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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왕성폭포 45년 만에 일반 개방된 한국 알피니즘의 성지

 

토왕성폭포 45년 만에 일반 개방된 한국 알피니즘의 성지



월간마운틴


2015년 12월 개장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토왕성폭포의 정경. 사진=신희수 기자


토왕성폭포에서 두 가지 소식이 날아왔다. 첫 번째는 비룡폭포 우측 400m 상단에 전망대를 설치해 45년 만에 일반탐방객들도 토왕성폭포의 비경을 볼 수 있다는 뉴스였다. 개방 후 단 5일 만에 1만 명의 인파가 몰리며 엄청난 호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반대로 올해 19회를 맞는 토왕성빙벽등반축제는 온화한 날씨 탓에 아직 일정이 오리무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과거 토왕성폭포는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일 년에 한 번, 이 빙벽등반축제 참가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접근을 허용해왔다. 국내 첫 빙벽대회이자 유일한 자연빙폭대회인 토왕성빙벽등반축제는 그러나 2013년엔 폭설로, 2014년엔 얼음이 일찍 허물어진 탓에, 2015년엔 일반탐방객에 대한 허가가 나지 않아 3년 연속 취소되기도 했다. 축제를 주최하는 설악산 산악구조대 측은 2016년에는 토왕성빙벽등반축제의 명맥을 무사히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하나의 폭포로 가는 두 갈래 길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새삼 대한민국 산꾼들에서 토왕성폭포란 어떤 의미일지 되짚어본다.

1971년 어센트산악회 토왕성폭포 등반대. 좌측부터 하용호, 전두성, 최영식, 김강원씨. 사진제공=어센트산악회


토왕성폭포, 한국 알피니스트들의 뿌리

알프스나 히말라야가 아니다. 2000m 이상의 고산도 만년설도 없다. 전통적으로 명산 유람을 즐겨온 한국인들에게 ‘보다 어렵고 험난한 도전’을 추구하는 알피니즘이란 근대화를 거치며 외부에서 이식된 개념에 가깝다. 더구나 한국은 겨울이 짧고 설빙벽 등반지가 많지 않아 동계등반이 불리한 자연조건이다. 이런 환경과 길지 않은 알피니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 최정상급의 아이스클라이머들을 대거 탄생시킨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많은 이들이 그 대답을 설악산, 그 중에서도 토왕성빙폭에서 찾는다.


설악산국립공원 노적봉 남쪽 토왕골에 위치한 토왕성폭포는 상단 150m, 중단 80m, 하단 90m, 총 길이 320m에 달하는 3단 폭포로 설악 10경이자 대승폭포, 독주폭포와 함께 설악 3대 폭포 중 하나다. 토왕성폭포는 언제나 그 시대의 가장 진취적인 등반흐름을 보여주는 격전지이자 한국 빙벽등반 역사의 현장이었다. 가히 국내 알피니즘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이 빙폭은 장비의 발달과 기술 및 체력의 향상으로 이제 더 이상 과거만큼 첨예한 등반지는 아니다. 그러나 국내 최장 폭포의 압도적인 위용과 아름다움, 등반기량의 각축장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여전히 많은 클라이머들의 동경과 도전을 받는 대표적인 빙벽등반지이다.


토왕성폭포를 향한 한국 산악인의 도전은 유창서, 정영규, 이상학, 김종철, 이일영씨의 1969년 1월 등반을 그 시작으로 본다. 58년 동계 천불동 계곡 초등, 65년 12선녀탕 빙폭 초등, 68년 잦은바위골 50m폭, 100m폭 초등 등을 거치며 성장한 한국등반계가 드디어 토왕성빙폭에 주목한 것이다.


이후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토왕성빙폭은 그야말로 초등을 향한 전쟁터가 되었다. 70년 1월 요델산악회의 백인섭, 오세진, 최영준씨 등은 토왕성폭 상단 등반을 시도해 약 40m를 올랐다. 이들은 빙벽을 깎고 비박을 강행하며 인공등반을 시도했지만 고드름에서 확보물 설치가 여의치 않아 결국 등반에 실패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 어쎈트산악회 김강원씨 등 5명도 약 한 달의 계획으로 토왕성빙폭 등반을 시도했다. 개인장비는 열악했지만 대신 나이프형 아이스하켄을 제작하고 스투바이 두랄루민 카라비너 20여개, 원정용 30단 레더, 핀 스크루 등을 준비했다. 그러나 대장간에서 만든 아이스하켄은 설치가 힘들었고 그들이 일주일 동안 하단 30m 정도 밖에 오르지 못했다. 이처럼 1970년대 초반은 한국 빙질에 적합한 장비와 등반기술을 고민하며 토왕성폭포 초등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기였다.

1976년 동국대산악부 도창호, 이동훈씨의 하단 초등장명. 사진=성동규, 사진제공=이동훈

















1976년 1월에는 동국대산악부가 등반을 시도했다. 1975년 3월부터 등반 계획을 세우고 8개월간 준비했지만 역시 스크루 열댓 개와 웰체밧티 아이스하켄 대여섯 개가 고작인 열악한 장비가 문제였다. 이들은 산악부 선배의 도움으로 등산화와 피켈, 크램폰 등 장비를 갖추고 하단을 3~4일, 상단을 일주일 동안 등반할 계획으로 1월 6일 등반을 시작했다. 하지만 스텝커팅과 인공방식인 등반은 더디게 진행되어 7박 8일 만인 1월 14일에야 하단 초등에 성공했다. 식량·장비 부족 등의 이유로 상단은 등반하지 않고 하산했지만 국내 산악인들의 토왕성빙폭에 대한 열망과 도전정신을 보여준 개가였다.

토왕성폭포를 오르려는 외국 클라이머들의 시도도 이어졌다. 고 김정태(한국산악회)씨는 ‘1969년 12월 30일 일본산악회원들과 함께 토왕성빙폭 우단의 암벽등반을 하며 정확한 빙질 상태의 정찰을 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1975년 일본 히말라야 힌두쿠시 원정대 대원 3명이 하단을 등반하다 실패했지만, 구곡폭포를 초등한 하타케야마 산시로는 1976년 2월 등반을 시도해 하단을 14시간 만에 등반하고 상단 3분의 1지점까지 등반했다. 비슷한 시기 아주공대 교수였던 프랑스의 볼 보자르스키도 토왕성빙폭에 도전했으나 낙수와 부실한 암질 탓에 실패했다.


토왕성폭포는 당시 클라이머라면 누구나 애타게 오르길 원하는 숙제이자 시대의 요구였다. 도전자들은 열악하고 부족한 장비들에 목숨을 맡기고 몇날 며칠 빙폭에 매달며 사투를 벌였다. 초등의 영광은 쉽게 오지 않았지만 빙폭을 오르는 등반가들의 장비와 기량은 눈에 띄게 진보했다. 그렇게 토왕성빙폭은 대한민국에 본격적인 빙벽등반의 시대를 열며 국내 알피니스트들이 해외 고산과 거벽으로 무대를 넓히는 밑거름이 되었다.

1977년 크로니산악회의 상단등반장면. 사진=크로니산악회


크로니산악회 초등 이후 무수한 빙벽기록 쏟아져

1977년 1월, 크로니산악회, 에코클럽, 동국대산악부, 부산합동대가 설악산 최후의 난제, 토왕성빙폭 상하단연결 초등 도전을 위해 토왕성폭포를 찾았다. 이들 중 끝내 초등정에 성공한 것은 가장 먼저 도착했던 크로니산악회였다. 이들이 등반하는 동안 다른 팀들은 텐트에서 대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초등 당시 크로니산악회가 하단 오른쪽에 설치한 베이스캠프. 사진=크로니산악회
크로니산악회가 초등에 소요한 날짜는 총 12일, 등반시간만 하단 4시간, 상단 19시간이 걸렸다. 영하 15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 대장 박영배씨 외의 7명의 대원은 아이스하켄 상하 104개, 바트훅 29개, 스크루 하켄 17개를 때려 박으며 로프 9동을 사용해 사투를 벌였다. 특히 후등자 송병민씨는 심야에 단독으로 상단 19시간을 올라 극적으로 생환하기도 했다. 토왕성빙폭 초등은 한국 산악계가 간절히 원하던 성취였으나 송병민씨가 조난당했을 때 박영배씨가 구조하지 않고 혼자 하산한 것, 초등 과정에서 등반개시일을 앞당겨 미리 등반계획을 밝혔던 다른 팀들을 따돌렸던 비신사적 행위 등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편 박영배, 송병민씨가 등정 성공한 이후 부산합동대는 13일부터 등반을 시작해 12박 13일 만인 25일 오후 4시 김원겸, 김문식 대원이 토왕성빙폭 재등에 성공했다.

토왕성빙폭 중단에서 등반 대기 중인 초등자 박영배씨. 사진=크로니산악회
1978년 손칠규(왕골산악회)씨와 윤대표(악우회)씨는 초등 1년 만에 등반시간을 12시간 30분으로 앞당겼다. 이를 시작으로 1980년대부터는 무수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84년에는 이태식(마산무학산악회)씨가 로프를 사용한 단독등반에 성공했고, 85년 조희덕(청화산악회)씨는 여성 최초로 토왕성빙폭 정상에 올랐다. 86년 신동걸(인천교대OB)씨의 로프 없는 단독등반, 90년 청악산우회에서 시도한 5개조 10명 동시등반이 이어졌고, 91년에는 남난희(록파티산악회), 이현옥(청맥산악회)씨로 구성된 여성 등반대가 등정에 성공했다.

1994년 토왕성폭을 선등으로 등반 중인 김점숙씨는 다음해 토왕성폭포의 첫 여성 단독등반자가 되었다. 사진=김점숙 제공


1990년 정승권(정승권등산학교 교장)씨는 토왕성, 대승, 소승, 3개의 빙폭 당일 단독등반에 도전하며 토왕성 상하단을 로프 없이 1시간 22분 만에 올랐다. 92년에는 야간에 두 번이나 토왕성폭포를 올랐으며, 93년에는 야간 단독등반과 클라이밍 다운까지 성공했다. 91년 3월에는 강희윤씨가 로프 없이 1시간 11분 만에 완등하며 속도등반의 불을 붙였다. 94년 강희윤씨가 토왕성빙폭을 단독등반한 시간은 단 37분에 불과했다. 1995년에는 김점숙씨가 여성 단독등반에 성공했다.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토왕성빙폭은 당대의 등반흐름을 알 수 있는 가장 전위적인 무대이자 한국 빙벽의 역사 그 자체이다.

제19회 토왕성빙벽등반축제를 기다리며

1997년 2월 1일에는 토왕성폭포에서 국내 최초의 빙벽등반대회가 열렸다. 설악산 눈꽃축제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대회는 속초시와 설악산적십자산악구조대(당시 대장 마운락)가 주최하여 토왕성폭의 하단부에서 톱로핑 속도경기로 치러졌고 이후 일반인들이 토왕성폭포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많은 관심을 받으며 지역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2007년 132명, 2008년도 161명, 2009년 280명 등, 참가선수들도 점점 늘어갔으며 2012년에는 선수를 비롯한 관광객 7500여명이 참가하는 등 국내를 대표하는 빙벽대회로 성황을 이뤘다. 대회관람 외에도 비룡교에 짚와이어를 설치하고 빙벽등반 및 구조, 하강법 등 관광객을 위한 체험행사를 준비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처럼 토왕성빙벽등반축제는 자연 빙폭에서 개최되는 국내 유일의 대회로 동계 빙벽등반의 기술적 측면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성장해나갔다. 그러나 2013년 16회 대회는 폭설 때문에, 17회 대회는 온난화의 영향으로 빙폭이 일찍 무너져서 취소되고 말았다.

2012년 2월에 열린 제15회 토왕성빙벽등반대회. 이후 축제는 3년 연속 취소되었다.
사실 토왕성빙벽대회는 환경오염과 안전성 등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고 자연 빙폭의 특성 상 대회에 적합한 난이도를 세팅할 수가 없었다. 이에 주최 측인 설악산 산악구조대는 ‘토왕성폭포 아이스클라이밍 페스티벌’이라고 명칭으로 바꾸고 선수들의 대회가 아닌 빙벽등반 동호인을 위한 축제로 변화시킬 계획을 가졌다. 이를 위해 루트 세팅 없이 2인 1조가 되어 자신들만의 색깔로 톱 로핑 방식으로 오르는 형식을 도입하고 ‘산악인의 윤리에 관한 세미나’, ‘산양솜다리 걷기’ 행사 등을 통해 산악문화를 공유하며 자연정화활동을 함께 하는 축제를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2015년 2월 14일로 예정돼 있던 축제가 개최를 불과 4일 앞둔 10일 돌연 취소됐다. 당시 설악산구조대가 본지에 보내온 ‘빙벽등반 축제 취소에 따른 경과보고 및 입장’에 따르면 관리공단 측에서 안전문제가 있으니 참가 선수와 대회 관계자들만 가서 대회를 진행하라고 요구했고 관객이 없는 축제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구조대 측이 행사 취소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토왕성빙벽등반축제는 3년 연속 안타깝게 취소되고 말았다.

2016년 제19회 토왕성빙축제의 진행여부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평소보다도 더디게 어는 얼음과 온화한 날씨 속에 '19회 축제도 개최하지 못한다',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전면 폐지된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이에 강태웅 설악산 산악구조대 대장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국내 유일의 자연빙폭대회를 가능한 유지하려는 입장을 밝혔다.


'관리공단과의 협조문제, 나날이 따뜻해지는 겨울 때문에 이번을 마지막으로 폐지를 고민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많은 클라이머들이 축제의 지속을 바라시고, 국내 최초의 빙벽대회, 국내 유일의 자연빙폭대회라는 상징성을 생각해서 앞으로도 대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설악산구조대 측은 2016년 제19회 토왕성빙벽축제를 선수 대상의 경기가 아닌 설악산을 사랑하고 빙벽등반을 즐기는 모든 이들을 위한 축제로 준비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날씨'라는 강태웅 대장의 걱정이 사라지도록 부디 이번 겨울은 토왕성폭포가 다이아몬드처럼 꽝꽝 얼어붙기를 기원한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늦게 얼고 빨리 무너지는 빙폭. 이제 토왕성폭포 등반의 최대 난제는 날씨가 되었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오를 수 없는 토왕성

토왕성폭포는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45년 동안 단 한 번도 정규탐방로를 개방한 적이 없다. 일반인들은 일시적으로 문을 여는 토왕성빙벽축제를 찾거나 불법등산로를 이용해야만 했다. 이제 2015년 12월 비룡폭포 상단에 전망대가 설치되면서 소공원에서 한 시간이면 누구나 국내 최장의 폭포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반대로 토왕성빙폭을 오르는 행위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장비와 기술의 발전으로 예전처럼 불확실하고 곤란한 등반은 아니지만 나날이 심각해지는 온난화 현상에 빙폭은 점점 늦게 얼고 빨리 무너진다. 등반이 가능한 시기는 한 달 남짓, 그만큼 등반가들이 많이 몰리고 빙질의 수준은 떨어지면서 낙빙과 조난사고가 무섭게 늘어났다. 여전히 클라이머에게 토왕성은 누구나 오르길 꿈꾸지만 아무나 피켈을 찍을 수는 없는 경건한 이름이다. 초등 3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토왕성폭포는 무섭게 높이 솟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