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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 탈세 악용되는 ‘꼬마빌딩’

부유층 탈세 악용되는 ‘꼬마빌딩’


‘거액 꼼수 상속-증여’ 사례 늘어

동아일보

서울에 거주하는 A 씨는 자녀에게 20억 원을 물려주면서 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시가 40억 원짜리 빌딩을 한 채 구입했다. 이 빌딩에 대해 국세청이 세금을 매길 때 적용하는 기준시가는 20억 원에 불과했다. A 씨는 20억 원 대출을 받아 2년 뒤 자녀가 채무를 떠안는 방식(부담부증여)으로 넘겨줘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현금으로 40억 원을 줬더라면 6억2000만 원의 증여세를 내야 했지만 일종의 ‘꼼수 증여’로 세금을 피한 것이다.

최근 도심지역 내 식당, 편의점 등 근린상가나 사무실 등으로 쓰이는 5층 내외의 소형 빌딩이 부유층의 탈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파트 등과 달리 거래가 많지 않고 값어치를 따지기 어려워 시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기준시가가 정해지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이 때문에 조세저항이 큰 보유세 인상보다는 이런 부동산들의 과세표준 산정 기준을 현실화해 누수되고 있는 상속·증여세부터 제대로 걷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 국세청 등 관계 당국은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 탈세 수단이 된 ‘꼬마빌딩’

동아일보
도심지역에 위치한 5층 이하, 시가 10억∼50억 원 정도의 비주거용 부동산은 크기가 작아 ‘꼬마빌딩’으로 불린다. 방송인 A 씨가 2000년 28억 원에 매입한 서울 서초구 양재역 인근 6층 건물이 최근 200억 원 이상으로 오르면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이 빌딩들이 부유층의 상속·증여세 탈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파트, 오피스텔 같은 주거용 부동산은 국토부가 매년 적정 가격을 공시한다. 국세청과 지방자치단체는 공시가격과 시세를 종합해 양도소득세와 상속·증여세 등을 매긴다. 반면 비주거용 부동산은 거래량이 많지 않고 입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정확한 시세 파악이 어렵다. 공시제도가 없어 국세는 국세청이, 지방세는 지자체가 건물기준시가를 제각각 고시한다. 세금을 매기는 일관된 기준이 없는 셈이다. 가격이 급등할수록 실거래가와 공시가격 간의 괴리가 커지고 그만큼 세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인근의 시가 200억 원짜리 빌딩은 기준시가가 100억5250만 원에 불과하다. 빚 없이 건물주가 자녀에게 증여할 경우 시세를 적용하면 88억5000만 원의 증여세를 내야 하지만, 기준시가를 적용하면 42억2000만 원만 부담하면 된다. 게다가 자녀에게 증여 재산에 담보된 채무를 함께 증여하는 부담부 증여를 활용하면 세금은 더 줄어든다.

○ 공시제 도입하면 관련 세금 60% 이상 증가

이런 이유에서 비주거용 건물의 매매가와 기준시가의 격차를 줄여 과세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부동산 보유세 인상에 앞서 지나치게 과소평가되고 있는 부동산 과세표준 산정 기준을 현실화하는 게 조세정의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한승희 국세청장도 올해 국정감사에서 “상가와 빌딩의 낮은 기준시가를 이대로 방치할 거냐”는 일부 의원의 지적에 “시가 반영률을 높이는 공식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국토부가 지난해 9월 한국감정원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을 통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비주거용 부동산 가격공시제도가 시행되면 분양형 상가 등 집합부동산은 현재보다 69.8%, 사무실 등 일반부동산은 68.8%가량 재산세가 증가한다. 세금을 매기는 기준시가도 현재보다 60% 이상 오르게 된다. 보고서는 “분양형 상가는 행정안전부의 시가표준액보다 약 67.5%, 사무실 등은 약 63.8%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현재 국세청이 맡고 있는 비주거용 부동산의 기준시가 산정 작업을 국토부로 넘기는 내용의 법령 개정은 완료됐다. 국토부는 부동산 가격공시제도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산출기준 등을 마련 중이다. 박병석 국토부 부동산평가과장은 “국토부가 비주거용 부동산 가격 공시를 맡는다는 방침은 큰 틀에서 정해졌다”며 “제도 시행을 위한 기술적인 준비를 내년 상반기까지 끝낼 방침”이라고 말했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박재명 / 천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