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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 자료☆★★/★☆ 등산 여행☆

붉디붉은 융단 위 공룡이 나르샤.. '단풍 절정' 설악산 공룡능선을 걷다

 붉디붉은 융단 위 공룡이 나르샤.. '단풍 절정' 설악산 공룡능선을 걷다



내설악·외설악 연결하는 환상의 암릉 구간.. 길게 뻗은 웅장한 능선 한 폭의 수묵담채화


국민일보


설악산 공룡능선 연결 등산로인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향하는 구간에 위치한 세존봉이 솟아 있다. 단풍이 붉게 물든 능선 너머로 속초 시내와 동해도 어렴풋이 보인다.
설악산 공룡능선 연결 등산로인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향하는 구간에 위치한 세존봉이 솟아 있다. 단풍이 붉게 물든 능선 너머로 속초 시내와 동해도 어렴풋이 보인다.
설악산 소청봉에서 가야동계곡으로 이어지는 S자 라인 계곡의 단풍이 화려하다.
설악산 소청봉에서 가야동계곡으로 이어지는 S자 라인 계곡의 단풍이 화려하다.
신선대에서 본 공룡능선. 공룡의 등뼈같은 산줄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바위들이 전시장을 이루고 있다. 가장 높이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1275봉, 그 오른쪽 천화대 능선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가 범봉이다. 멀리 울산바위도 보인다.
신선대에서 본 공룡능선. 공룡의 등뼈같은 산줄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바위들이 전시장을 이루고 있다. 가장 높이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1275봉, 그 오른쪽 천화대 능선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가 범봉이다. 멀리 울산바위도 보인다.

“하늘과 땅 사이를 채운 것이 모두 산이다. 고니가 나는 듯하고 칼이 서 있는 듯하고 연꽃이 핀 듯한 것은 모두가 봉우리요….”

정약용의 친척인 조선후기 문신 해좌 정범조(1723∼1801)가 ‘설악산 유람기’에서 설악산(1708m)을 묘사한 글이다. 그는 1782년(정조 2년) 가을 양양군수로 부임을 받아 길을 가다가 북쪽으로 보이는 우뚝 서 있는 장대한 설악산의 위용을 보고 이듬해 가까운 벗들과 6일간 설악산을 둘러본 뒤 기행문을 남겼다.

일찍이 선조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명산 중의 명산, 그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공룡능선을 오르기 위해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부터 서두른다. 설악동 소공원을 출발해 비선대를 거쳐 마등령에 올라 본격적으로 공룡능선을 넘은 뒤 무너미고개에서 천불동계곡으로 방향을 잡아 소공원으로 되돌아오는 약 20㎞되는 만만찮은 코스다.

공룡능선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대표적 능선으로 생긴 모습이 마치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엄하게 보인다 해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설악 중 진(眞)설악으로,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무색할 정도로 암벽미가 뛰어나다.

새벽 3시 설악산탐방안내소 앞은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비선대로 향하는 3㎞의 길에는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산객들이 길게 줄을 이었다. 이 구간은 산책로 수준의 평탄한 길로 1시간이면 족하다.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오르는 길은 3.5㎞로 초반부터 곧추서 있다. 처음 1.5㎞ 구간은 고도를 약 650m를 높여야 하는 된비알의 연속이다. 한 발 올릴 때마다 가파른 돌계단은 눈높이로 바짝 다가와 조금만 더 앞으로 고개를 숙이면 부딪칠 것 같다. 험준한 돌길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은 비 오듯 흐른다. 잠시 숨을 돌리며 뒤돌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둠 속에 반짝이며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헤드랜턴 불빛은 또 다른 풍경이다. 1시간30여분 치고 오르자 유순한 길이 잠시 나타난다. 하지만 다시 오르막. 공룡은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세존봉을 지나자 여명이 밝아오면서 어둠 속에 침잠했던 설악산 능선들은 희미하게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그린다. 짙은 구름이 드리우는 바람에 일출다운 일출과 암봉을 휘감은 운해를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붉은 빛에 물든 단풍과 바위의 장쾌한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

비선대를 출발한 지 3시간쯤 지나자 설악산에서 보기 힘든 평평한 고원이 나타난다. 말 등 같다는 마등령 삼거리로 공룡능선 시작점이다. 멀리 공룡능선을 엿본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송곳니 같은 날카로운 암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공룡능선 최고봉인 1275봉이다. 그 주변으로 험준한 봉우리들이 경쟁하듯 솟구쳐 난공불락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공룡능선 산행은 이들 봉우리 사이를 걷는 것이다. 그 뒤로는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에서 화채봉으로 이어진 산등성이와 그 너머 푸른 속초 앞바다가 거침없이 펼쳐진다.

이제부터는 중간에 식수도 없고 탈출로도 없어 모든 것을 참고 약 5㎞ 거리를 가야 한다. 4시간30분∼5시간 동안 5개의 큰 봉우리를 지나야 한다. 등산로는 대부분 바위의 오른쪽으로 나 있다. 왼쪽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한 절벽이다. 하늘의 구름이 걷혀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지만 바람은 태풍 못지않게 몰아쳐 몸이 날려갈 정도다. 땀으로 젖었던 몸이 이내 오한을 느낀다.

설악산은 가을볕을 받아 전반적으로 다홍치마로 갈아입고 있지만 공룡능선의 단풍은 이미 절정을 넘어서고 있다. 아름다운 자태로 연신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 만산홍엽은 황홀과 격동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단풍 속에서 마음마저 붉게 물든다.

기괴한 암봉들이 삐죽삐죽 치솟은 공룡능선을 걷는 길은 마치 구름 위를 노니는 듯한 선경이다. 수려한 자태를 뽐내며 석림(石林)을 이룬 신비의 봉우리마다 서린 기운은 맑고 깨끗하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은 화석처럼 굳어 설화를 꽃피울 날을 기다린다. 크고 작은 기암괴석들은 서책을 쌓아놓은 듯, 시루떡을 켜켜이 올려놓은 듯 만상의 형체를 보인다.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는 오색물감을 풀어놓은 듯 단풍이 화려하다.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밧줄을 타고 쇠기둥과 철 계단을 오르는가 하면 때로는 공룡 등뼈를 더듬는 듯 네발로 엉금엉금 바위틈을 기어서 올라가야 한다. 병목 구간에서는 기다리는 줄이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공룡능선의 마지막 봉우리 신선대에 올라서면 내설악·외설악의 장쾌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뒤돌아보니 공룡능선의 등줄기를 이루는 마등령, 나한봉, 1275봉은 물론 천화대의 범봉이 늘어서고 멀리 울산바위도 시선에 담긴다. 서북능선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대청, 중청, 소청 아래로 용아장성이 줄을 서고 귀때기청봉과 안산까지 장쾌한 설악의 고봉들이 늘어선다.

신선대를 지나면 공룡이 능선을 다 탔다며 산객을 등에서 내려준다. 무너미고개에서 왼쪽 천불동계곡으로 내려선다. 계곡 양쪽의 기암절벽도 단풍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다.

비선대까지는 약 5㎞로 3시간가량 병풍처럼 솟은 기암괴석의 비호를 받으며 걸어간다. 이어 소공원까지 40여분. 15시간의 대장정을 끝내니 설악산의 절경이 가슴에 박혀 있다.

속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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