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집주인은 없다
"착한 집주인 만난 사람들은 망했다."
집값이 계속 오르던 시기 이런 우스개소리가 술자리 안주에 오른 적이 있다. 집주인이 착한데 왜 망했다는걸까.
임대기간이 끝날 때 전세나 월세를 무리하게 올려달라고 하지 않는 착한 집주인을 만난 세입자는 집을 사야겠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반대로 억소리나게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나쁜(?)' 집주인을 만난 세입자는 '차라리 내 집을 사고 만다'며 무리해서라도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는게 골자다.
극단적인 경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세금 올려주는게 힘들어서 집을 샀는데 지금은 집값이 얼마 올랐다는 사람들, 주변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나 역시 착한 집주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집을 사는 시점이 더 빨랐을지도 모르겠다.
세입자들이 '착한 집주인'을 기대하기 힘든 시대로 가고 있다. 아직 전세시장을 얘기할 타이밍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이슈는 '수용성'(수원·용인·성남)으로 대표되는 풍선효과다. 정부가 20일 19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기로 했지만 20번째, 21번째 대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원상회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집값이 지난 1~2년의 상승세를 지속하기는 어려운 시기로 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집값 상승세가 둔화되면 다가올 이슈가 전세 문제다. 집값 상승의 기대감이 잦아들면 구입 수요는 떨어지고 일단은 빌려서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미 집값 상승세가 한풀 꺾인 서울 전세시장은 이런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2월10일 기준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158.1을 기록했다. 0~200 범위인 전세수급지수는 100을 초과할수록 '공급 부족'이 심하다는 의미다. 불과 1년 전 85.5였던 이 수치는 최근 매주 높아져가고 있다.
전세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은 집주인이 우위에 섰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나쁜 집주인을 만나 집 산 사람들처럼 소위 '질러버리기'도 어렵다. 청약 당첨은 하늘의 별따기고, 대출 규제는 몇년전과 비교할수도 없을만큼 촘촘해졌다.
집주인은 집 빌려달라는 사람이 많으니 굳이 착할 이유가 없다. 전세금을 올려도 되고, 반전세나 월세로 돌려 늘어난 보유세 부담을 전가할 수도 있다. 게다가 저금리 시대다. 저금리는 전세의 월세 전환을 촉진하는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권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채무자의 보호'였다. 대출이 부실화됐을 때 빌려쓴 사람들만 무한책임을 지는게 아니라 빌려준 사람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최고금리를 낮췄고 소액장기연체채권 소각, 개인채무조정 제도 개선 등이 이뤄진 것은 이런 취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돈 빌린 사람들처럼 집 빌린 사람들에 대한 보호도 좀 더 두텁게 해야 할 시점이 됐다. 전세값 오른다고 전세대출 늘려주고 월세 부담 크다고 소득공제해주는 대책으론 임대차 시장을 바꿀 수 없다.
국회에는 이미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등을 담은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20대 국회가 시작한 2016년부터 많은 법안들이 제출됐지만 아직까지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지 못했다.
물론 임차인에 대한 보호 강화가 불러올 수 있는 부작용을 모르지 않는다. 실제 과거 임대차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을 때 전세값이 급등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세값이 안정돼 있을때 제도를 개선해야지 집주인이 우위에 서 있는 지금은 오히려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빌려 쓰는 사람들의 주거 안정을 착한 집주인, 착한 건물주에 맡겨 놓을 수는 없다. 일련의 부동산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는 집값 상승률을 꺾는데만 있지 않다. 결국은 '주거 안정'이 목표다.
김진형 건설부동산부장 / 사진=인트라넷 |
김진형 건설부동산부장 jh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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