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면 된대요"… 편법 조장하는 주택법 시행규칙 [단독]
#마흔 넘어 결혼한 40대 직장인 A씨는 결혼 전 아내가 가입한 인천의 한 지역주택조합아파트로 속을 끓이고 있다. 업무대행사가 세운 바지조합장의 횡포로 마음을 끓이다 혼인신고 후엔 A씨가 기존 보유한 단독주택(연면적 85㎡ 초과) 때문에 아내가 아예 조합원 자격을 잃게 된 것.
천신만고 끝에 체결한 조합원 입주권 매도계약도 무용지물이 됐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문의한 결과 현행 주택법 시행규칙 상 A씨가 결혼 전부터 보유한 단독주택을 팔아야만 아내의 조합원 자격이 유지되고 그제야 매도가 가능하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조합 정관에 따라 A씨가 기한 내 주택을 못 팔면 아내는 그간 납부한 분양대금에서 사업비 수천만원을 떼여야 한다.
구제 방안을 문의하던 A씨는 이혼하면 아내의 조합원 자격에 문제가 없다는 담당 공무원의 설명에 경악했다. A씨는 "주택청약 기회를 높이거나 주택 관련 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혼인신고를 미루거나 안 하는 부부들이 있다는 얘기를 신문기사로만 봤지 법과 행정규칙이 비정상을 부추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지역주택조합의 복잡한 자격요건 때문에 혼인, 상속 등에 의한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지역별로 담당공무원들조차 관련 규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불완전판매로 가입할 때는 물론, 가입 후에도 가입자격과 그에 따른 기회비용에 대해 제대로 듣지 못한 조합원들만 피멍이 들고 있다.
노량진 본동의 한 지역주택조합 부지/사진제공=머니투데이 사진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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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택조합은 무주택서민이 저렴하게 내 집 마련을 하도록 주민들이 조합을 결성해 토지를 확보, 개발하는 사업으로 무주택 혹은 연면적 85㎡이하 주택을 1채 보유한 세대주만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업무대행사가 바지조합장을 앉혀 막대한 사업비를 탈취하거나, 조합이 확보해야 할 땅에 차명으로 '알박기'를 하는 등 폐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최대 5년간 1순위 청약자격이 제한되는 등 사업지연 시 조합원들의 기회비용도 상당하다. 특히 사업 지연으로 그 사이 혼인, 상속 등 변수가 발생하기 쉬운데 조합원 자격요건이 엄격하다 보니 수년간 마음고생만 하고 자격 상실로 원금을 날리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현행 '주택법 시행규칙' 제8조(조합원의 자격확인 등) 2항에 따르면, 상속·유증 또는 주택소유자와의 혼인으로 주택을 취득했을 때는 사업 주체로부터 부적격자로 통보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 해당 주택을 처분해야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사업 기간 중 갑자기 부모로부터 주택을 상속받거나 혼인을 했는데 배우자가 연면적 85㎡이상의 주택(단독주택 포함)이 있다면 부적격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 내 그 주택을 팔아야 하는 것. 문제는 단독주택처럼 거래가 쉽지 않은 주택은 팔고 싶어도 3개월 내 팔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상속세 납부기한이 상속개시일로부터 6개월 이내인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구제기간이 짧다. 특히 조합원이 아닌 조합원 배우자가 결혼때문에 기존 보유하던 주택을 팔아야 하는 것은 과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혼인신고와 출산을 미룬 채 사실혼 관계만 유지하거나, 심지어 위장이혼까지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A씨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결혼 직후 문의했을 땐 담당 공무원이 부부 중 한쪽이 입주권과 단독주택 중 하나를 매도하면 된다고 설명했는데 새로 담당한 공무원은 조합원 입주권은 자격 상실로 매도가 불가능하니, 기존 보유하던 단독주택을 팔아야 한다고 했다"며 "공무원조차 헷갈리는 제도라면 일반인이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란 것이냐"고 한숨 쉬었다.
이에 대해 김진아 한빛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혼인신고 전 조합원 입주권을 팔아야 하는데 지역주택조합은 원활한 매도가 쉽지 않고 이를 모르는 조합원도 많다"며 "혼인신고를 안 하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들에게 유리해 제도가 편법을 조장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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