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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 자료☆★★/★☆ 등산 상식☆

그저 산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

 그저 산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




[익스트림마운틴]설악산 경원대 리지



월간마운틴 | 유학재 편집위원






경원대 리지 6피치. 성난 맹수의 이빨처럼 솟은 바위가 클라이머를 유혹한다. 사진=강성구 기자
한국산악회 70주년 기념 등반을 한다고 4월에 떠나 한 달 만에 등반을 못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근 한 달을 집에서 근신하며 산에 오르지 못했다.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집으로 돌아와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불안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던 차에 문제의 원인을 알았다. 한 친구가 '혹시 지진 경험을 하고 몸에 무슨 변화가 없는지'를 물으면서였다.

자기 지인이 그 난리통에서 겨우 빠져나와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한다. 그렇다, 나도 네팔에서의 지진이 문제였다. 지진의 발생으로 우리 원정대는 베이스에 들어간지 하루 만에 목표로 했던 등반을 포기를 하고 짐을 다시 꾸려 돌아서야 했다. 나를 믿고 따라온 후배들에게 아무것도 못하고 다시 내려가자는 것에 미안함이 아직 남아있다. 그리고 돌아온 후 한 달이 지나 그 트라우마가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아 취재 산행을 떠나기로 했다.


개척자와의 만남, 그리고 향한 설악산

여름의 리지 산행으로는 단언컨데 설악산만큼 뛰어난 곳이 없다. 울창한 나무와 그 사이 불뚝불뚝 솟아 오른 기암 절벽으로 어느 산보다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그래서 일단 설악산으로 장소를 정했지만 구체적으로 코스를 잡지 않다가 종로5가 곱창 골목에서 설악산에 여러 개의 리지를 개척한 김기섭 후배를 만났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아직도 산악정신은 살아있는 것 같아 기뻤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경원대산악부와 함께 96년에 개척한 경원대리지를 가기로 정했다. 루트를 정했으니 이제 떠나는 날을 잡아야 했다. 헌데 네팔에서는 지진이 등반을 못하게 하더니 이번에 한국에서 ‘메르스’라는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산에 가는데 지장을 주고 있다.


요즘 메르스라는 전염성 바이러스가 나의 일상의 변화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같이 가자고 한 친구는 딸이 갑자기 전날 밤부터 고열로 고생하고 있어 같이 갈 수 없다고 한다. 혹 메르스의 영향이면 자기도 감염 의심이 되기에 우리까지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멀리만 있던 메르스가 우리 곁에도 가까워진 것이다.


새벽 일찍 출발을 위해 설악산에 가서 자기로 했다. 날씨가 안 좋다는 예보가 있어 걱정이 되지만 일단 들이대보자 내려간다.


흐린 날씨로 아침공기가 차다. 서울의 더운 날씨로 준비한 야영장비는 침낭커버와 울 라이너가 전부였는데, 새벽 추위에 자다 깨다하며 6시에 일어나 알파미와 설렁탕 액기스에 된장 우거지국을 섞어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이 새벽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간다고, 신흥사 땅을 밟고 지나가는 것에 입장료 14,000원(4명분)을 강탈(?) 당하는 느낌은 나뿐만 아닐 것이다.

날씨가 더울거라 예상했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에 제발 우리가 등반하는 내내 참아 달라고 하늘에 쳐다보며 빌어본다. 문득 ‘하늘에 소원을 뭘 또 빌어 본 것이 있나’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는 ‘산에서 사고 없이 살아 돌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한 소원이 제일 많았던 같다. 그리고 ‘내 동료들이 저 세상으로 가거나 그 문턱에 있을 때’가 두번째인 것 같다. 하늘에 대고 너무 많이 요구한 것 같아 이번에 들어줄지가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또 한번쯤은 생각하며 비룡교를 지나간다.

계속 흐린 날씨로 인해 추워서 옷을 고쳐 입는다. 신흥사에서 중간의 매점들을 다 철거했다. 간혹 대피소 기능도 했고 뜨거운 여름 시원한 막걸리 한잔으로 목도 축이고 겨울이면 토왕성 폭포를 하기 위한 거점이 되기도 한 곳은 빈터만 남아 있다. 한편으로 자연에 돌아온 것 같아 좋아 보이지만 오늘 같이 한 여름에도 으시시 추운 날이면 매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단 말인가. 시작을 하면 끝이 있다. 하지만 그 끝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일들을 처음부터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원대 리지 초입을 향한다. 비룡폭포로 이어지는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는 일행. 사진=강성구 기자




















비룡폭포 밑에 잦은 낙석으로 우회등산로를 만들며 오래 전에 있던 것처럼 출렁다리가 다시 생겼다. 그때는 가는 와이어 4줄이 전부였고, 심장이 약한 사람은 무서워서 못가던 그런 출렁다리가 있었다. 지금의 다리는 엄청 튼튼하게 세워 놓았다. 출렁다리를 중간 쯤 가다가 네팔의 지진이 생각난다. 이 출렁다리가 꼭 베이스에서 땅이 흔들렸던 그 느낌과 같았다. 현기증이 일어나며 중심을 살짝 놓쳤다. 처음 지진 났을 때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게 지진인지 아닌지 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눈사태의 소리를 듣고 후폭풍이 날아오며 텐트가 부서졌다. 그 후 여진이 났을 때 그 공포가 몰려왔다. 지진의 느낌을 알고 나니 걱정이 더 생긴 것이다. 그런데 설악의 다리에서 그때 일어난 지진과 흡사한 경험을 하니 현기증과 더불어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같이 올라가는 일행에게 지진 일어나는 느낌이 이 다리에서 흔들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알려주고 경험해 보라고 하면서 지나간다.

우리 일행이 다리 위로 올라오며 움직일 때마다 중심을 잡고 가는 것에 더욱 몸은 거부를 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안개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새벽이라 아무도 없다. 경원대리지는 토왕골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 리지이다. 하지만 등반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마 초급의 난이도와 불편한 들머리 때문에 토왕골의 리지 코스 중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이쪽의 리지를 제대로 한 것이 없어 이곳 리지를 올 여름 가기 전 중점적으로 해봐야겠다. 흐린 날씨가 산행을 하기에는 정말 좋다는 생각에 출렁다리를 지나며 느꼈던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가 다른 생각에 금세 잊혀진다.

경원대 리지, 김기섭씨 주축으로 1996년 만들어져

경원대 리지의 초입. 누군가 파란색 락카를 이용해 낙서를 했다. 개척 당시에는 케른을 쌓아 초입을 표시했다고 한다. 사진=강성구 기자


비룡폭포 위에서 10분 정도 오르다 좌측 리지 입구에 누군가가 ‘경원’이란 글씨와 함께 화살표를 바위에 크게 써 놓았다. 이정도 크기가 아니어도 입구를 표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터인데 하며 나는 투덜댄다. 우리의 등산 문화는 좀 더 성숙해야 한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 가장 좋다, 가장 먼저 이용하는 사람이 우선이 아니라 자연이 우선인 것을 알고 행해야 한다.

앞장 서서 가다보니 첫 피치인줄 모르고 올랐다. 마지막 구간은 로프 없이 오르다 추락을 하면 위험했다.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밑에서 안전벨트 착용하라고 하고 나도 안전벨트를 착용하려니 내 짐 일부가 이충원 선배 짐 속에 있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차린다. 로프를 꺼내 볼트에 고정시키고 후등자들을 올린다.

유학재 편집위원이 3피치를 오르며 루트파인딩을 하고 있다. 사진=강성구 기자


경원대 리지는 96년 경원대 산악부에서 후배 김기섭이가 주축에 되어 만들어진 곳이다. 그는 이외에도 많은 리지를 그 시기에 개척했다. 예전의 기억 중에 인상적인 것이 하나 있다. 그는 시인이었다. 지금도 시를 쓴다. 그때도 당당히 자기의 장기는 시를 쓰며 산을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없어진 장수대의 동부산장의 페치카에서 장작을 때며 술잔이 돌고 서로 장기를 발표한적이 있다. 대부분 노래로 자기의 장기를 표현하지만 그는 시를 한편 읊겠다고 했다. 뜨거운 장작불에 화력을 더하고, 마신 소주에 붉어진 얼굴로 일어나 시를 읊었다. 추운 겨울에 우리가 설악에 왔으니 진교준의 <설악산 얘기>란 시를 읊겠다고.

나는 산이 좋더라

파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하는

나는 산이 좋더라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하략)

이 시는 무지 길다. 우리 일행은 술잔을 돌려야 하는데, 이제나 저제나 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음부터는 아주 짧은 시로 해'라고 부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진교준이란 분을 검색해 보니 2003년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으로 나온다. 그전까지 우이동 6번 버스를 운전했다고 한다. 우리가 산을 가면 그분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갔을 수 있다. 나도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이동에 살았으니 아마 버스 이용은 산에 다니면서 내가 제일 많이 했을 것이다. 어릴 적 아무것도 모르고 산에 다닌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최대 난이도 5.9, 1봉과 2봉 티롤리안브리지 가능해

2피치를 오르고 있는 한국산악회 배영숙 회원. 사진=강성구 기자



















등반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여러 개의 크랙으로 루트를 제대로 찾아가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할 때 마다 간간히 볼트가 보인다. 하지만 루트 전체로 볼 때 볼트를 설치한 위치가 의미가 없는 곳이 많다. 최고 난이도 5.9 정도의 경원대 리지는 자신의 확보장비를 이용한 등반이 더욱 좋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일행은 나와 같이 리지 경험을 많이 한 터라 별다르게 문제가 없다. 우리는 올라가며 '흐린 날씨로 덥지가 않아 너무 좋다'고 하면서 비는 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날씨는 더욱 나빠지고 온도까지 내려가 보온 의류를 챙겨 입어야 했다. 등반 중에 간간이 나오는 수직 크랙은 쉽다는 생각을 버리게 했다. 초보자에게는 갑자기 나타나는 수직 크랙에 재미를 더할 것이다.
5피치를 등반하는 이충원씨, 그 뒤로 토왕골의 녹음이 펼쳐진다. 사진=강성구 기자



















4피치를 지나서부터 가스가 자욱한 위치까지 올랐다. 간간히 이슬이 내린다. 조금씩 비가 올까봐 걱정이 생긴다. 사실 등반을 하면서 피치 종료 지점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편리대로 등반을 하고 종료한다. 그러다보니 가장 많이 쓰이는 장비가 120cm 슬링이다. 적당한 암각에 설치를 하고 피치 종료를 한다. 여분의 캠 세트는 안전을 더하는데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이리저리 내 감각에 맞는 코스를 택해 오르다 보니 어느덧 안개 속에 우리 일행의 몸들이 숨어 버렸다. 점점 날씨가 나빠지고 있다. 더 가야 할지 내려가야 할지 고민 중에도 안개비는 자욱하게 내린다.



















하강을 안 해도 되는 곳인데 쌍볼트가 박혀있다. 그 용도가 의심쩍어 이리지리 살펴보니 티롤리안 브리지용 볼트인 것이다. 이제 안개비에서 본격적으로 비로 변해 내리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배낭에서 가져온 개념도를 꺼내 보았다. 7피치까지 올라왔다. 그 뒤로는 등반 그레이드도 떨어지고 다시 이쪽으로 하강하는 모양새다. 위쪽을 오르는 이유 중에 하나가 맑은 날 토왕골의 경치를 구경하는 것인데, 잔뜩 흐린 날씨와 내리기 시작하는 비로 등반을 포기한다.
7피치를 오르고 있는 한국산악회 이충원씨. 경원대리지는 다양한 크랙과 암각으로 확보물 설치가 용이하다. 사진=강성구 기자




















하강을 시작하면서 비는 소나기로 바뀌고 있다. 허공다리골이란 계곡으로 내려가는 협곡이라 소낙비에 계곡물이 불어날까 걱정이 된다. 물 먹은 로프를 하강기가 훑고 지나갈 때마다 연거푸 물을 나의 바지에 쏟아낸다. 마치 너무 많이 먹은 술에 속병이 생겨 헛구역질 끝에 입속에서 소화되지 않은 그 무엇이 나오는 것처럼.

계곡이 험하고 낙석의 위험이 여기 저기 도사리고 있다. 또 비로 인해 바위에 붙어 있던 이끼들이 살아나 미끄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우리가 만족할 만큼 등반을 하고 내려가니 모두들 즐거워한다. 가뭄에 단비가 내려서 좋고, 등반을 적당해 해서 좋고, 덥지가 않아서 좋고, 오래 만에 같이 등반을 해서 좋았다. 경원대 리지가 좋다는 표현, 아니 우리가 하는 산행에서 달리 더 무슨 표현이 필요한가? 그저 산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


경원대 리지 등반정보

한국산악회 배영숙 회원이 1봉(6피치)을 하강하고 있다. 하강 길이는 약 10미터. 사진=강성구 기자
설악산 토왕성 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11피치의 암릉길이다. 거친 바위의 질감과 고도감, 외설악의 멋진 경관까지 3박자를 두루 갖췄다.

1996년 경원대학교 산악부가 개척했으며, 최대 난이도는 5.9 수준이다. 1~6피치는 1봉, 7피치 2봉, 8~9피치 3봉, 10~11피치 4봉으로 구성됐다. 1봉과 2봉 사이는 티롤리안브리지 구간이 있어 짜릿한 고도감을 맛볼 수 있다.


들머리는 비룡폭포를 넘어 토왕성폭포 방향으로 20분쯤 오른 뒤 이어진다. 초입에는 파란색 락카로 ‘경원’이라는 글자와 화살표 2개가 새겨져 있다. 개척 당시에는 케른으로 초입을 표시했다고 한다. 탈출은 6~7피치, 9피치에서 가능하며, 등반종료 후에도 9피치 지점으로 하강 후 허공다리골로 하산한다. 60미터 하강을 1차례 이상해야 하므로 로프는 2동 이상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주변에 잡목으로 인해 로프 회수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할 것. 기존의 확보물은 녹이 슬어 위험한 곳이 종종 있다. 다양한 암각과 크랙이 있기에 캠과 슬링을 이용해 확보하는 방법이 더 안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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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재 편집위원 / emountain@emount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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