험이 남아있다. 해빙기 등반사고의 기록은 참담하고 무수하다. 1983년 4월 3일, 인수봉에서는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등반 중이던 클라이머 20명이 조난당하고 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991년 4월 7일에는 인수봉 의대길 1피치의 암반이 붕괴하면서 등반자들이 중상을 입었고 2001년 3월 18일에는 대슬랩에서 훈련 중이던 대학생이 낙석에 맞아 사망했다. 2014년 3월에도 인수봉 인수A코스 상단에서 500kg에 달하는 대형 낙석이 발생해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모두 봄이었다. 적어도 산에서는 ‘4월은 잔인한 달’이 시적인 비유가 아니다. 해빙기의 암벽은 냉혹하고 위험하다.
낙석, 봄이 머리를 노린다
낙석은 초봄 암벽등반의 가장 커다란 위험요소이다. 바위틈에 겨우내 얼어붙었던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발생하는 해빙기의 낙석은 등반실력과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사고이다. 기온이 상승하는 정오 이후는 밤사이 결빙이 녹아 암반이 불안정해지므로 특히 위험하다. 낙석은 인간이 100% 통제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위험을 피해 등반하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대표적인 멀티피치 암벽등반지인 북한산 인수봉과 선인봉의 경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봄마다 낙석제거 및 안전 작업을 벌이지만 여전히 사고는 일어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물론 해빙기의 암벽등반을 자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낙석의 위험도 등반의 일부’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아래의 주의사항을 명심하도록 하자.
해빙기 등반 중 낙석에 맞을 가능성을 줄이려면 남쪽 사면의 루트를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낙석은 등반 중에 인위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가능한 흔들리는 바위를 잡거나 발로 딛지 않도록 하고 로프의 흐름에 주의해야 한다. 다른 팀이 등반하는 루트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피하고 반드시 헬멧을 착용해야 한다. 배낭을 메고 등반하는 것도 낙석으로 인한 부상을 경감하는데 도움이 된다.
넓은 크랙이나 침니, 걸리 등은 낙석의 통로가 되기 쉬우며 멀티피치보다는 짧은 스포츠 루트가 상대적으로 낙석의 가능성이 적다. 만일 낙석이 발생했다면 떨어지는 방향을 확인한 후 몸을 피하고 반드시 “낙석!”이라고 크게 소리쳐 아래의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 등반자들이 각자 자력구조 시스템과 응급처치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
기상악화, 산의 날씨는 아무도 모른다
산은 변덕스럽고 봄이라면 더욱 그렇다. 진달래 환한 등산로를 걷다가 폭설에 휘말릴 수도 있는 것이 봄날의 산이다. 출발 전 날씨가 아무리 좋더라도 미리 기상예보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나 암벽등반 중에는 마땅히 눈비나 추위를 피할 방법이 없어 더욱 주의해야 한다. 또한 등반 중에 땀을 흘려 젖은 옷으로 앵커에서 대기하다보면 악천후가 아니더라도 저체온증이 올 수 있으니 반드시 보온의류를 챙겨 입어야 한다. 바위의 응달에는 여전히 얼음이 있을 수 있으니 등반 중에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지난 30년 간 국내기후자료를 보면 월평년 풍속이 가장 높은 달 중 하나가 4월이다. 봄바람은 절대 살랑살랑하지 않다. 특히 하강용 로프작업 중에 강한 바람을 만나면 자칫 즐거운 등반이 악몽으로 변할 수 있다. 강풍을 만났다면 로프를 로프백에 넣어 조금씩 풀어주면서 내려가는 것이 안전하다. 로프를 던지는 경우에는 두어 번 나눠서 떨어트려 엉키지 않도록 하고 로프 끝에 퀵드로 등으로 무게를 줘서 바람에 날리지 않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회수 중인 로프가 바람에 날려 나무나 크랙에 끼어버리는 곤란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하강시스템을 설치할 때 회수할 방향의 로프에 카라비너를 달아 반대쪽 로프를 걸면 잡아당기는 쪽으로 로프가 끌려 내려오므로 멀리 날아가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여러 번 끊지 않는 하강 포인트를 찾고, 가능하면 익숙한 루트로 내려오는 것도 강풍에 의한 하강사고를 줄이는 방법이다.
4월, 인수봉과 선인봉이 열린다
2015년 2월 16일부터 3월 31일까지 44일 동안 인수봉과 선인봉의 등반이 전면 금지되었다. 국내 멀티피치 암벽등반의 메카인 두 곳의 폐쇄조치는 등반가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으나 2014년 같은 대형 낙석사고를 막기 위한 예방조치로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북한산사무소 탐방시설과 이태권 안전방재담당자는 “3월 23일~27일까지 인수봉에서 119구조대 및 경찰구조대와 각 산악단체들이 합동해 낙석제거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통제되지 않은 노적봉, 족두리봉 등 나머지 구간도 자체적으로 안전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4월부터는 인수봉과 선인봉에서 암벽등반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낙석제거 작업이 끝났다고 산의 안전을 믿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자연과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점검하며 안전하게 등반하자. 봄은 겸손을 필요로 하는 계절이니까.
민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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