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마운틴]설악산 경원대 리지
월간마운틴 유학재 편집위원
경원대 리지 6피치. 성난 맹수의 이빨처럼 솟은 바위가 클라이머를 유혹한다. 사진=강성구 기자 |
자기 지인이 그 난리통에서 겨우 빠져나와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한다. 그렇다, 나도 네팔에서의 지진이 문제였다. 지진의 발생으로 우리 원정대는 베이스에 들어간지 하루 만에 목표로 했던 등반을 포기를 하고 짐을 다시 꾸려 돌아서야 했다. 나를 믿고 따라온 후배들에게 아무것도 못하고 다시 내려가자는 것에 미안함이 아직 남아있다. 그리고 돌아온 후 한 달이 지나 그 트라우마가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아 취재 산행을 떠나기로 했다.
개척자와의 만남, 그리고 향한 설악산
여름의 리지 산행으로는 단언컨데 설악산만큼 뛰어난 곳이 없다. 울창한 나무와 그 사이 불뚝불뚝 솟아 오른 기암 절벽으로 어느 산보다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그래서 일단 설악산으로 장소를 정했지만 구체적으로 코스를 잡지 않다가 종로5가 곱창 골목에서 설악산에 여러 개의 리지를 개척한 김기섭 후배를 만났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아직도 산악정신은 살아있는 것 같아 기뻤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경원대산악부와 함께 96년에 개척한 경원대리지를 가기로 정했다. 루트를 정했으니 이제 떠나는 날을 잡아야 했다. 헌데 네팔에서는 지진이 등반을 못하게 하더니 이번에 한국에서 ‘메르스’라는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산에 가는데 지장을 주고 있다.
요즘 메르스라는 전염성 바이러스가 나의 일상의 변화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같이 가자고 한 친구는 딸이 갑자기 전날 밤부터 고열로 고생하고 있어 같이 갈 수 없다고 한다. 혹 메르스의 영향이면 자기도 감염 의심이 되기에 우리까지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멀리만 있던 메르스가 우리 곁에도 가까워진 것이다.
새벽 일찍 출발을 위해 설악산에 가서 자기로 했다. 날씨가 안 좋다는 예보가 있어 걱정이 되지만 일단 들이대보자 내려간다.
흐린 날씨로 아침공기가 차다. 서울의 더운 날씨로 준비한 야영장비는 침낭커버와 울 라이너가 전부였는데, 새벽 추위에 자다 깨다하며 6시에 일어나 알파미와 설렁탕 액기스에 된장 우거지국을 섞어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이 새벽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간다고, 신흥사 땅을 밟고 지나가는 것에 입장료 14,000원(4명분)을 강탈(?) 당하는 느낌은 나뿐만 아닐 것이다.
계속 흐린 날씨로 인해 추워서 옷을 고쳐 입는다. 신흥사에서 중간의 매점들을 다 철거했다. 간혹 대피소 기능도 했고 뜨거운 여름 시원한 막걸리 한잔으로 목도 축이고 겨울이면 토왕성 폭포를 하기 위한 거점이 되기도 한 곳은 빈터만 남아 있다. 한편으로 자연에 돌아온 것 같아 좋아 보이지만 오늘 같이 한 여름에도 으시시 추운 날이면 매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단 말인가. 시작을 하면 끝이 있다. 하지만 그 끝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일들을 처음부터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원대 리지 초입을 향한다. 비룡폭포로 이어지는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는 일행. 사진=강성구 기자 |
경원대 리지, 김기섭씨 주축으로 1996년 만들어져
경원대 리지의 초입. 누군가 파란색 락카를 이용해 낙서를 했다. 개척 당시에는 케른을 쌓아 초입을 표시했다고 한다. 사진=강성구 기자 |
앞장 서서 가다보니 첫 피치인줄 모르고 올랐다. 마지막 구간은 로프 없이 오르다 추락을 하면 위험했다.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밑에서 안전벨트 착용하라고 하고 나도 안전벨트를 착용하려니 내 짐 일부가 이충원 선배 짐 속에 있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차린다. 로프를 꺼내 볼트에 고정시키고 후등자들을 올린다.
유학재 편집위원이 3피치를 오르며 루트파인딩을 하고 있다. 사진=강성구 기자 |
지금은 없어진 장수대의 동부산장의 페치카에서 장작을 때며 술잔이 돌고 서로 장기를 발표한적이 있다. 대부분 노래로 자기의 장기를 표현하지만 그는 시를 한편 읊겠다고 했다. 뜨거운 장작불에 화력을 더하고, 마신 소주에 붉어진 얼굴로 일어나 시를 읊었다. 추운 겨울에 우리가 설악에 왔으니 진교준의 <설악산 얘기>란 시를 읊겠다고.
나는 산이 좋더라
파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하는
나는 산이 좋더라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하략)
이 시는 무지 길다. 우리 일행은 술잔을 돌려야 하는데, 이제나 저제나 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음부터는 아주 짧은 시로 해'라고 부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진교준이란 분을 검색해 보니 2003년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으로 나온다. 그전까지 우이동 6번 버스를 운전했다고 한다. 우리가 산을 가면 그분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갔을 수 있다. 나도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이동에 살았으니 아마 버스 이용은 산에 다니면서 내가 제일 많이 했을 것이다. 어릴 적 아무것도 모르고 산에 다닌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최대 난이도 5.9, 1봉과 2봉 티롤리안브리지 가능해
2피치를 오르고 있는 한국산악회 배영숙 회원. 사진=강성구 기자 |
5피치를 등반하는 이충원씨, 그 뒤로 토왕골의 녹음이 펼쳐진다. 사진=강성구 기자 |
7피치를 오르고 있는 한국산악회 이충원씨. 경원대리지는 다양한 크랙과 암각으로 확보물 설치가 용이하다. 사진=강성구 기자 |
계곡이 험하고 낙석의 위험이 여기 저기 도사리고 있다. 또 비로 인해 바위에 붙어 있던 이끼들이 살아나 미끄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우리가 만족할 만큼 등반을 하고 내려가니 모두들 즐거워한다. 가뭄에 단비가 내려서 좋고, 등반을 적당해 해서 좋고, 덥지가 않아서 좋고, 오래 만에 같이 등반을 해서 좋았다. 경원대 리지가 좋다는 표현, 아니 우리가 하는 산행에서 달리 더 무슨 표현이 필요한가? 그저 산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
경원대 리지 등반정보
한국산악회 배영숙 회원이 1봉(6피치)을 하강하고 있다. 하강 길이는 약 10미터. 사진=강성구 기자 |
1996년 경원대학교 산악부가 개척했으며, 최대 난이도는 5.9 수준이다. 1~6피치는 1봉, 7피치 2봉, 8~9피치 3봉, 10~11피치 4봉으로 구성됐다. 1봉과 2봉 사이는 티롤리안브리지 구간이 있어 짜릿한 고도감을 맛볼 수 있다.
들머리는 비룡폭포를 넘어 토왕성폭포 방향으로 20분쯤 오른 뒤 이어진다. 초입에는 파란색 락카로 ‘경원’이라는 글자와 화살표 2개가 새겨져 있다. 개척 당시에는 케른으로 초입을 표시했다고 한다. 탈출은 6~7피치, 9피치에서 가능하며, 등반종료 후에도 9피치 지점으로 하강 후 허공다리골로 하산한다. 60미터 하강을 1차례 이상해야 하므로 로프는 2동 이상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주변에 잡목으로 인해 로프 회수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할 것. 기존의 확보물은 녹이 슬어 위험한 곳이 종종 있다. 다양한 암각과 크랙이 있기에 캠과 슬링을 이용해 확보하는 방법이 더 안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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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재 편집위원 / emountain@emount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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