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봉우리에 솟은 ‘산중 호텔’소백산 제2연화봉 대피소
통신중계소가 있던 제2연화봉 자리에 대피소가 들어섰다. |
지난해 11월, 소백산에 첫 대피소가 생겼다. 제2연화봉(1357m)에 들어선 이 대피소는 2014년 10월부터 첫 추진되어 근 1년 만에 실체를 드러냈고, 2015년 12월 16일부터는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산에 들어선 ‘5성급 호텔’이라고 불릴 만큼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제2연화봉 대피소의 등장배경과 시설·이용현황, 이용객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설립배경과 과정>
환경개선사업의 일환, 2014년 추진
제2연화봉 대피소 건설계획은 2014년부터 가시화되었다. 2014년 10월 28일, 소백산국립공원 북부사무소는 ‘소백산 고지대 탐방안내소 정비·재난 안전 추진 대책 전문화 계획’ 등이 포함된 ‘2015년 신규사업계획’을 발표하며 “2015년 초, 제2연화봉에 있는 KT 중계소를 리모델링해 대피소 등 공원시설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탐방객이 대피소로 올라오고 있다. 대피소 예약자에 한해 입산 통제시간이 오후3시까지 적용된다. |
소백산 천문대에서 바라본 대피소. 천문대까지는 30분이 걸린다. |
당시 제2연화봉에는 KT 중계소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이곳에 대피소를 설치하기 위해 2014년 7월, KT로부터 이 중계소와 부지를 기부채납 형식으로 이전받은 것이다. 이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오랫동안 추진해 온 ‘국립공원 환경 개선사업’의 하나이기도 했다. 소백산 북부사무소는 2006년부터 연화봉 일원에 상주하는 군부대, KT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철조망과 경비 초소 등 소백산 환경 저해시설들을 정비해왔다.
또한 산 전체에 방치된 미사용 시설물을 연차적으로 철거하며 소백산 국립공원을 자연 상태로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대피소 신설 역시 조성할 때부터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주변경관과 최대한 조화를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옛 중계소 시설을 모두 철거 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기존 외관을 최대한 살리고 내부구조와 시설만 바꾸는 방식을 채택했다.
대피소 전망대에 서면 일출과 일물을 감상할 수 있다. |
사업계획 발표 후 1년 만에 완공
북부사무소는 사업계획 발표 후 2014년 12월 23일, ‘소백산 대피소 신설공사 설계용역’을 공고하며 사업진행에 박차를 가했다. 공고 후 6일 만에 단양에 소재한 한 건축사사무소와 계약을 맺어(계약금 약 3천9백만 원) 구체적인 공사계획을 세웠다.
이후 7개월이 지난 2015년 7월에는 완성된 계획을 토대로 실행에 옮겼다. 21일, 신설공사를 도맡을 업체와 계약(계약금 약 9억1천8백만 원) 후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했으며, 8월 5일과 7일에는 각각 소방공사(계약금 약 3천1백만 원)와 전기공사(계약금 약 8천1백만 원) 업체를 선정해 전체적인 공사 준비를 마쳤다.
‘나라장터’ 홈페이지에 공고된 대피소 신설공사 계약정보(계약금 약 9억1천8백만 원). |
공사가 시작된 후 10월 13일에는 공단의 박보환 이사장이 공사현장을 방문해 직원들에게 “소백산을 대표하는 시설이 될 수 있도록 견실하게 짓고, 안전관리에도 앞장서 달라”고 말하며 각별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총 11억 원의 예산이 소요된 대피소 신설공사는 착공 후 4개월만인 11월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소백산은 설악산·덕유산·지리산에 이어 4번째로 대피소가 들어선 국립공원이 되었다(투숙 가능 대피소 기준).
지난해 11월 23일,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발표한 ‘대피소 신설’ 보도자료. |
환경부와 공단은 11월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소백산 국립공원에 최초로 대피소가 신설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국립공원관리공단 김두한 공원시설부장은 “설악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중심부인 소백산에 최초로 대피소를 건설했다”며 “백두대간의 안전한 탐방은 물론 자연자원 보호 등 공원관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우 의미 있는 시설”이라고 전했다. 이후 대피소는 개소식(11월 26일) 후 시범운영을 거쳐 12월 1일부터 일반 탐방객들의 예약접수를 받아 12월 16일 정상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제2연화봉 대피소의 시설과 이용현황
제2연화봉 대피소는 지상 2층, 전체면적 761㎡의 규모로 총 125명(독립 111, 침상 14)을 수용할 수 있다. 전체면적은 총 16개의 국립공원 대피소 중 단연 최고를 기록했고, 수용인원은 지리산 세석(180명), 장터목(155명)에 이어 3번째다. 세석과 장터목의 전체면적이 각각 653㎡, 657㎡인 것을 감안하면 제2연화봉 대피소는 1인당 면적이 넓다고 볼 수 있다.
대피소의 세부적인 시설은 객실 6개소(연화봉, 제1연화봉, 제2연화봉, 도솔봉, 국망봉, 비로봉)와 탈의실, 취사장, 화장실, 매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객실은 모두 복층 구조를 띠고 있으며 개인별 칸막이가 세워져 있는 독립형 객실이 4개소와 칸막이가 없는 침상형 객실 2개소로 나뉜다. 화장실은 보통 대피소와 다르게 수세식 변기가 놓여 있으며, 넓은 취사장에는 물이 잘 나오는 4개의 개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최신식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대피소는 완공 이전부터 등산객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아왔으며 본격적인 운영 이후 많은 발길이 이어졌다. 운영 첫 날이었던 12월 16일(수요일)에는 30명이 예약을 했고, 2015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목요일)에는 119명이 소백산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12월 평균 예약률은 37%였으며, 1월 평균 예약률(18일까지)은 36%로 나타났다.
설악산·덕유산·지리산의 2014년 평균 예약률(환경부 자료)이 각각 68.6%, 54.3%, 58.9%인 것에 비하면 다소 떨어지는 수치이지만, 이들의 취소율(평균 15% 이상)이 높다는 점과 탐방객 수가 소백산보다 많다는 점, 제2연화봉 대피소가 산행 중 숙박을 하기 애매한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죽령탐방지원센터에서 대피소까지는 약 2시간이면(5.2㎞) 오를 수 있으며 대피소에서 소백산의 최고봉인 비로봉(1439.5m)까지는 2시간10분(6.1㎞)정도 소요된다. 대피소의 시설사용료는 1일 기준, 독립형 1만 원(성수기 1만1천 원), 침상형 7천 원(성수기 8천 원)이다.
<‘산중 호텔’, 제2연화봉 대피소 구석구석>
수십 명이 자고도 남을 만큼 넓은 대피소 중앙 마루. 벽면에는 소백산 국립공원의 생태와 자연환경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걸려 있다. |
입구에 위치한 신발장 덕분에 더 이상 누군가의 냄새나는 신발과 뒤섞일 일은 없다. |
‘독립형 객실’에는 개인 사생활을 위한 칸막이가 세워져 있다. |
각 객실마다 히터가 설치되어 있어 겨울에는 추위 걱정 없이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오히려 밤새 건조해지는 목과 코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
대피소 중앙에 나 있는 큰 창문 너머로 소백산천문대와 제1연화봉이 내려다보인다. 눈 덮인 소백산이 절경이다. |
칸막이가 따로 없는 ‘침상형 객실’은 단체나 가족이 이용하기에 좋다. 총 6개의 객실 중 2개가 침상형 객실이다. |
샘물을 길어 써야 하는 여느 대피소와 달리 개수대 4개가 설치되어 있다. 급수시간은 오후 4시부터 오전 10시까지다. |
화장실은 객실과 멀리 떨어져 있어 자면서 불쾌한 냄새를 맡을 걱정이 없다. 더구나 수세식이다. |
대여가 되었던 모포는 관리자 3명이 매일 아침 먼지를 털고 쉽게 떨어지지 않는 머리카락과 패딩 깃털은 테이프로 일일이 떼어낸다. |
넓은 취사장 덕에 다닥다닥 붙어서 식사해아 하는 불편함을 덜 수 있다. |
<이용객 인터뷰>
-조창배 (경북 포항)
“제겐 추억이 있는 산이에요. 대피소가 생겼다 해서 다시 왔습니다.”
포항에서 이곳까지 올라온 조창배씨는 10년 전, 이곳 영주 풍기읍의 한 초등학교에서 4년간 교사생활을 했다. 거리가 가까운 만큼 이곳에서 지낼 때 소백산도 많이 올랐다. 주로 풍기에서 첫 버스를 타고 삼가동매표소에서 내린 뒤 비로봉으로 올랐다. 일 때문에 포항으로 집을 옮긴 뒤에도 그는 해당 지역 등산모임에 가입해 산에 대한 정보를 얻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산도 올랐다. 그러면서도 그는 평균 2년마다 한 번씩은 소백산을 찾아 산행을 즐겼다. 이번에는 개인적인 일로 이곳을 올랐다.
“오늘 저녁에 이곳에서 모임이 생겼는데 소백산 생각이 나서 약속보다 하루 먼저 왔어요. 대피소도 생겼다 해서 이곳에서 하룻밤 자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려고요. 대피소를 체험해 보니까 시설만큼은 아마 전국 대피소 중에서 최고인 것 같네요. 방도 뜨끈하고요. 90%는 만족합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사람이 별로 없는 주중이야 괜찮은데, 사람들이 넘치는 주말에는 화장실이 붐벼 불편하지 않을까요. 수용인원에 비해 화장실이 조금 작은 것 같네요.”
-김원섭·이승창·김기성 (경남 거제)
“저희는 같은 회사 소속이에요. 심설 산행을 위해 왔습니다.”
대피소 취재 당일 같이 묵었던 20여명 중, 유일하게 3명 이상 같이 왔던 팀이다. 회사 내 한 부서에 소속된 이들은 산이 좋아 뭉친 3인이다. 직책이 가장 높은 이승창 차장을 필두로 김기성, 김기성씨는 그동안 지리산과 설악산을 종주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그들만의 3번째 산행지로 이곳 소백산을 찾았다. 눈과 함께 산행을 즐기고 싶어서다. 희방사역에서부터 2시간여를 올라온 그들은 대피소에서 하루를 묵은 뒤 국망봉까지 갔다가 원점복귀할 계획이다.
“대피소에서 하루를 자 보니까 시설은 물론이고 직원들의 친절도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위치가 아쉬웠어요. 보통 다른 대피소는 산 중턱에 있어 한참 산행을 하고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게 돼 있는데, 여기는 그게 아니고 거의 초입에 위치하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산행코스를 짜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 같아요. 그 이유 때문에 오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산행을 위해 소백산을 오르는 사람들한테는 약간 아쉬운 부분일 수 있겠죠.”
대피소의 위치가 아쉽다는 그들은 대화가 끝난 뒤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하고 심설산행에 나설 채비를 하면서 마지막 말을 건넸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요. 겨울에는 젖은 옷을 말릴 수 있는 건조기도 있으면 좋겠어요.”
-김창식·김선희 (서울)
“남편은 산에 많이 다니는 편이에요. 저는 처음이고요.”
서울에서 내려온 김창식·김선희씨 부부는 대피소를 구경하기 위해 연화봉을 올랐다. 남편 김창식씨는 소백산을 포함해 평소 산을 자주 오르는 편이지만, 아내 김선희씨는 산행을 많이 해 보지 않았다. 남편은 그런 아내와 산행을 하기 위해 이곳 소백산 대피소를 찾았다.
“저는 주로 혼자 산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아내하고도 많이 가지 못했었죠. 언젠가 한 번은 같이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소백산 대피소가 생겼다 해서 아내를 데려온 거예요. 여기는 그리 힘들지도 않고 많이 오르지 않아도 되는 곳이니까요.”
소백산으로 오르는 여러 길 중 죽령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다른 곳보다 거리가 짧다. 대피소였던 곳이 예전 통신중계소가 있던 곳이라 이곳까지 오르는 길도 포장이 돼 있어 오르기도 훨씬 수월하다. 최근에는 눈이 많이 내려 아이젠 없이는 오르기 힘들지만 산행 경험이 없는 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저는 대피소란 곳을 처음 와 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서 그런지 시설이 깨끗하고 좋네요. 산에 둘러싸여서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좋고요. 이런 곳은 애들하고 같이 올라와도 좋을 것 같아요.”
-신규석 (대구)
“제가 리더인데요. 모임을 대표해 먼저 와 봤습니다.”
대구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등산모임의 ‘리더’인 신규석씨는 대피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른 회원들보다 먼저 이곳에 올랐다. 대피소를 먼저 체험해보고 회원들에게 경험을 말해주기 위해서다.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일을 하고 있어서, 사람이 별로 없는 주중에 와 봤어요. 와 보니까 대피소 위치가 가까워서 오르는 시간도 얼마 안 되고, 길도 쉬워 산행 초보들이 산행 감각을 잡는 데 좋은 것 같네요. 나중에 모임 중 주로 산행 경험이 얼마 없는 분들과 같이 와 보려고 해요. 한 가지 불편한 점은 객실 안 히터 때문에 너무 건조하더라고요. 아침에는 목과 코가 아플 지경이었어요.”
그는 산행은 물론이고 백패긴, 트레킹, 캠핑 등 다양한 아웃도어를 즐긴다. 산행을 떠날 때도 정상에만 오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산 근처에 자연경관이 좋은 트레킹 코스나 마땅한 야영장을 찾는다. “소백산 대피소도 그런 의미에서 좋은 대상지인 것 같아요. 눈 쌓인 산길을 걸을 수도 있고, 정상과도 얼마 멀지 않고, 야외는 아니지만 어쨌든 산에서 자는 것이니까요.”
권상진 기자 dhunhil@emount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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