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맹상군 孟嘗君의 통큰 리더십..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시티라이프
3000명 식객을 거느린 것으로 유명한 맹상군. 그는 부자로 태어나 넘치는 재산으로 풍월이나 즐기면서 세월을 보낸 이가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40여 명 형제들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전 씨 문중의 후계자가 된 투쟁가이다. 그러면서도 일국의 재상으로서도 능력을 발휘한, 한마디로 귀를 열고, 마음을 활짝 편, 처세에도 능했던 진정한 리더였다.
주나라가 영향력을 서서히 잃기 시작하자 제후들은 각자의 영지에서 통치권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주나라 왕은 제후들의 권한을 인정해주면서 왕실의 명맥을 이어나갔고 그 후 군웅쟁패를 통해 대륙은 ‘진, 초, 제, 위, 한, 연, 그리고 조나라’ 등 ‘전국 칠웅’으로 분리되었다. 이때가 기원전 400년 무렵이다. 이 전국시대는 약 200년간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 시기에는 위대한 사상가와 정치가 그리고 뛰어난 문인들이 많이 등장했다. 전란의 시대임에도 책을 만드는 곳에는 항상 사람이 붐비고 학자들은 모이면 열띤 토론으로 정국을 진단했다. 그리고 전국시대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칠웅들은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영입하는데 열중했다. 출신은 중요하지 않았다. 즉 진나라 출신이 위나라에서 재상을 할 수 있는 열린 시대였다. 이런 재상들을 ‘객경 客卿’이라 불렀다. 한마디로 능력만 있다면 세상을 상대로 자신의 경륜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 중에 맹상군이란 걸출한 인물이 있다.
▶버림받은 서자출신, 명문거족의 후계자가 되다
그는 전국 칠웅 중 하나인 제나라 사람이다. 성은 규, 씨는 전이며 이름은 문이었다. 즉 맹상군은 그의 군호이고 이름은 전문인 것이다. 전문은 명문 왕족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전영은 제나라 선왕의 이복동생이다. 어쨌든 왕가와 피가 섞인 성골인 셈이다. 전 씨 가문의 영지는 지금의 산동성이 위치한 설땅으로 약 1만호의 식읍을 거느리고 있었다. 명문에다 부자 출신답게 맹상군의 아버지 전영은 후사를 많이 두었다. 아들만 무려 40여 명이 되었다. 배다른 형제간의 치열한 후계다툼은 불 보듯 뻔한 노릇. 하지만 맹상군은 선천적으로 불리한 입지를 타고 났다. 맹상군의 어머니의 신분은 다른 형제들의 어머니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더구나 맹상군의 생일은 5월5일. 지금이야 어린이날이라 하여 놀이공원, 패밀리레스토랑이 아이 손잡은 가족들로 붐비고 동네 중국집도 탕수육 튀기는 냄새가 그득하겠지만 당시에는 ‘5월5일에 태어난 아이가 집의 문설주 높이까지 자라면 부모를 해친다’는 속설이 있었다. 맹상군의 아버지 전영은 맹상군이 태어나자마자 ‘내다 버려 죽게 두어라’ 명했지만 어머니가 비밀리에 다른 곳에서 키웠다. 가뜩이나 보잘 것 없는 외가에, 태어난 날까지 이 지경이니 맹상군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푸대접의 연속, 생존만이 중요한 과제였다. 아버지의 후계 자리는 그야말로 넘사벽 그 자체였다. 그렇게 성장한 맹상군은 어느날 아버지 전영과 대면하게 된다. 아버지는 크게 놀라며 “어찌 이 아이를 죽이지 않았는가?”라며 주위 사람을 힐난했다. 맹상군이 입을 열었다.
“어찌, 죽이라 하십니까?”
“몰라서 묻느냐. 네 생일인 5월5일에 태어난 아이가 문설주 높이까지 자라면 부모를 죽인다는 것을.”
“어찌 사람의 목숨과 운명을 그깟 미신에 근거해 좌우하려 합니까. 그러면, 제 키보다 더 높게 문을 고치면 될 일 아닙니까?”
전영은 맹상군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듣고 보니 옳은 소리요, 딱히 무엇이라 꾸짖을 수 없는 현답이기 때문이다. 그 뒤 전영은 맹상군을 집에 머물게 하였다. 일단 목숨은 부지하게 된 것이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맹상군의 다음 목표는 아버지 전영의 후계자가 되는 것이다. 명석한 두뇌와 빠른 판단력의 맹상군은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맹상군은 넘쳐나는 재산이 명분도 없는 곳에 쓰이는 것에 주목했다. 촌수도 모를 일가친척들이 와서 매일 먹고 마시고 노는데 큰 비용이 들어간 것이다. 물론 그 정도로 살림이 휘청거릴 가문은 아니었지만 맹상군은 아버지 전영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손자의 손자는 무엇이라 하옵니까?”
“그거야 현손이라 하지 않느냐.”
“그럼, 현손의 현손은 무엇이라 합니까?”
“그거야,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묻느냐.”
“지금 이 집에는 고기와 생선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종들마저 고기를 부위별로 먹고 있고 모든 여자들은 비단을 두르고 있습니다. 객들도 많지만 전부 촌수도 알 수 없는 사람들 뿐입니다. 어찌 이 많은 재산을 촌수도 모르는 현손의 현손에게 물려주려 하십니까. 지금 강호에는 많은 인재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들을 식객으로 받아 대접하는 것이 훗날을 도모하기에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쓰는 돈을 좀 더 명분 있고 현명하게 쓴다면 아버지와 집안의 위광이 자손만대에 걸쳐 더 빛나리라 생각됩니다.”
전영은 아들 맹상군의 제안을 수용했다. 그 뒤로 전영의 저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모든 대접과 관리를 맹상군이 맡았다. 맹상군은 식객을 관리하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공평하고 인정 있게 이들을 받아들였다. 신분과 직업, 귀천도 따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도둑질을 하고 도망 다니는 사람들까지 그 무리에 섞여 있었다. 서서히 맹상군의 이름 석 자가 강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전영은 맹상군을 지켜보다가 드디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다. 태어날 때부터 천대를 받았고 목숨마저 위태로웠던 첩 출신이, 위기를 극복하고 40여 명의 형제들과의 경쟁을 뚫고 명문거족의 어엿한 주인이 된 것이다.
▶도둑놈 덕분에 목숨을 구한 맹상군의 인재양성
맹상군은 한 가지라도 재주가 있으면 식객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을 3등급으로 분리해 식사와 가마 그리고 집안의 대소사까지 꼼꼼히 챙겼다. 또한 맹상군은 손님을 접대할 때도 병풍 뒤에 자신의 보좌관을 배치해 손님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모든 언행을 기록하게 했다. 그리고 그 손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면 손님보다 맹상군이 보낸 선물이 먼저 도착하도록 해 감동시켰다.
한 번은 맹상군이 많은 식객들과 식사를 했다. 칸막이가 쳐져 있고 불빛은 어두웠다. 그러자 식객 중 한 명이 “맹상군을 천하의 의인이라 여겼는데 와서 확인해 보니 아니구나. 분명 칸막이가 있는 곳에서 식사하는 맹상군은 우리와 다른 반찬을 먹을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일순 좌중은 술렁거렸다. 그러자 맹상군은 조용히 일어나 자신이 먹던 상을 많은 식객들에게 내보였다. 똑같았다. 단 한 가지의 반찬도 더도 덜도 없이 식객과 똑같은 상이었다. 소리를 쳤던 식객은 부끄러운 나머지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이처럼 맹상군은 언행에 위선이 없었다. 그의 이름은 중국 전역에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위나라의 신릉군, 조나라의 평원군, 초나라의 춘신군과 함께 제나라의 맹상군을 전국 사군자라 불렀다. 이 중에서 맹상군의 거처에는 무려 3000여 명의 식객이 기거하는, 그야말로 강호 제일의 인재집합소가 되었다. 기원전 299년 진나라의 소양왕이 맹상군에게 재상으로 일해 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맹상군은 많은 식객과 가솔을 거느리고 진나라로 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진나라의 토박이 관리들의 질시와 모함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진의 소양왕에게 “맹상군은 분명 인재입니다. 하지만 본디 제나라 사람으로 진의 재상이 되어도 제나라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책을 많이 행합니다. 그를 그냥 재상에 두는 것은 진에게 장차 불이익이 되는 것이고 또 그렇다고 그를 제나라로 돌려보내면 훗날 진나라의 화근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제거해야 합니다.” 이 말에 귀가 솔깃해진 소양왕은 맹상군을 일단 자택에 연금시키고 죽일 생각을 굳혔다.
위기에 빠진 맹상군은 백방으로 사람을 연결해 소양왕의 총비인 연희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연희는 맹상군에게 보물인 호백구를 달라고 했다. 호백구는 여우의 겨드랑이에 있는 흰털만으로 만든 옷으로 호백구 한 벌을 지으려면 여우 만 마리가 필요한 귀한 보물이었다. 연희는 맹상군이 이 호백구를 가져와 진의 소양왕에게 진상품으로 바친 것을 본 것이다. 맹상군은 난처한 지경에 빠졌다. 그때 식객 중 한 명이 나섰다.
“제가 소양왕의 창고에 몰래 들어가 그것을 훔쳐 나오고 그것을 다시 연희에게 진상하면 됩니다.”
그 식객은 도둑질에 능한 사람이었다. 호백구를 훔쳐 온 도둑 출신 식객 덕분에 맹상군은 일단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제 진나라를 떠나는 일만 남았다. 맹상군은 황급히 진을 떠났다. 하지만 국경지역 함곡관에서 난관에 부딪쳤다. 성문이 굳게 닫힌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새벽닭이 울어야 성문은 열린다. 총비의 베개머리 송사로 잠시 맹상군을 놓아준 소양왕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추격대를 보내 맹상군을 죽이라 명령을 내린 상태.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는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다. 이때 식객 중 한 명이 나서 닭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온 성내 닭들이 덩달아 울기 시작했고 성문을 지키던 군졸들은 아침이 된 줄 알고 성문을 열었다. 이렇게 맹상군은 무사히 진나라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쓸모없이 그저 밥이나 축내던 도둑 출신과 동물 소리 흉내 잘 내는 식객 덕분에 맹상군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계명구도鷄鳴拘盜’한 셈이다. 제나라로 돌아온 맹상군은 재상이 되었다. 기원전 298년 맹상군은 한나라, 위나라와 연합해 진을 공격하는 등 재상으로서 내치는 물론 국력의 외적인 팽창에도 힘을 기우렸다.
이 무렵 맹상군은 인생을 바꿀 사람과 만나게 된다. 바로 풍환이다. 풍환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볼품없는 선비였다. 게다가 그는 처음 맹상군의 집에 올 때부터 ‘밉상’이었다. 맹상군은 풍환에게 3급소의 자리를 주었다. 그러자 풍환이 장검을 두드리며 “어찌 밥상에 고기가 없느냐?”고 외쳤다. 맹상군은 그를 2급으로 올려주자 풍환은 다시 장검을 두드리며 “내가 출입을 하는데 어찌 가마가 없는가?”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맹상군은 그를 1급소에 보냈다. 이제 불평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풍환의 불평은 계속되었다. “내 가족이 먹고 살 것이 없구나.” 맹상군은 그의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재물을 대주었다. 그리고는 정이 떨어져 1년 정도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맹상군에게 고민거리가 생겼다. 소작농들이 제대로 세를 내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를 영지에 보내 재촉하고 세를 받아야 했다. 맹상군은 풍환을 생각했다. 물론 그가 그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놀고 있는 그의 능력을 시험하고 어려운 일을 맡겨 곤란한 지경에 빠지는 그의 모습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풍환은 떠나면서 맹상군에게 물었다.
“제가 가서 식읍의 밀린 빚을 받으면 무엇을 사올까요?”
“글쎄, 이곳에 없는 것을 사가지고 오시게.”
사실 맹상군에게 부족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먹는 것, 입는 것이 넘쳐나는 집이었다. 영지에 도착한 풍환은 소작농을 분리했다. 세를 내는 자, 조금의 시간을 주면 낼 수 있는 자, 그리고 상환 능력이 없는 자로 분리했다. 그리고 그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맹상군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 소작세를 낼 수 없는 자들의 차용증서를 모두 태워버리라 하셨소. 여러분들에게 맹상군께서 큰 은혜를 베푸신 것이요.” 소작농들은 맹상군의 큰 배포에 감탄하고 감동했다.
풍환이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맹상군은 불같이 화를 냈다. 돈을 받아 오라 했더니 차용증서를 다 태우고, 또 그나마 받은 돈으로는 소작농들을 모아 술과 고기로 잔치를 하느라 더 써버린 풍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풍환이 맹상군에게 말했다.
“군께서 저에게 빚을 받으면 이곳에서 부족한 것을 가져 오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물이 넘쳐나지만 이곳에 있지 않은 의리와 은혜를 가져왔는데 어찌 화를 내십니까? 어차피 갚을 능력이 없는 자들은 재촉해도 도망밖에 선택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군을 원망하며 고향을 떠날 텐데 어찌 군께서는 돈을 사랑하시고 백성은 사랑하지 않습니까? 빚문서를 태워 대신 ‘맹상군은 덕이 있는 군자’라는 이름을 얻은 것입니다.”
맹상군은 풍환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탄복했다. 그리고 풍환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맹상군이 재상으로 모시던 제나라 왕은 민왕이었다. 맹상군은 성심껏 민왕을 섬겼지만 민왕은 근본적으로 폭력적이고 의심이 많은 졸장부였다. 그는 국력이 강해지자 다른 나라와 전쟁을 일삼았고 무엇보다 맹상군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했다. 맹상군은 비록 서출이지만 왕족의 피가 섞여있고 또한 일국의 재상으로 명예도 갖추었고 왕이 부럽지 않은 풍부한 재물도 있다. 게다가 집에는 무려 3000여 명의 식객이 넘쳐나니 왕으로서도 만만치 않은 존재였다. 또한 사사건건 맹상군은 민왕에게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맹상군의 말은 이치상 어긋날 것이 없으나 묘하게 민왕의 심사는 뒤틀렸다. 그때 민왕에게 누군가 고자질을 했다.
“지금 나라 안팎에 제나라의 실질적인 왕은 맹상군이고, 맹상군이 있어 제나라가 유지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민왕은 당장 맹상군을 파면했다. 예나 지금이나 인심은 마찬가지. 그 많던 식객들은 맹상군을 버리고 떠났다. 겨우 몇몇만이 남았는데 그 중에 풍환이 있었다. 풍환은 맹상군에게 영지인 설 땅으로 돌아가 재기를 준비하자고 제안했고 맹상군은 풍환의 말을 따랐다. 맹상군의 초라한 행렬이 100여 리 밖에 이르자 백성들이 마중 나와 술과 고기를 내놓고 맹상군을 반겼다. 맹상군은 감격했다. 그리고 풍환의 깊은 뜻을 알게 된 것이다.
“선생이 전에 빚 문서를 태우고 은혜와 의를 샀다는 말뜻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풍환은 맹상군의 재기 공작을 시작했다. 그는 진나라의 소양왕을 찾아가 맹상군이 다시 진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소양왕은 옛날의 구원이 있지만 맹상군의 지혜와 내정에 능숙한 솜씨를 알고 있기에 승낙했다. 풍환은 맹상군에게 진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지 말고 시간을 끌고 있으라 조언했다. 그리고 제나라의 민왕을 찾아갔다.
“진에서 맹상군에게 재상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지금 맹상군을 진으로 보내면 제나라는 큰 위기에 빠질 것입니다. 바로 불러 곁에 두고 부리는 것이 옳은 처사입니다.”
민왕은 반신반의 하면서 지켜보았다. 그때 진나라에서 사신이 맹상군에게 가는 것을 보자 곧바로 맹상군을 제나라의 재상으로 복직시켰다. 풍환의 능수능란한 외교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맹상군이 다시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서자 떠났던 식객들이 몰려들었다. 맹상군을 화를 내고 이들을 내치라고 명령했다. 이때도 풍환이 나섰다.
“아침에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녁에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는 저녁 시장에는 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식객이 떠난 것은 공이 싫어서가 아니라 빈궁해서 떠난 것입니다. 부자 주변은 사람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니 돌아오는 이들을 내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의 피신처를 마련해 두는 것입니다. 하물며 미물인 토끼도 도망갈 굴을 세 개나 파놓습니다.”
맹상군은 풍환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풍환은 위나라의 혜왕을 알현, 맹상군이 위나라에 봉사할 뜻이 있음을 비췄다. 혜왕은 재상보다 높은 상국의 자리를 마련하고 맹상군을 초빙했다. 풍환은 맹상군에게 가지 말 것을 조언하고 제나라의 민왕을 만나 담판을 지으라 조언했다. 맹상군은 민왕을 만나 이렇게 제안했다.
“제가 제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해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제 영지인 설 땅에 제나라의 선대 종묘를 세우고 싶습니다. 왕께서 허락해 주시면 제기를 마련하는 것과 관리하는 비용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민왕은 잠시 대답을 미루었다. 그러자 위의 사신이 마차 10대에 온갖 선물을 채우고 맹상군을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자 재상 자리를 계속 유지하며 설 땅에 종묘를 세우는 것을 허락한다. 이제 설 땅에는 제나라 역대 왕의 모신 종묘가 있으니 설사 민왕이라 할지라고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맹상군은 이제 설 땅의 굳건한 영지를 마련했고 또한 위나라의 상국을 제안을 받은 상태에서 제나라의 재상 자리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토끼가 도피처 3곳을 만들어 놓는다는 고사성어인 ‘교토삼굴 狡兎三窟’을 확고히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민왕과 맹상군의 밀월기간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민왕의 맹상군에 대한 불신과 질투는 여전했다. 맹상군은 먼저 사직계를 내고 은거에 들어갔다. 백성은 물론이고 각 나라의 제후들은 맹상군의 처신과 인덕에 탄복했고 그를 더 존경하게 되었다. 전국 칠웅 중에서 가장 무력했던 진나라는 맹상군이 비록 재상에서 물러났지만 언제든지 위기 때 제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반간계로 맹상군 제거공작을 폈다. 즉 제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사전 포석인 셈이다. 민왕은 어리석게도 이 공작에 넘어가 맹상군을 죽이려 들였다.
맹상군은 살해 위협까지 받자 기원전 284년 또 하나의 굴이었던 위나라로 가 재상이 된다. 그리고 조, 위, 한, 진, 연의 5개 연합군을 구성해 제나라를 공격한다. 민왕은 연합군의 장수인 악의에게 제거되고 결국 제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민왕의 개인적인 어리석음과 부하에 대한 질투가 자신은 물론 나라까지 잃게 만든 것이다.
기원전 279년 맹상군은 평안한 죽음을 맞는다. 전국시대 최고의 재상으로 많은 인재를 거느리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폈던 영웅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인재를 얻으려면 조건 없이 대접하라
맹상군은 개인적인 능력도 출중했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인재풀이 있었다. 3000명이라는 식객들은 맹상군에게 절대적인 힘이 된 것이다. 물론 이들 모두가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밥이나 축내는 식객’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풍환이나 공순술 같은 뛰어난 인재들이 있어 맹상군의 처세와 리더십을 더욱 공공히 할 수 있었다.
맹상군이 제나라 사신으로 초나라에게 갔을 때였다. 초왕은 맹상군에게 상아로 만든 침대를 선물했다. 귀한 보물이었다. 등도직이라 자가 이 상아침대의 운송을 맡았다. 그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공순술을 찾아갔다. “이 상아 침대의 가격이 그야말로 천만금이네. 내가 이를 운반하다가 만약 상처라도 난다면 나는 물론이고 내 처자식을 다 팔아도 감당이 되지 않네.”
공순술은 즉시 맹상군을 찾았다. “맹상군께서는 의를 강조하고 백성의 빈곤함을 떨쳐버리려 고민하고, 부자이지만 부정한 것을 탐하지 않는 청렴함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신의 신분으로 상아침대 같은 보물을 선물로 받으며 장차 다른 곳에서는 무엇으로 대접을 받으려 하십니까?”라고 조언했다.
맹상군은 초나라가 자신에게 값진 선물을 하는 의도를 순간 파악하고 상아침대를 거절했다. 맹상군의 이름이 다시 한 번 강호에 떨치는 순간이다. 이처럼 맹상은 부하들의 충언과 직언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상대가 누구이고, 어떤 출신인가를 따지지 않았다. 그래서 풍환도 발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맹상군은 평소 ‘아무리 하잘 것 없는 일을 하는 사람, 일테면 구두장이, 목수 등도 세 명이 모이면 현자 한 사람보다 낫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조건을 따지고 그것에 따라 신뢰와 대접을 달리하는 리더십이 아닌 ‘차별 없는 리더십’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좋은 리더의 기준은 수없이 많다. 열정 있는 리더, 소통하는 리더, 솔선수범의 리더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기준은 각자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다. 사실 직장에서 벌어지는 리더십은 우리가 알고 있고, 원하는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통의 리더십도 아닌 심지어 부하를 질투하고, 부하의 공을 가로채고, 개인과 조직의 이해를 같이하는 이기적인 리더들이 수없이 많다. 부하직원의 학벌, 고향, 재력 심지어 외모까지 평가하며 이미 머릿속으로 서열을 매기기도 한다. 어쩌면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는 ‘적과의 동침’일수도 있다. 그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필요한 것이다. 즉 이런 긴장관계의 지속은 긍정적인 면에서 개인과 조직이 그리고 상사와 부하직원이 서로에게 이해와 손해를 강요하는 조직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맹상군의 예에서 보듯 가장 좋은 리더는 ‘이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후배 직원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에 리더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더해지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힘인 것이다. 맹상군의 식객 중 한 명인 노중련이 맹상군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사람을 볼 때 단점보다 장점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 장점이 커지면서 단점이 작아 보이는 것이다. 장수에게 칼 대신 호미를 쥐어주는 자는 진정한 리더가 아니다.”
상사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직원이 최고의 인재가 될 수 있듯이 조건 없이 후배 직원의 능력을 받아들이고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2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리더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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