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아파트서 월 200만원 받는 방법
“작은 집이 필요하다고 무조건 새 아파트를 계속 지을 수는 없지요. 땅도, 재원도 부족합니다. 어르신들만 사는 대형 아파트를 둘로 나눠 일부는 젊은 층에게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박상우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서민을 위한 소형 아파트만 주로 지어 공급하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최근 50~60평이 넘는 초대형 아파트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주택 시장에서 ‘애물단지’가 된 대형 아파트를 둘로 쪼개 청년 임대 주택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LH는 공공주택기획처 신주택기획부에서 올 들어 ‘한지붕 두가족’ 사업을 시작했다. 대형 아파트에 ‘세대구분 공사’를 해 임대용 주택을 LH에 장기 임대하고, LH가 이를 다시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박 사장은 “10~20년 전에 지은 수도권 대형 아파트는 입지도 좋고, 품질도 나쁘지 않다”며 “세대구분 사업이 확산하면 어르신에게는 새로운 월세 수입을, 젊은 층에게는 양질의 임대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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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하는 세대구분…LH “있는 집 활용해 임대”
지난해 7월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기존 공동주택 세대구분 사업에 공공 기관들도 뛰어들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기존 아파트 세대구분 사업이란 이미 지어진 대형 아파트를 둘로 나눠 중소형 아파트 2채로 만드는 사업을 말한다. 아파트 내부에 경량 벽체와 독립 출입구, 주방 등을 설치해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한다.
세대구분 사업에 가장 의욕을 보이는 곳은 LH다. LH는 대형 아파트가 몰려 있는 경기도 용인, 김포 등지에서 세대구분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세대구분 공사는 주택 소유자가 개별적으로 진행하고, LH는 집 소유자로부터 주택 일부를 장기 임대 방식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재구 LH 신주택기획부 차장은 “대형 아파트는 대부분 노년층이 보유하고 있는데 이런 주택을 활용하면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임대주택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규제 완화…“5억 아파트에서 월 200만원 나온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이하 주금공)는 주택연금과 세대구분 사업을 연계해 노년층 수입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지금까지는 주택에 소액이라도 보증금이 있으면 주택연금 가입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소액 보증금을 받고 월세를 놓은 세대구분 아파트도 주택연금 가입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금융위원회와 주금공은 “내년 중 법을 개정해 근저당이 일부 설정돼 있는 세대구분 주택도 주택연금 가입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주택연금과 세대구분 아파트가 결합하면 노년층의 노후 수익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주금공에 따르면 65세에 5억원짜리 아파트를 보유한 가구가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매월 125만원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경기도 용인 상현동(금호 2·4차, 쌍용2차 등)을 기준으로 5억원짜리 아파트를 세대구분 하면 월세 70만~80만원에 관리비를 5만~10만원 정도 별도로 받는다. 주금공 관계자는 “주택연금과 세대구분 아파트가 결합하면 5억원짜리 집만 있으면 노년에 별다른 직업이 없어도 월 200만원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금공은 ‘세대구분형 공동주택 개량자금 보증 상품’도 출시했다. 이 보증상품을 이용하면 세대구분 공사 때 집을 담보로 잡히지 않고도 공사 부족 자금을 저리(低利)에 대출 받을 수 있다.
세대구분 사업의 주무 부처인 국토부도 세대구분 관련 규제 완화에 적극적이다. 세대구분 사업 취지는 좋지만 아직 초기여서 관련 법이 정비되지 않았다. 건축법과 공동주택관리법, 소방법 등의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다. 민홍철 의원(더불어민주당·김해갑)은 올 1월과 6월 세대구분 사업의 주민동의 요건과 인허가 요건을 완하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유리 국토부 주택건설공급과장은 “아파트 안전이 확보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규제를 풀어 세대구분 사업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대구분이 대형 아파트 해법될 수도
정부와 공기업이 세대구분 사업에 적극 나서는데는 주택시장 상황도 무관치 않다. 1990년대 이후 주택시장에는 “큰 아파트가 집값도 많이 오른다”는 인식이 퍼졌고, 건설사들은 전국적으로 대형 아파트를 무더기로 분양했다. 그 결과 지은 지 10년 이상된 40평 이상 대형 아파트가 300만 채 정도 된다. 하지만 1~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대형 아파트는 찾는 사람이 없어 ‘폭락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최근 10년 사이 20평(공급면적 기준, 66㎡) 이하 아파트는 46% 가격이 올랐지만, 50평(198㎡) 이상 대형은 반대로 4.5% 떨어졌다. 같은 기준으로 경기도는 소형이 37.1% 오를 때, 대형은 38.2% 내렸다. 대형 아파트는 보통 노년층이 보유한 경우가 많은데, 이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대형 아파트는 집값 상승기에는 ‘찔끔’ 오르고, 내릴 때는 큰 폭으로 내리는 경향이 강하다”며 “최근 1~2년 사이 대형 아파트 소유자들이 ‘집값이 올랐다’고 말하지만 실제 소형 아파트 상승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1990년 이후 지은 대형 아파트는 대부분 용적률이 200%를 넘어 재건축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세대구분 사업이 제도적 뒷받침만 되면 다양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본다. 하지만 대형 아파트 보유자들이 대부분 노년층이어서 경제적 활동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현실적인 한계로 지적된다. 집값이 떨어진 것에 대한 불만은 많지만 이들이 살던 집을 손절매하거나, 수천만원을 투자해 세대구분 사업을 스스로 진행하기 쉽지 않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세대구분 사업이 활성화하려면 정부와 공공기관이 최대한 규제를 정비하고 각종 인센티브 등을 제공해 개별 가구의 사업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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