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애 없다면 頂上이 무슨 쓸모있나"
['히말라야' 실존인물 엄홍길 대장]
인간에 대한 예의 일러주는 영화
각박한 사회, 결핍감이 흥행 배경… 소중한 것들 돌아볼 줄 알아야
"전달이 잘 안 되면 어쩌나 사실 좀 걱정했어요. 그런데 금방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영상과 기억이 겹쳐지면서 무택이가 저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생생했어요. 장례식장 장면부터 자꾸만 눈물이 나서 혼났습니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감정을 추스르느라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어요."
산악인 엄홍길이 피켈(등반용 얼음도끼)을 들고 서 있다. 그는 “영화 ‘히말라야’의 배우 황정민에게는 방해가 될까 봐 아무 조언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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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6개를 모두 등정한 신화적인 산악인이다. 박무택과는 네 번 동행했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두 사람이 2000년 칸첸중가 절벽에 매달린 채 밤을 꼬박 새울 때는 죽음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엄홍길은 "'무택아, 졸면 안 된다. 정신 차려라' 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유서를 쓰고 있었다"며 "기적적으로 살아 아침을 맞은 것"이라고 술회했다.
휴먼원정대는 박무택의 시신을 운구해 내려오다 눈보라를 만났다. 더 욕심을 내다가는 대원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엄홍길은 종일 볕이 드는 동쪽 능선으로 시신을 옮겨 돌무덤을 만들었다. "무택이 손에 장갑을 끼워주면서 중얼거렸어요. '무택아, 에베레스트의 신(神)이 여기까지만 허락하는 것 같다. 네가 좋아하는 이 설산에 모든 걸 내려놓고 편히 잠들어라.' 그날 밤 6800m 캠프까지 내려오는데 별빛이 눈과 얼음에 반사되면서 환했어요."
그는 한동안 영화화 제의를 고사했다. 그러다 2013년 말 JK필름 윤제균 감독을 만나 마음을 바꿨다. 엄홍길은 "무한 경쟁으로 치달으면서 사회가 너무 각박해지고 끔찍한 사건 사고가 많아졌다"며 "인간에 대한 예의랄까, 동료애, 희생정신 같은 가치를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수락했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결핍이 이 영화의 흥행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엄홍길은 "막상 산에 올라가 보면 대단한 의미는 없고 민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관객도 영화를 통해 우정, 희생, 의리 등 잊었던 것을 재발견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회사원이건 자영업자건 예술가건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정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르는 일에만 집착하다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간다면 슬픈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산악인은 산에서 동료 10명을 잃었다. "무택이를 비롯해 그들과 함께라는 생각으로 산에 올랐다"는 엄홍길은 "극한 상황에 부닥치면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름을 주문처럼 외웠다"고 했다. "나에게 힘을 다오, 용기를 다오…." 그럼 어느 순간 위기에서 벗어났고 정상을 밟았다.
"산에 미쳐서 아빠 노릇, 남편 노릇 제대로 못 한 게 후회스럽다"는 엄 대장은 이제 은퇴한 산사나이다. 하지만 그는 "'17번째 봉우리'가 남아 있다"고 했다. 엄홍길휴먼재단은 네팔 오지(奧地)에 학교 16개를 짓는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2월 중순에는 11번째 학교 준공식이 열린다. 엄홍길은 "설산에 묻혀 있는 동료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살고 있다"고 했다.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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