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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 건물주와 세입자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세로수길에 있는 한 빌딩을 미용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는 건물주와 세입자인 이자카야의 주인 차모 씨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 신사동=김문정 인턴기자 |
"권리금 생각하면 잠이 안 옵니다."
"권리금 없이 나가래요."
2008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가게를 운영해 온 강남 세로수길의 한 상점 주인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강제로 쫓겨나는 마당에 권리금까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리금은 계약시 건물주에게 내는 보증금과는 다른 개념으로, 임차인이 앞서 임대했던 사람의 영업 활동 가치를 인정하며 내는 관행상의 금전이다. 상가 건물에서 가게를 새로 얻을 경우 주변 상권의 발달 정도에 따라 부합한 금액을 이전 세입자에게 별도로 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가게를 운영했어도 영업 활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세입자가 나간 자리를 건물주가 사용하게 되는 경우다. 건물주가 바뀌거나 재건축을 하게 된 상황에도 세입자는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가게를 옮기게 될 수 있다.
세로수길의 상점 주인도 바로 이런 경우다. 세로수길 건물 1층에서 7년간 이자카야를 운영한 차모 씨는 권리금을 받아야만 한다는 입장이지만 같은 건물 2~6층에 자리한 미용 프랜차이즈 주인인 건물주는 권리금을 줄 이유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세입자와 건물주는 모두 한 지붕 아래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팩트>는 지난 23일 해당 건물을 직접 찾아 권리금을 둘러싼 세입자와 건물주의 입장 차이를 확인해 봤다. 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자리한 이 건물은 미용 프랜차이즈가 있는 만큼 밝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멋진 외벽을 자랑했다. 검은색 구조물로 꾸며진 차 씨의 이자카야는 한 눈에 봐도 미용 프랜차이즈와 다른 가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곳으로 들어가 차 씨를 먼저 만나봤다.
◆ 상권 발달 위해 노력했지만…'권리금 보장 되지 않는다니'
차 씨는 지난해 12월 건물주 대리인 이모 씨로부터 가게 명도(건물, 토지, 선박 따위를 남에게 주거나 맡김)를 요청 받았다. 이미 자꾸 밀리는 월세로 인해 이미 내용 증명을 받았던 상태였다. 차 씨는 융통해 월세 문제를 해결하며 계약을 유지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후 또다시 명도를 요청하는 내용 증명이 도착했고 지친 차 씨는 가게를 옮기기로 결정하고 권리금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에 가게를 내놨다. 차 씨는 "가게를 계약할 때 권리금 1억 원을 지급했다"며 "지금은 세로수길 상권이 더 나아졌기 때문에 권리금이 4억 원은 정도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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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씨, '권리금 생각하면 억울합니다'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세입자 차 씨는 권리금을 요구했지만 되려 인테리어를 원상복귀 시켜놓고 가게를 비워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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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씨의 계획은 야무진 꿈으로 끝났다. 지난달 차 씨의 가게를 찾은 대리인 이 씨가 1층에 건물주의 미용 프랜차이즈를 확장할 계획을 밝히며 그냥 나가달라고 한 것이다. 차 씨는 다음 임차인에게 받아야 할 권리금을 받지 못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아쉬운대로 가게 계약 당시 지불한 권리금이라도 돌려 달라고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권리금은 받은 적이 없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되려 입점 당시 수 억을 들여 공사했던 인테리어를 원상복귀 해놓고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
현재 차 씨의 가게가 있는 곳은 가로수길에서 두 블럭 정도 떨어진 골목길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며 다수 카페와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지만 차 씨가 입점을 하던 2008년 4월만 해도 주변에 사무실과 인쇄소만 있었을 정도로 상권이 열악했다. 차 씨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있는 가게는 여기 뿐이다"라며 "방송 출연을 하고 단골 손님을 형성하며 상권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는데 권리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고 억울한 마음을 토로했다.
차 씨의 상황을 설명하자 다른 상점 주인들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음식점 사장 A씨는 "가로수길에는 아무리 인기가 많은 매장이었어도 건물주가 바뀌면서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가게를 비우는 경우가 많다"고 상황을 설명한 뒤 "그 상황이 내 입장이 된다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가게들은 건물주와 관계를 걱정해 대답을 꺼려했다. 한 상점 주인 B씨는 "주변에서도 내 일이 아니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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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한숨, 권리금 못 받으면 어쩌죠? 차 씨의 가게 주변에 있는 상점 주인들은 '실제로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가게를 비우는 매장들이 더 있다'고 설명했다. |
세로수길 같은 골목에 있는 공인중개사들도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권리금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려했다. 차 씨의 상황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네요"라며 외면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솔직히 건물주와 세입자 모두 고객이라 말하기 조심스럽다"며 "안타깝긴 하지만 현재 법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문제라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 차 씨의 입장 고려해 재계약 이어왔는데 '오히려 섭섭'
미용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지금의 건물주는 2008년 5월 차 씨의 가게 건물을 매입했다. 차 씨의 이자카야가 개점한지 딱 두달만이었다.
건물주 대리인 이 씨는 "차 씨가 처음 가게를 계약했을 때는 전 건물주가 있었을 때다. 때문에 차 씨가 낸 권리금의 금액은 알지 못한다"며 "차 씨는 건물주보다 두달 먼저 입점했으면서 세로수길 상권을 자기가 살려다고 주장하더라"고 말해 권리금을 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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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씨가 작성한 확약서와 임대료 입금 내역 건물주 대리인 이 씨는 차 씨의 어려운 상황을 충분히 도의적으로 고려해 왔다고 주장하며 섭섭한 마음을 표현했다. / 건물주 대리인 이 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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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 씨는 차 씨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표현했다. 매입 당시 건물 전체를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가게 문을 연지 두달 밖에 되지 않은 차 씨를 당장 나가라고 할 수 없어 도의적 상황을 지켜줬다는 것이다. 이 씨는 "2~6층을 사용하던 세입자들은 모두 나갔다"며 "차 씨에게는 지금까지 재계약을 하며 가게 운영을 지속하게 해줬다"고 말했다.
이 씨의 말에 따르면 차 씨는 임대료를 두 달에서 다섯 달까지 수차례 연체했다. 때문에 재계약시 월세 연체에 대한 명도 조건을 2011년에 세 달에서 두 달, 2014년에 두 달에서 한 달로 바꾸게 됐다. 이 씨는 명도 조건이 한 달로 바뀐 뒤에도 차 씨의 월세가 밀리자 명도 요청 내용 증명을 보냈다. 이 씨는 "지난해 12월 9일 차 씨를 만나 가게를 비워줄 것을 요청했다. 사정이 딱해 기존 계약 기간이었던 다음 달인 4월 15일까지 4달 정도의 시간을 줬다"며 "그동안 월세가 밀려도 매년 재계약하며 장사를 하게 해줬다"고 섭섭한 마음을 표현했다.
◆ 법적 보호 장치 없는 권리금, 월세와 관계 없어…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의 고문 변호사 김영주 씨는 "밀린 월세와 권리금은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차 씨가 월세 연체를 반복한 것은 잘못이지만 같은 자리에서 오랜 기간 영업을 해온 가치를 인정하는 권리금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차 씨가 권리금을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건물주와 세입자의 관계 외에 그 어떤 상황에도 권리금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보호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즉, 권리금을 지급할 것을 주장하는 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김 변호사는 "권리금을 당연히 받는 것으로 아시는 상인들이 많다"라고 밝힌 뒤 "법적으로 보호가 안 되기 때문에 '임대인이 왜 권리금을 지급해야 하냐'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처음부터 5년 계약을 했는데 건물주가 중도 해지를 요구한다면 권리금을 지급해달라는 소송을 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임대인이 절대 5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게 해주겠다고 하지 않는다"라며 세입자들이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했다.
◆ 건물주 개입된 권리금 갈등, 세입자 고충 해결할 길 전무
권리금 때문에 갈등을 빚고 있는 건물주와 세입자가 차 씨와 이 씨뿐만은 아니다. 강남에 있는 카페 C와 가로수길에 있는 음식점 D의 사장들도 계약 기간과 권리금 문제로 건물주와 다투고 있다.
카페 C의 엄모 사장은 입점한지 2년 만에 재건축 문제로 가게를 비워줘야 할 상황에 처했다. 초기 투자금을 생각하면 2년 만에 가게를 옮기는 것에 손해가 따랐던 상황이다. 현재 엄 씨는 가게 자리를 지키며 강제 집행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는 "(같은 이유로)피해를 본 상인들이 많다. 상인들이 건물주에게 권리금을 보장받지 못한채 피해를 입는 사례는 재건축으로 인한 것이 60%, 임대료 폭탄 등의 이유가 40%다"라며 "열심히 장사한 죄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재건축을 한다거나 바뀐 건물주의 의사를 이유로 하루 아침에 권리금 없이 나가라고 하는 것은 억울한 처사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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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C 강제 집행 현장 강남역에 있는 카페 C의 사장 엄모 씨는 건물주의 재건축 계획으로 입점 2년만에 가게를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억울한 마음을 호소하며 강제 집행에 맞서고 있다. / 노동당강남서초당협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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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D의 서모 사장은 계약 기간 도중 바뀐 건물주에 의해 가게를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서 씨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같은 자리에서 오랫동안 있는 것을 원한다. 단골 손님도 확보할 수 있기도 하고 초기 투자금과 대출금을 생각하면 (계약을 지속하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 씨는 현재 가게 자리를 유지하는 것을 가장 원하고 있다.
서 씨는 "건물주들 가운데 세입자를 내보내고 권리금을 자신이 챙기는 경우가 있다. 남이 일궈놓은 소중한 것을 빼앗는 행위는 분명 범죄이지만 대한민국 법에는 전혀 걸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건물주들도 문제 의식이 전혀 없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같은 세입자들이 아무리 그동안 만들어 놓은 땀의 가치나 생존권을 이야기해봤자 그 사람들에게는 생떼로 보이는 것이 안타깝다"고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부동산 투자는 '부동산(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때'를 사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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