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중심에 드니 더위가 숨을 턱턱 막는다. 공기가 손에 잡힐 리 만무한데 허공에 손을 움켜쥐면 열기가 잡힐 듯 무게감이 대단하다. 하지만 드디어 휴가의 계절! 손가락셈을 하며 기다리던 시즌이 드디어 찾아왔다.
뜨거운 햇살보다 더 핫한 여름,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느냐가 추억 만들기의 관건이다. 해외에서 영화 같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꿈같은 일, 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조차 즐길 여유가 없다면 수도권 명당 가평으로 떠나자. 도내 최고봉 화악산(1468m)에서 축령산, 유명산을 비롯해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운악산이 하늘길을, 국내 수상레저의 중심인 북한강과 청평호반이 물길을, 용추계곡과 도마치계곡을 끼고 다양한 땅길이 펼쳐지니 수도권에 여름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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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은 암릉엔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숲길엔 시원한 그늘이 많아 이열치열 산행지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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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치 않은 더위 그놈!아무리 시원한 그늘을 찾아 숲으로 들어간다 해도 7월 여름 더위가 만만할 리 없다. 산행 당일, 가평으로 향하기 전부터 자연스레 더위와의 전쟁(?)이 걱정됐다. 최대한 가볍고 시원한 옷을 골라 입고, 옷 밖으로 노출된 피부엔 꼼꼼하게 자외선차단제를 발랐다. 저마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도 하나씩 챙겨왔다. 그제야 '이만하면 되겠지' 싶어 차에 올랐다.
쨍쨍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운악산 들머리. 차 문을 열기가 무섭게 열기가 달려든다. 햇볕이 여간 얄밉지 않다. 산행을 시작도 하기 전부터 숨 쉴 때마다 더운 기운이 폐까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침인데 벌써 이러면 오늘 엄청 덥겠는데요? 쉬엄쉬엄 올랐다가 빨리 내려와야겠어요." 여기자가 둥그런 모자를 눌러쓰며 한 마디 꺼냈다.
일행은 평소보다 물을 한 병씩 더 챙겨 배낭 양쪽에 꽂아 넣고 분주하게 산으로 향했다. 시간을 지체하면 기온은 더욱 올라갈 테니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입구에 늘어선 식당을 지나면 과거 매표소였다가 입장료가 사라지면서 지금은 안내소로 바뀐 건물이 나온다. 그리고 곧바로 산길로 접어든다. 안내소를 통과하니 한자로 큼지막하게 운악산(雲岳山)이라고 새겨진 시비가 반긴다.
운악산(雲岳山) 만경대(萬景臺)는 금강산(金剛山)을 노래하고
현등사(懸燈寺) 범종(梵鐘)소리 솔바람에 날리는데
백년소(百年沼) 무우폭포(舞雩瀑布)에 푸른 안개 오르네
누구의 시인지 알 수 없지만,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운악산의 운치를 떠올려 보기에 더 없이 좋은 내용이었다. 안내소를 지나면서 그늘에 들어서인지 더위도 가신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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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에 세워진 운악산 시비가 운악산 산행을 기대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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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천년고찰 현등사는 운악산의 화룡점정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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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 견주는 아름다운 산세시비 앞에서 고개를 돌리니 눈앞으로 현등사 일주문이 보인다. 한글로 '운악산 현등사'라고 쓰여 있다. 이제껏 한자로 새겨놓은 현판만 보다가 한글로 쓰인 것을 보니 왠지 친근감이 든다. 일주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운악산은 경기도 가평군과 포천군에 솟아오른 골산으로 관악산·화악산·감악산·송악산과 더불어 경기 오악으로 손꼽힌다. 산 곳곳에 우뚝 선 바위들은 저마다의 형상으로 능선을 따르고, 능선을 떠받들며 군락을 이룬 노송들은 한 폭의 고즈넉한 수묵화를 이룬다. 덕분에 운악산은 '경기의 소금강'이란 칭호까지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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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운악산은 암릉은 장쾌하고 숲은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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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화만 신었다면 어떤 구간도 초보자여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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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방법도 여럿이다. 가평군과 포천군에서 오르는 길이 있는데 가평군은 하판리에서, 포천군은 운주사 입구에서 출발한다. 보통은 산행의 재미가 깊고 코스가 다양한 가평군 코스를 이용한다. 가평군에서 오르는 코스도 세 가지나 되는데, 모두 안내소에서 출발해 정상으로 향한다. 일행은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2코스로 올라 1코스로 하산하는 방법을 택했다. 입구에서 큰길을 따르다가 눈썹바위로 빠져 암릉을 거쳐 병풍바위~미륵바위~만경대를 거쳐 정상에 올라 남근석 바위를 통해 절고개~코끼리바위~현등사~원점회귀 하는 코스다.
"안내도를 보니 암릉이 많고 암릉과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다워서 지난달 팔봉산과 비교해 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기자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덟 개의 봉우리가 저마다 빼어난 미를 갖췄던 홍천의 팔봉산과 금강산의 아름다운 산세를 고스란히 닮았다는 운악산은 지역은 다르지만, 형제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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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 산세에 비해 정상은 심심하다. 가평과 포천에서 세운 정상석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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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에 오르면 하늘이 열리고 사방이 내려다보이면서 신선이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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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등사에서 기사회생30분쯤 걸었을까. 일행의 말수가 줄었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배낭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코스를 바꿔서 현등사에 들렀다 가시죠. 기운이 없어서 소금이라도 얻어서 먹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사진기자가 툭 하고 말을 던졌다. "그렇게 해요. 물도 벌써 한 병을 마셨어요." 사진기자의 말에 모두 이구동성으로 찬성한다.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올라오는데도 덥긴 더웠나 보다. 여느 때와 달리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갑작스레 코스를 바꿔 현등사를 통해 1코스로 정상에 오른 뒤 2코스를 통해 하산하기로 했다. 몸에선 땀이 비 오듯 하고 몸은 천근만근이니 기력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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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은 가팔랐지만, 위험구간엔 반드시 안전시설이 구비 돼 있어 안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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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간절했던 시절 소망을 담아 바라봤던 운악산의 명물 미륵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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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니 현등사가 보였다. 천년고찰 현등사는 오랜 역사만큼 다양한 설화와 실화가 존재한다. 법흥왕(514년) 때 불교를 전하러 이 땅에 온 인도 승려를 위해 지어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후 여러 번 폐사와 재건을 거치면서 현등사라는 이름을 얻고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큰길에서 절로 향하는 언덕에 다다르니 108개의 계단이 닦여 있다. 아마도 불교의 백팔번뇌(百八煩惱)에서 기인했으리라. 계단을 만든 사람은 누군가 한 계단 한 계단 이곳을 오를 때마다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온갖 번뇌를 내려놓기를 바랐을 것 같다. 지친 걸음을 계단에 맡기며 절 마당까지 올랐다. 그리고 사람이 있는 법당을 찾아 소금을 구했다. 다행히도 불자인지 법당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공양간으로 들어가 소금을 내왔다. "죽염입니다. 그냥 드셔도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산 정상은 이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시면 돼요. 안전하게 산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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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옆으로 쓰러진 나무가 멋진 다리를 놓아줘 그 위를 걸어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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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받아든 죽염보다 그분의 친절에 더 감동했다.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현등사를 떠났다. 몇 분 걸으니 오르막이 나타났다. 일행은 저마다 손바닥에 죽염을 조금씩 덜어서 입에 '탁'하고 털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서 빠져나간 염분이 채워지며 거짓말처럼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신기하네요. 이제 쌩쌩하게 산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지쳐 있던 여기자가 힘 있게 얘기하니 나머지는 자연스레 표정이 밝아졌다. 말 그대로 기사회생한 듯했다.
암벽에 숨어 사는 코끼리 한 마리산행 초반에 진을 빼고 나니 계획보다 시간이 많이 늦어져 있었다. 일행은 마음을 다잡고 걸음에 속도를 냈다. 숲으로 접어들자 하늘은 닫혀 있는데 길은 암릉으로 바뀐다. 가파르다 싶으면 철 로프가 연결돼 있어 오르기에 어렵지는 않다.
산책로 수준의 길에서 녹다운됐던 일행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동작이 재빨랐다. 훈련에 나온 군인들처럼 일렬로 서서 발맞춰 걸었다. 절고개폭포를 지나니 다시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지친 기색이 없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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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바위는 동물 이름이 붙여진 바위 중에 가장 섬세한 모양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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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기에 코끼리가 있어요!" 막내 기자가 손가락으로 절벽을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정말 코끼리랑 똑같이 생겼네. 어쩜 저렇게도 닮았을까." 바위를 올려다보며 다른 여기자도 말을 거든다. 눈을 돌려보니 그곳엔 정말 커다란 코끼리가 긴 코를 늘어뜨리며 서 있었다. 코끼리바위였다.
전국에 동물의 형상을 닮아 이름 붙여진 바위 중에 이렇게 빼어 닮은 바위가 있을까. 코끼리를 염두에 두고 자연이 정교하게 조각이라도 한 듯 큰 바위를 몸통 삼아 코끼리가 머리를 절벽 밖으로 내밀고 서 있는 것 같았다. 자연스레 가던 걸음을 멈추고 코끼리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 바위를 감상하며 잠시 쉬었다.
숨을 돌리고 다시 산길에 올랐다. 없던 기운까지 솟아나는지 일행 모두 화색이 돌며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단숨에 전망대까지 향했다. 전망대에 오르니 좌측에 남성성을 상징하는 남근석과 함께 산 아래 정면으로 능선을 따라 산이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가을이면 능선을 타고 울긋불긋 단풍으로 축제가 벌어지리라. 가을날 다시 찾아 운악산이 추는 춤사위를 따라 계곡을 지나고 능선을 타고 넘으며 산무(山舞)에 동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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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지나면서 자연에 껍질을 내어준 소나무. 한 마리의 달팽이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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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산에서 만나는 조각공원전망대에서 정상은 지척이다.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이루는 운악산 명성에 비해 정상은 심심하다. 너른 땅 위에 두 개의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하나는 가평군에서 하나는 포천군에서 세운 것이다. (양 정상석에 937.5m라고 높이가 새겨 있는데 안내도와 책자에는 935.7m로 표기돼 있다. 나중에 군청에 확인해보니 두 표기 모두 틀리고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가지고 있는 934.7m라는 기록이 맞는다고 한다.)
오래 머물 것 없이 하산 길에 올랐다. 만경대에 오르니 하늘이 열리면서 사방이 모두 내려다보인다. 일행이 마치 구름에 올라선 신선 같다. 내리막은 가팔랐지만, 안전시설이 잘 갖춰 있어 등산화를 신은 사람이면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을 정도다.
조금 내려가니 미륵바위가 떡하니 나타났다. 미륵이라는 이름은 가족의 건강과 함께 다산을 바라는 마음으로 남근석에 붙여진 이름이다. 의미를 알고 다시 보니 비탈진 암릉에 우뚝 솟은 모양에서 우리네 정서의 해학이 느껴진다. 운악산 명물로 손색없다.
조금 더 내려가니 좌측으로 여러 폭으로 시원하게 늘어선 병풍이 일행을 반긴다. 병풍바위다. 기암괴석이 형제를 이룬 듯 어찌나 조화로운지 감탄이 절로 난다. 규모야 비교할 수 없지만, 산세는 금강산 만물상을 닮은 듯하다. 운악산을 소금강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같다. 병풍바위는 전망이 좋은 곳에 쉼터가 마련돼 있어 풍광을 조망하며 쉬었다가 가기에도 좋다.
이곳을 지나면 사람의 속눈썹을 그대로 닮은 눈썹바위를 지나 원점 회귀한다. 오늘은 코스를 변경해서 1코스로 올라 2코스로 하산했지만, 보통은 반대로 산행한다. 2코스가 풍광이 훌륭하고 오르는 맛도 좋으니 산행 전 체력이 괜찮다면 2코스~1코스 순서를 따르는 것을 추천한다. 날씨가 더워 초장부터 진이 빠졌던 터라 산행의 재미를 오롯하게 즐기지 못한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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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바위로 향하는 길, 능선마다 어깨를 맞대며 춤을 추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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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 정보 운악산은 가평 8경 중 6경으로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운악이란 이름 그대로 구름을 뚫은 기암괴석 봉우리가 절경을 이룬다. 천년고찰 현등사와 계곡을 수놓는 백년폭포, 무우폭포 등 몸과 마음의 휴식처로 손색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