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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보험금 사태’ 한국의 보험 `희망을 쐈다`

‘자살보험금 사태’ 한국의 보험 `희망을 쐈다`


약관베끼기‧감독부실‧소비자무시 관행등 `문제점 종합판'…“선진보험 발돋음 계기로”

이코노믹리뷰

자료사진(기사 내용과 무관, 출처=이미지투데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생명보험사가 연관됐던 자살보험금 사태가 더욱 장기화되는 모양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금융감독원의 강력한 제재에 ‘백기투항’하면서 소비자들은 보험금을 지급 받게 됐다. 금감원은 제재심의위원회를 다시 열고 삼성‧한화생명에 대한 징계수위를 다시 결정하는 등 한 발짝 물러서는 행보를 취하고 있다.

자살보험금 사태는 보험사들의 약관 베끼기 관행과 더불어 금융감독원의 뒤늦은 감사와 제재, 소비자 보호에 대한 관심 부족이라는 문제점들이 함축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해결된다면 우리나라 보험시장은 세계 7위의 시장규모만큼 진정으로 성숙한 ‘선진국형 보험시장’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공학 전문성 부족 문제

자살보험금 사태는 보험사들의 약관 베끼기 관행으로 인해 촉발됐다. 지난 2001년 동아생명(현 KDB생명)은 일반사망보험과 별도로 재해로 사망한 경우 주계약의 2~3배를 추가 지급하는 약관을 선보였다.

당시 동아생명은 실수로 ‘가입후 2년이 경과한 후에 자살한 경우에도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일반사망보험금지급약관을 재해사망특약에 그대로 사용했지만, 다른 보험사들도 이 약관을 그대로 베꼈다. 이후 관련 약관은 2010년에 수정될 때까지 285만명이 가입했다.

다른 보험사의 약관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여과없이 사용했다는 점에서 금융공학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괜찮은 상품이 나왔다 싶으면 서로 앞다퉈 상품을 베끼고 론칭하는 문화가 아직까지 보험업계에 만연하다”며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정밀히 상품을 설계하고 검토하기엔 촉박해 마구잡이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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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금융감독원



소비자 보호를 등한시하는 모습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최초 금감원에 적발된 ING생명은 행정제재에 불복해 소송을 진행했다. 2014년 적발 이후 2016년까지 2년간 시간을 끌었다.

다만 중소형 생보사들은 지난해 대법원의 판결 이후 바로 소비자들에게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을 결정했다. 최초 금감원에 적발된 ING생명을 필두로 신한생명 메트라이프생명 흥국생명 동부생명 알리안츠생명이 일찌감치 지급을 결정했다.

KDB생명과 현대라이프생명은 다소 뒤늦게 지급을 결정했지만 금감원의 중징계 예고 이전에 모두 해결됐다. 대법 판결 이후로만 놓고 보면 5개월 이내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업계 1~3위인 ‘빅 3’ 생보사가 감독당국 중징계가 예고‧확정된 이후 뒤늦게 보험금 지급을 결정했다. 3년 넘게 시간을 끈 셈이다. 소비자 권익보호와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가 아닌 자사 이익을 위한 결정이라는 비난을 면키 힘들어 보인다.

업계관계자들은 빅3 생보사의 지급 결정이 ‘CEO 문책경고’ 제재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김창수 사장과 차남규 사장의 연임을 통해 경영공백 최소화가 필요했다. 교보생명의 경우 신창재 회장이 오너CEO이기 때문에 더욱 제재를 피해야 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영업조직에서는 설계사들이 영업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경우 타격이 크다”며 “영업손실을 막는게 우선적으로 반영되며, 이런 제반사항을 고려해 결정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같은 설명은결국 제재가 없었으면 끝까지 지급 안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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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출처=뉴시스)



문제 불거지자 강력 징계…그마저도 뒤엎었다

감독당국의 관리소홀과 책임회피 문제도 지적됐다. 자살보험금 사태 시발점이 2014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더 정확히는 2013년 금감원이 적발해냈다. 이후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연맹이 2014년4월 제보를 받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금감원은 결국 1년여 동안 적발 사실을 공개하지 않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강력 징계로 선회한 모양새가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강력한 제재안을 내놓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징계 수위를 재조정하겠다고 번복했다는 것이다. 이는 교보생명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독당국의 위상에도 치명타가 될 여지가 있다. 보험사들 입장에서는 ‘강력징계를 받은 후 뒤늦게라도 개선하면 봐준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

금감원 측은 재심 결정에 대해 ‘중대한 사정변경’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지급 보험금 문제를 해당 보험사들이 해결하면서,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안건을 도출하기 위해 제재심을 다시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지난 3년의 시간동안 고민한데다 제재심에서 8시간 넘도록 ‘마라톤 회의’ 끝에 내려진 결론을 번복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소비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주고 말고를 떠나서 징계를 내리는 것”이라며 “벌을 내렸으면 그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징계가 끝났다는 건데, 나중에 지나고 나서 돈을 냈다고 징계를 다시 산정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을 뿐만 아니라 기강확립 차원에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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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보험 나아가는 길목에 들어섰다

‘소비자의 승리’라는 성과는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보험사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금융상품 분쟁에서는 소비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절대적인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예를들어 보험상품의 보장범위는 약관에 설명돼 있지만, 소비자들은 약관에 나와있는 내용이 어떤 것들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대부분의 보험상품은 ‘작성자불이익의 원칙’이 적용된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고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지금까지는 ‘작성자불이익의 원칙’을 인정받기 힘들었다. 보험사들은 약관명시에 따른 계약이행 여부만 따져왔다. 소송전에 돌입한다고 해도 보험사들은 항소를 거듭했다.

이번 사태 해결과정에서 소비자단체의 적극적인 행보와 더불어 감독당국의 강력징계 예고 등을 통해 소비자 보호체계가 강화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창희 국민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약관이 잘못됐다는 것 자체가 프로로서 용인되지 않는 상황이고, 이런 부분이 우리 보험산업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것”이라며 “금융감독의 핵심기능 중 하나인 금융안전성 규제와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이 제대로 작용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번 사태를 통해 선진 보험시장으로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옛날 같았으면 보험사들이 유야무야 넘어갔을 사안인데 감독당국과 보험업계, 시민단체들이 상호작용해서 보험금 지급이 확정됐다”며 “그나마 하나의 원리원칙에 따라서 진행돼 희망적이며 선진보험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김태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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