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냈는데 건물만 내 집…은평 한옥마을 뿔났다
8년 전 산 토지 소유권 이전 안 돼
은평뉴타운사업 급하게 진행한 탓
주민들 “대출·매매 막혀 큰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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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공사로부터 토지 소유권을 이전받지 못하고 있는 은평 한옥마을의 모습. [중앙포토] |
집 지을 택지를 분양받아 잔금까지 치렀는데 수년째 땅 소유권을 넘겨받지 못하고 있다. 취득세를 냈고 매년 토지 재산세를 내는데도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서울시가 2008년 ‘한옥 선언’을 발표하며 한옥 보급을 확대하겠다고 조성한 서울 은평뉴타운 내 은평한옥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 마을에서 한옥을 짓고 사는 주민 이모(56)씨는 “한옥 짓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은행에 가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 해도 한옥마을 내 모든 필지가 미등기 상태라 거절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로부터 은평 한옥마을 내 택지를 분양받은 것은 2013년 10월이다. SH공사가 분양받은 사람들에게 5개월 안에 잔금까지 치르게 해 2014년 초에 잔금도 다 치렀다. 이 씨가 한옥을 짓고 산 지 4년째다. 하지만 현재 건축물 등기만 이뤄졌을 뿐 토지는 미등기 상태다. 토지 소유권을 넘겨받지 못해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땅 주인이 여전히 SH공사다.
이 씨뿐 아니라 은평뉴타운 3지구 내 한옥과 양옥을 포함한 단독주택 256필지 소유주가 모두 같은 처지다. 용지 분양한 지 8년째이지만 SH공사로부터 땅 소유권을 넘겨받지 못하고 있다. 땅 거래를 하려 해도 개인 간 거래가 불가능하다. 서류상 땅 주인이 SH공사이다 보니 매도자와 매수자가 SH공사 담당자를 찾아가 토지 분양권 명의를 넘겨주는 식으로 거래해야 한다.
이 씨는 “SH공사에 가서 등기 정리를 해 달라고 수년째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그대로다. 사기 분양 당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행정관청은 서로 남 탓만 하고 있다. SH공사 관계자는 “당시 은평뉴타운 사업이 너무 급하게 추진되어 등기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분양부터 하는 등 뒤죽박죽 엉켰다”고 말했다.
2004년 사업을 시작한 은평뉴타운은 당시 유례없는 속도전을 펼쳤다. 총 349만 2556㎡의 면적에 1만7464가구를 위한 아파트와 주택을 짓는 프로젝트였다. 총 3개 지구로 나눠 추진했다. 1지구의 경우 2005년 착공해 2008년 완공하는 등 2010년께 3지구까지 공사를 마쳤다. 하지만 택지공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자체인 은평구청이 준공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지난해 말에서야 3지구까지 가까스로 준공승인이 났다. SH공사가 땅 등기만 정리해 나눠주면 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SH공사가 뉴타운 사업을 위해 수용했던 땅의 등기 일부가 말소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SH공사가 소유권을 갖고 있지 않은 땅을 일반 분양한 꼴이다.
SH공사 관계자는 “주민등록을 만들기 이전의 등기가 있어 사람을 찾을 수 없는데도 해당 지자체 등기소에서 사람을 찾으라고 요구하는 등 등기 정리에 어려움이 많다”며 “사업 시작했을 때부터 시간이 많이 흘러 담당자도 다 교체돼 일이 더 꼬였다”고 말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 몫이다. 단독주택 용지를 분양받은 주민들은 서류상 땅이 없어서 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SH공사가 지급 보증을 선 특정 은행지점에서만 개인 신용대출을 받아 공사비 등을 대고 있다.
은평 한옥마을의 주민 나모(45)씨는 “사업 자금이 필요해 대출을 받으려 해도 대출이 꽉 막혔다”며 “등기이전이 되어 주택담보대출을 받더라도 분양 당시와 달리 고금리로 받아야 하는데 이 손해는 누가 보상해주나”고 답답해했다.
주민들은 “집을 팔고 싶어도 토지 등기가 이뤄지지 않아 거래가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이 마을에 한옥이 지어지기 시작한 2015년 이후 한옥마을에서 실거래 신고가 하나도 없다. 거래가 없다보니 시세가 형성돼 있지 않다. 올해 공시가격이 주택 크기 등에 따라 6억~8억원 선이다. 정부가 밝힌 단독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 53%를 감안하면 시가는 10억~20억원 정도인 셈이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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