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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면 뭐해, 해지 악당인데!” 통신사 괴상한 약정



 

회사원 김모(28)씨는 최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강남구 서초2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사용하던 기가 인터넷(최대 속도 1Gbps) 서비스를 이사 갈 집으로 옮기려 하자 설치가 불가능한 지역이라 사용이 어려우니 해지하거나 속도가 느린 일반 인터넷을 이용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아쉬운 마음에 해지를 요구했더니 “약정 계약을 했기 때문에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업체 사정 때문에 서비스 계약을 해지하는 것인데도 위약금이 10만원 넘게 나왔다.

이처럼 불공정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 통신사 약관에 소비자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새 서비스가 등장해 약관 조항이 바뀌거나 예외로 명시되는 경우, 내용이 추가되는 경우가 특히 문제다. 업체가 소비자의 동의를 구할 필요 없이 15일 전에 고지하기만 하면 효력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가입과 해지 등 중요한 내용임에도 소비자는 정해진 약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김씨도 “기존 초고속인터넷(100Mbps)보다 10배 빠른 기가 인터넷 서비스가 나왔다고 해서 문의한 뒤 새 서비스로 바꿔 사용해 왔고, 별다른 고지를 받지도 못했다”며 “소비자는 쓰고 싶어도 업체에서 서비스를 할 수 없어 못 쓰는 상황인데 위약금을 물리는 건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본보가 5일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의 인터넷 서비스 이용약관을 확인한 결과 3사 모두 이런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일반 인터넷 서비스는 사용기간 약정돼 있어도 고객이 이전을 원하는 지역에서 서비스가 불가능한 경우, 고객이 사망하거나 군에 입대한 경우, 이전 설치 및 고장 처리가 5일 넘게 지연된 경우 등에는 할인 반환금(다년 계약에 의해 할인된 금액)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기가 인터넷에만 예외 조항이 있다. 서비스 불가능 지역이거나 이전 처리 및 고장 처리가 늦어진 경우 모두 소비자가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약관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점도 소비자를 ‘약자’로 만든다. 각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해 하반기 출시된 기가 인터넷 서비스가 ‘기존 인터넷보다 10배 빠르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상품 소개 페이지에서 해지 관련 내용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같은 일을 겪은 한모(37·여)씨는 “설치 당시 그런 내용을 들은 바 없다고 서비스센터에 항의해도 약관에 나와 있다며 모든 잘못을 소비자에게 돌린다”며 “정작 중요한 내용은 설명해주지 않고 판매에 열을 올리던 회사들이 이제와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은 어이없다”고 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정부의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약관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사업자 입장에선 초기 단계에 전 지역을 아우를 수 없기 때문에 사업 확산 전까지는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녹색소비자연대 그린ICT위원회 이주홍 사무처장은 “소비자의 권리에 제약을 줄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약관심사위원회 등을 설치해 심사받게 하고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약관을 알리도록 법체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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