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첨되려 이혼까지.." 수능보다 어려운 주택청약[MT리포트]"
[편집자주] 지난해 7번, 올해 4번. 주택청약제도가 손질된 횟수다. 40년간 부동산 경기와 주택 수급 상황에 따라 규제와 완화를 오가다보니 복잡하기가 대입시험 못지 않다. 제도가 자주 바뀌어 무주택 실수요자의 혼란은 가중됐지만, 투기세력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바뀐 청약제도와 시장 파장을 들여다봤다.
무주택자의 당첨 기회를 대폭 넓히는 새로운 주택청약제도가 지난 11일 도입됐다. 투기과열지구 추첨제 공급물량의 75% 이상을 무주택자에게 공급, ‘주택 분배의 정의’를 높이자는 취지지만 청약대기자들의 혼란이 가중된다.
1978년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마련된 이래 139번이나 손질되다 보니 전문가들도 세부 내용을 헷갈려 한다. 부적격자가 당첨돼 미계약하면서 선의의 피해자도 늘고 있다.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1순위 청약 마감한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라클라스’는 210가구 모집에 5028명이 신청(평균 경쟁률 23.94대 1)했으나 청약 미계약분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분양한 삼성물산 ‘래미안 리더스원’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예측이다.
서울 강남권 최대 분양단지로 꼽힌 ‘래미안 리더스원’은 232가구 모집에 1순위 9761명이 몰려 평균 41.69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고도 26가구가 미계약분으로 나왔다. 일반분양분의 10%에 달하는 물량이다.
청약부적격자 상당수는 무주택기간이나 부양가족 가점 입력 등 계산 실수로 부적격 처리된 경우다. 세대주 여부를 잘못 기입하거나 재당첨 제한기간을 모르고 청약한 이도 적지 않다.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430만명(10월말 기준)이 청약통장을 보유한 ‘청약대기자’지만 정작 청약 시 세부자격은 철저히 본인 스스로 검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건설사들은 대규모 부적격 당첨자가 발생하는 이유로 청약신청을 하는 금융결제원 아파트투유 사이트의 허술한 시스템을 지목한다. 가점제의 기준이 되는 무주택기간, 부양가족수, 청약통장 가입기간 모두 청약신청자가 입력한 대로 점수가 산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청약정보는 금융결제원, 주택정보는 국토교통부, 주민정보는 행정안전부가 각각 보유해 연계되지 않는다. 당첨된 후 특별공급자격 및 가점을 입증할 서류 제출 시점이 돼서야 주택공급자(건설사)가 제출된 서류와 청약자가 기입한 정보를 대조해 사후검증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소득 및 자산기준, 주택 수, 세대주 및 과거 5년 내 재당첨 여부, 분양권·입주권 보유 여부 등 스스로 가려내야 할 청약기준(hurdle)이 많아 실수가 빈번하다”며 “분양시장에 줄 선 다양한 세대의 실수요자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청약시스템을 개선하고 선의의 피해자를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부적격 당첨자는 당첨이 취소될 뿐 아니라 1년간 청약이 제한된다. 실수요자 입장에선 악의 없이 실수로 청약요건을 잘못 입력했을 때 감당하는 기회비용이 크다.
정부도 이를 의식해 주택청약 업무를 감정원으로 이관, 청약시스템 개편을 추진 중이나 금융결제원의 반발이 거세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개편된 청약제도에 따른 혼선을 줄이기 위해선 청약시스템 개편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청약수요자 입장에선 감정원이나 금융결제원 중 누가 맡아도 무관한 밥그릇 싸움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김희정 기자
#지난 5월 공급된 경기 하남시 ‘포웰시티’의 청약 당첨자 A씨는 청약 당첨을 위한 위장이혼 의혹으로 국토교통부에 적발됐다. B씨와 1988년 결혼해 2013년 이혼한 뒤 2014년 다시 B씨와 결혼했다가 2017년 이혼하는 등 결혼을 반복한 것이 당첨확률을 높이려는 행위로 봤다. 집을 배우자 명의로 해놓고 이혼하면 무주택자가 돼 당첨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2015년 10월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청약통장을 대거 매입해 위장전입, 위장결혼 등의 방식으로 가점이 높은 청약통장을 만들어 유통한 브로커 3명을 검거했다. 이들이 만든 청약통장은 위례, 내곡 등 인기지역 아파트 청약에 사용됐고 당첨된 분양권은 떴다방 등 불법전매업자들에게 수억 원의 웃돈이 붙어 팔렸다.
정부가 지난 40년간 청약제도를 139번이나 손질했음에도 불법·편법청약은 끊이지 않는다. 실수요자의 당첨확률을 높이고 투기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가 계속됐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언제나 생겼다. 제도 문제가 아니라 불법을 잡아낼 단속체계가 없는 탓이다. 하지만 정부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제도부터 뜯어고쳤고 실수요자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지난 11일부터 시행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도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집 마련을 돕고 투기 수요를 최대한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다.
주택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당첨될 수 있던 추첨제 물량은 투기과열지구, 수도권 등에선 75%가 무주택자에게 우선 배정된다. 1주택자가 공급받으려면 기존 주택을 새 아파트 입주 후 6개월 이내에 팔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하고 지키지 않으면 당첨이 취소된다.
분양권·입주권 소유자는 무주택 자격에서 배제했고 유주택자인 신혼부부도 특별공급대상이 되지 못한다. 주택을 소유한 직계존속(부모)은 가점 산정 시 부양가족 점수에서 제외해 ‘금수저 청약’을 차단했다.
이같은 조치에도 투기수요의 청약시장 유입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당첨만 되면 수억 원의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는 ‘로또장’이 계속되는 한 불법·편법을 이용한 투기세력의 당첨사태를 막기는 역부족이란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법을 아무리 바꿔도 당첨만 되면 수억 원을 버는데 불법·편법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단속도 잘 안되고 걸려도 처벌이 약해 불법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국토부 등에 따르면 현재 불법청약을 적발하는 유일한 방법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확인하는 수밖엔 없다.
불법청약 중 가장 많은 것이 위장전입인데 이를 걸러내기 위해 주택공급자는 청약자가 실제 사는 곳을 확인하거나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청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인력과 시간 부족 등으로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정부 역시 청약 과열 현상이 나타날 때만 단속에 나선다. 국토부는 올 초 서울에서 청약 과열이 나타나자 ‘디에이치자이 개포’ ‘과천 위버필드’ ‘하남 포웰시티’ 등 6개 단지를 점검해 226건의 불법행위 의심사례를 적발했다. 하지만 지난 7월 하남 포웰시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점검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해 모든 현장을 단속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자동으로 불법청약을 잡아내는 시스템을 구현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결국 불법청약을 막기 위해선 단속 인력을 확충하고 정부가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심 교수는 “불법청약 적발 시 3~10년간 청약당첨 금지가 대부분”이라며 “처벌 수위를 높여야 투기수요가 차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사무엘 기자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분양한 ‘e편한세상남산’은 올해 분양한 아파트단지 중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191가구 모집에 6만6184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이 347대1에 달했다. 대전 서구 둔산동 ‘e편한세상둔산’(321대1), 대구 중구 ‘남산롯데캐슬센트럴스카이’(284대1), 대전 서구 ‘갑천트리풀시티’(264대1) 등이 뒤를 따랐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청약조정대상지역 등에 속하지 않은 ‘비규제지역’이면서 그간 신규 입주가 드물던 곳이다. 분양권 전매제한기간도 짧고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도 아니다.
하지만 충청, 강원, 제주 등에선 미분양이 속출했다. 지방 소도시 분양단지는 가구 수가 적고 입지여건도 열악해 가격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 수도권에서도 연천군, 평택시, 이천시, 가평군 등 외곽지역은 청약 실적이 저조했다.
서울 평균 청약경쟁률은 29대1로 전국 평균치(16대1)를 웃돌았고 98대1을 기록한 ‘노원꿈에그린’이 가장 높았다. ‘당산센트럴아이파크’(80대1) ‘신길파크자이’(79대1) ‘힐스테이트 녹번역’(59대1) 등의 순이다.
서울에선 강북권이 약진했다. 올해 강북 등 비강남권 평균 청약경쟁률은 지난달말 기준 30대1로 강남·서초·송파 강남3구(26대1)보다 높다. 2010년 관련 통계 작성 후 처음 있는 일이다. 통상 강남3구 청약경쟁률이 비강남권보다 2~3배 높은 만큼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는 대출규제 강화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분양가가 9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의 중도금 대출을 막았다. 일부 단지는 계약금 비중을 10%에서 20%로 상향했다. 강남권 단지 청약 시는 최소 10억원가량의 현금을 보유해야 해 여윳돈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이 강북권으로 눈을 돌렸다.
당분간 청약시장은 올해와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비규제지역에선 입지가 좋은 단지 위주로 경쟁이 치열하고 규제지역에선 과천, 성남, 하남 등 강남권 접근성이 좋은 지역이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금력을 갖춘 서울 수요자는 강남권으로, 대출의존도가 높은 수요자는 비강남권으로 청약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최근 무주택자 위주로 청약제도가 개편돼 경쟁률은 올해보다 하락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유엄식 기자
#1977년 3월. 서울 여의도 ‘목화아파트’ 견본주택은 분양권을 쓸어담으려는 수요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현금 2억원을 동원, 100가구 계약을 신청한 것을 비롯해 여러 채 신청이 부지기수였다. 결국 2채 이상 계약한 수요자가 11명 나왔다. 청약제도가 없던 당시는 ‘공개 추첨’으로 분양 계약자가 선정됐다. 분양권 전매제한도 없어 투기세력이 활개를 치기 쉬웠다.
청약제도는 아파트 건설붐이 일던 40여년 전 서민 실수요자들의 주거안정과 건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도입됐다. 박정희정부 시절인 1977년 8월 건설교통부가 공공주택부문 청약과 관련한 ‘국민주택 우선 공급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
한 달에 한 번 6회 이상 총 50만원 이상을 납입하는 ‘국민주택 청약부금’ 가입 무주택 세대주에게 1순위 청약 요건이 주어졌다.
1978년엔 공공주택과 민영주택을 아울러 청약기준을 명시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마련됐다. 청약관련 통장을 ‘1가구당 1계좌’를 원칙으로 개설하며 일정 기간 정해진 액수를 납부하면 1순위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전두환정부 시절인 1981년엔 국민주택기금을 받아 짓는 주택에 한해 공급받는 날로부터 2년까지 분양권 전매가 제한되는 조치가 실시됐다. 노태우정부 시절인 1992년엔 민영주택까지 전매제한 대상이 확대됐다.
1999년 김대중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주택 매입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분양권 전매를 허용했다. 하지만 수도권 주택시장에 투기 수요가 유입되면서 정책은 다시 강화 기조로 전환됐다. 노무현정부 시기인 2002년 9월 전매제한제도가 부활했다.
2007년엔 무주택기간, 부양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기간을 점수로 환산, 분양주택 당첨자를 가리는 ‘청약가점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주택시장 위축 우려가 제기되자 정부는 주택수요 촉진을 위해 다시 청약규제를 손질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공공 민영주택 모두 청약 가능한 ‘청약종합저축’이 출시됐고 무주택 세대주 여부나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1명당 1계좌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4년엔 청약가점제가 개편되며 수도권에서 1순위 자격이 기존 청약통장 가입 후 2년에서 1년으로 완화됐다. 문재인정부 들어 해당 기간이 원상 복구됐고 투기과열지구 물량에 대한 무주택자 배정분(추첨제 기준)이 느는 등 청약규제는 강화됐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유엄식 기자 usyoo@,
김지훈 기자 lhsh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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