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리더십[김종철 기자의 퓨전 리더쉽&롤모델]
어느 날 지하철을 나와 늦은 밤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앞서 가던 여성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갑자기 발걸음이 빨라진다. 뒤에 있는 내가 혹시 나쁜 사람은 아닌지 의심하는 눈치다. 어느덧 골목길의 중간에 이르자 신경전이 벌어진 것처럼 서로 잰걸음의 연속이다. 세상이 환한 낮이라면 앞서 가든 뒷서 가든 아무 것도 아닐텐데 인적이 드문 시간이니 내 발자국 소리가 묘한 긴장감을 주었나보다. 하도 위험한 일이 자주 발생하는 세태여서 그런지 모두가 경계하는 모습이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그런데 만일 어떤 분이 불량배들에 둘러싸여 있거나 갑자기 몸이 아파 어두운 골목길에 쓰러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인기척과 그로 인한 발자국 소리는 불안의 메시지일까 아니면 희망의 메아리일까? 이럴 땐 십중팔구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사람을 폭력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엠블란스를 불러 병원에 데려다 줄 구원의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두 가지 상황을 비교해 보면 분명 발자국은 비슷한 인간의 소리인데, 전해오는 느낌이 너무도 다르다.
눈 내리는 겨울에 들려오는 ‘뽀드득 뽀드득’ 발자국 소리는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청량제다. 하지만, 눈길을 걷는 분들은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바로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에 따라 뒤에서 오는 분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올곧게 발자취를 남긴다면 안전하고 편안한 이정표가 될 수 있지만, 이리저리 흩뜨리면 뒷사람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이럴 경우 귀한 시간을 허비해 목적지에 늦게 도착할 수 있고 엉뚱한 길로 빠져 산짐승을 만나거나 아예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특히 겨울 산행에서는 방향 감각을 상실할 경우 조난당할 염려도 있기에 한층 더 조심해야 한다. 이는 인생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선배가 길을 제대로 닦아 놓으면 후배가 잘 본받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번엔 야생에서 살아가는 여우의 사례를 살펴보자. 교활한 이미지의 대명사로 알려진 여우는 습관적으로 발자국을 고르게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워낙 생존 경쟁이 살벌한 야생의 세계이기에 집으로 향할 때 직선이 아닌 둥그런 원을 그리듯 빙빙 돌면서 발걸음을 놀린다. 혹시 누군가라도 쫓아오면 새끼를 포함해 가족 모두가 희생될 수 있기에 예방 차원에서 어지러운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인간들은 약삭빠른 이미지 혹은 얄미운 행동을 하는 사람에 빗대기도 하지만, 사실상 여우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내가 살려고 그러는 것인데, 누가 함부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여우가 이렇게라도 머리를 쓰지 않는다면 먹거리를 구하기는 커녕 종족이라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만무하다.
그렇다면 발자국의 의미를 살아가는 세상에 비유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먼저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이나 기성세대는 발걸음을 내딛는 데 더욱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집안에서 가장이 말을 함부로 하고 폭력을 행사하면 부부 관계가 깨지고 자녀들이 엇나간 행동을 할 수 있다. 아빠가 젊을 땐 기분 내키는 데로 처신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 큰 코 다친다. 여러 면에서 부모를 빼닮는 아이들은 습관이나 버릇을 그대로 답습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함부로 혀를 놀리거나 주먹을 쓰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마찬가지여서 매사 언어나 행동거지에 있어서 신중히 처신해야 제자들이 바르게 따라올 수 있다.
요즘 사회 각계에 돌발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민심이 흉흉한 모습이다. 재계의 모범이 돼야 할 재벌가 자녀가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다가 쇠고랑을 찰 위기에 처했고, 국회의원이 불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다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선망의 자리에 오른 어떤 유명 교수는 제자를 성희롱해 교단에서 물러났고, 전도유망하던 고위 군 간부는 부하 여군을 위로하려다 한 순간의 실수로 군문을 떠나야 했다. 호기심어린 눈망울로 여의도 국회의 정치 현장을 배우러 온 어린 학생들은 지위 높은 어른들이 티격태격 싸우는 장면에서 과연 무얼 느꼈을까?
국민의 공복(公僕)으로 불리는 공무원 사회 역시 소신껏 일하기보다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데 익숙하다. 흔히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존재’로 불려 정권이 바뀜에 따라 조변석개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 정도가 지나쳐 심각한 폐해를 낳기도 한다. 공무원들은 대개 오래 공들여야 성과가 나는 업무보다 이른 시일에 결과물이 나오는 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결국 한시라도 빨리 업적을 내려고 하는 권력자의 입맛에 맞춘 것이지만, 한편으론 승진에 유리한 목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습성에서도 기인한다. 또 급속도로 세상이 변하는 현실에서 법과 제도가 융통성 있게 달라져야 하지만, 옛날에 제정된 법과 규정을 제 때 개선하지 않아 국민이나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이를 고치려면 여기저기 부딪히는 게 많고 일을 그르치면 승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그래도 총대를 메고 개혁에 나서는 분들을 자주 봤으면 좋겠다. 물론 음지에서 소신껏 근무하는 분들도 찾을 수 있지만 공무원 사회의 속성상 다이내믹한 일처리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일듯 싶다.
이런 상황은 일반 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만일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다가 난관에 빠지면 하나 둘 입을 닫고 뒤로 숨는다. 그러다가 누군가 열심히 뛰어 성공적인 결과를 내면 갑자기 공로를 세운 분(?)들이 속속 등장해 자신을 공치사하기에 바쁘다. 이런 모습은 한 기업의 문화와도 관련성이 있어 최고경영자가 임직원들을 믿고 맡기는 곳이라면 톱니바퀴처럼 원활히 돌아가지만, 그 반대라면 소극적인 태도가 회사 분위기를 지배할 수 있다. 또 사내 정치가 벌어져 고위층에 눈도장을 찍으려 애쓰고 엉뚱한 소문을 유도해 유능한 인재를 내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얼마 전 발생한 대한항공의 여객기 회항 사건은 참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국민의 성원 덕택에 세계 으뜸 항공사의 하나로 성장했는데, 전혀 반갑지 않은 치부가 드러났기에 씁쓸하다. 결국 대주주의 의견과 입맛이 더 소중했고 오랫동안 곪았던 환부가 마침내 속살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문제는 국내를 넘어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했기에 매우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새겨 나가는 발자국은 다양한 시각에서 그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사회에 소속되어 있고,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본연의 역할이 주어져 있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발걸음이 혼란스러우면 이웃간에 분쟁의 빌미가 될 수 있고, 사회 지도층이나 집안의 가장이 엉뚱한 발자취를 남기면 국가가 위태롭고 가정이 흔들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발자국은 그저 뚜벅뚜벅 걸어서 만들어낸 물리적 흔적만이 아닌, 인생을 두루 살피며 걸어가는 나침반이자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김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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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일 어떤 분이 불량배들에 둘러싸여 있거나 갑자기 몸이 아파 어두운 골목길에 쓰러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인기척과 그로 인한 발자국 소리는 불안의 메시지일까 아니면 희망의 메아리일까? 이럴 땐 십중팔구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사람을 폭력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엠블란스를 불러 병원에 데려다 줄 구원의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두 가지 상황을 비교해 보면 분명 발자국은 비슷한 인간의 소리인데, 전해오는 느낌이 너무도 다르다.
눈 내리는 겨울에 들려오는 ‘뽀드득 뽀드득’ 발자국 소리는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청량제다. 하지만, 눈길을 걷는 분들은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바로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에 따라 뒤에서 오는 분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올곧게 발자취를 남긴다면 안전하고 편안한 이정표가 될 수 있지만, 이리저리 흩뜨리면 뒷사람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이럴 경우 귀한 시간을 허비해 목적지에 늦게 도착할 수 있고 엉뚱한 길로 빠져 산짐승을 만나거나 아예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특히 겨울 산행에서는 방향 감각을 상실할 경우 조난당할 염려도 있기에 한층 더 조심해야 한다. 이는 인생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선배가 길을 제대로 닦아 놓으면 후배가 잘 본받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번엔 야생에서 살아가는 여우의 사례를 살펴보자. 교활한 이미지의 대명사로 알려진 여우는 습관적으로 발자국을 고르게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워낙 생존 경쟁이 살벌한 야생의 세계이기에 집으로 향할 때 직선이 아닌 둥그런 원을 그리듯 빙빙 돌면서 발걸음을 놀린다. 혹시 누군가라도 쫓아오면 새끼를 포함해 가족 모두가 희생될 수 있기에 예방 차원에서 어지러운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인간들은 약삭빠른 이미지 혹은 얄미운 행동을 하는 사람에 빗대기도 하지만, 사실상 여우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내가 살려고 그러는 것인데, 누가 함부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여우가 이렇게라도 머리를 쓰지 않는다면 먹거리를 구하기는 커녕 종족이라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만무하다.
그렇다면 발자국의 의미를 살아가는 세상에 비유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먼저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이나 기성세대는 발걸음을 내딛는 데 더욱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집안에서 가장이 말을 함부로 하고 폭력을 행사하면 부부 관계가 깨지고 자녀들이 엇나간 행동을 할 수 있다. 아빠가 젊을 땐 기분 내키는 데로 처신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 큰 코 다친다. 여러 면에서 부모를 빼닮는 아이들은 습관이나 버릇을 그대로 답습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함부로 혀를 놀리거나 주먹을 쓰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마찬가지여서 매사 언어나 행동거지에 있어서 신중히 처신해야 제자들이 바르게 따라올 수 있다.
요즘 사회 각계에 돌발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민심이 흉흉한 모습이다. 재계의 모범이 돼야 할 재벌가 자녀가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다가 쇠고랑을 찰 위기에 처했고, 국회의원이 불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다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선망의 자리에 오른 어떤 유명 교수는 제자를 성희롱해 교단에서 물러났고, 전도유망하던 고위 군 간부는 부하 여군을 위로하려다 한 순간의 실수로 군문을 떠나야 했다. 호기심어린 눈망울로 여의도 국회의 정치 현장을 배우러 온 어린 학생들은 지위 높은 어른들이 티격태격 싸우는 장면에서 과연 무얼 느꼈을까?
국민의 공복(公僕)으로 불리는 공무원 사회 역시 소신껏 일하기보다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데 익숙하다. 흔히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존재’로 불려 정권이 바뀜에 따라 조변석개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 정도가 지나쳐 심각한 폐해를 낳기도 한다. 공무원들은 대개 오래 공들여야 성과가 나는 업무보다 이른 시일에 결과물이 나오는 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결국 한시라도 빨리 업적을 내려고 하는 권력자의 입맛에 맞춘 것이지만, 한편으론 승진에 유리한 목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습성에서도 기인한다. 또 급속도로 세상이 변하는 현실에서 법과 제도가 융통성 있게 달라져야 하지만, 옛날에 제정된 법과 규정을 제 때 개선하지 않아 국민이나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이를 고치려면 여기저기 부딪히는 게 많고 일을 그르치면 승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그래도 총대를 메고 개혁에 나서는 분들을 자주 봤으면 좋겠다. 물론 음지에서 소신껏 근무하는 분들도 찾을 수 있지만 공무원 사회의 속성상 다이내믹한 일처리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일듯 싶다.
이런 상황은 일반 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만일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다가 난관에 빠지면 하나 둘 입을 닫고 뒤로 숨는다. 그러다가 누군가 열심히 뛰어 성공적인 결과를 내면 갑자기 공로를 세운 분(?)들이 속속 등장해 자신을 공치사하기에 바쁘다. 이런 모습은 한 기업의 문화와도 관련성이 있어 최고경영자가 임직원들을 믿고 맡기는 곳이라면 톱니바퀴처럼 원활히 돌아가지만, 그 반대라면 소극적인 태도가 회사 분위기를 지배할 수 있다. 또 사내 정치가 벌어져 고위층에 눈도장을 찍으려 애쓰고 엉뚱한 소문을 유도해 유능한 인재를 내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얼마 전 발생한 대한항공의 여객기 회항 사건은 참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국민의 성원 덕택에 세계 으뜸 항공사의 하나로 성장했는데, 전혀 반갑지 않은 치부가 드러났기에 씁쓸하다. 결국 대주주의 의견과 입맛이 더 소중했고 오랫동안 곪았던 환부가 마침내 속살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문제는 국내를 넘어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했기에 매우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새겨 나가는 발자국은 다양한 시각에서 그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사회에 소속되어 있고,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본연의 역할이 주어져 있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발걸음이 혼란스러우면 이웃간에 분쟁의 빌미가 될 수 있고, 사회 지도층이나 집안의 가장이 엉뚱한 발자취를 남기면 국가가 위태롭고 가정이 흔들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발자국은 그저 뚜벅뚜벅 걸어서 만들어낸 물리적 흔적만이 아닌, 인생을 두루 살피며 걸어가는 나침반이자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김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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