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괴롭히느냐" 호통..바위가 쩍 갈라졌다
명장 신립 장군 전설 깃든 문화재
경기도자박물관·산수유마을 가볼 만
[한겨레]
곤지암 하면 먼저 이런 것들이 떠오를지 모르겠다. 곤지암소머리국밥, 곤지암리조트,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나들목, 그리고 골프장들…. 곤지암은 경기도 광주시의 행정구역명(곤지암읍)이자, 바위 이름이다. 곤지암읍은 본디 실촌읍이었다. ‘곤지암’이란 명칭이 널리 알려지자 2011년 읍 이름을 바꿨다. 최근엔 경강선 곤지암역이 생겼고, 이번에 <곤지암> 영화도 개봉한다. 대관절 곤지암이 어떤 바위이기에 이런저런 명칭에 쓰이며 입길에 오르내리고, 대대로 써온 지명까지 바꿔버리게 한 걸까. 곤지암에 대해 알아보고 주변 볼거리들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 천진암은 잘 알아도 곤지암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곤지암(昆池岩)은 곤지암읍 내에 있는 바위 이름이다. 곤지암초등학교 옆 오토바이 수리점 앞 비좁은 터에, 주민들이 곤지바위라 부르는 곤지암(경기도문화재자료 제63호)이 있다.
연못 터에 윗도리만 남은 바위 2개
2개의 작은 화강암으로, 앞쪽 바위는 높이 2m에 너비 4m, 뒤쪽 바위는 높이 3.6m, 너비 5.9m 규모다. 뒤쪽 바위가 이채롭다. 바위를 가르고 자라 오른 커다란 향나무 한 그루가 솟아 있다. 나이 400살이 넘었다는 굵직한 향나무다. 바위가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틈이 크게 벌어진 모습인데,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쇠받침대를 받쳐놓았다.
“원래 곤지바위는 아랫도리가 훨씬 더 커요. 앞에는 연못이 있었고. 근데 주변 땅을 메워서 다 망가졌지.” 40년간 곤지바위를 지켜봤다는 바위 옆 문구점 주인의 말이다.
‘볼품없어진’ 작은 바위지만, 여기에 깃든 얘기가 많다. 곤지암은 곤지(昆池)라는 연못가에 자리한 바위를 일컫는 이름이다. 산 쪽에서 흘러온 물길과 이어진 연못이었는데, 1970년대에 주변이 복개되면서 연못도 메워지고 바위 아랫부분도 묻혔다고 한다. 연못 자리엔 지금 4층짜리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다.
곤지바위 마주한 산자락엔 신립 장군 묘
곤지바위는 옛날엔 2개가 아닌 커다란 하나의 바위였다. 고양이를 닮아 ‘묘바위’로도 불렀다고 한다. 바위가 2개로 나뉘게 된 데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명장 신립 장군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병사 8000명을 이끌고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장군은 왜군 2만명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으나 끝내 대패하자, 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신을 거둬 현재 자리에 장사를 지냈는데, 그 뒤로 이상한 일이 생겼다. 묘소 앞 물길 건너 고양이를 닮은 바위(곤지암) 앞으로 말을 타고 지나는 이들은 말발굽이 땅에 붙어 내려서 끌고 가야 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잦자 어떤 장수가 묘를 찾아가 “왜 행인을 괴롭히느냐”고 호통치며 핀잔을 주자 뇌성벽력이 치며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 뒤로는 말을 타고 지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신립 장군 후손 집안에 전해오는 얘기는 좀 다르다. 산소 자리가 ‘쥐 형세’인데 건너편에 고양이바위가 있어 좋지 않다는 지관의 말에 따라 서울 근처로 상여를 메고 가던 중 밤에 폭우가 쏟아지며 벼락이 쳐 바위가 갈라졌고, 이에 발길을 돌려 현재 위치에 장사 지냈다는 이야기다.(<광주문화> 제25호 참조)
바위 쪼개졌어도 향나무는 푸르고
어찌 됐든 현재의 곤지바위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초라한 모습이다. 수많은 시설 이름에 쓰이고, 행정구역 이름까지 바꾸게 만든 바위치고는 터도, 주변 미관도 옹색하고 어지럽기 짝이 없다. 비좁은 터 앞에는 차량이 두세 대 세워져 있고, 뒤쪽엔 오토바이들이 빼곡하다. 문화재로 지정된 바위 2개를 겨우 감싸는 경계석과 난간이 설치돼 있을 뿐이다. 바위에 바짝 붙여 세운 문화재 안내판은 앞쪽 바위를 가리고 있다.
그래도 기꺼운 것은 바위 틈에 뿌리내린 향나무의 줄기가 곧고, 잎이 푸르고 싱싱하다는 점이다. 곤지암읍 주민들이 곧고 푸른 향나무를 보고 신립 장군의 기개를 떠올리는 건 당연해 보인다. 향나무 밑 바위 주변 땅에는 어린 향나무도 여럿 자라고 있다.
신립 장군 묘는 곤지암천 물길 건너 산기슭에 있다. 차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 오르면 된다. 세 기의 묘 중 맨 위쪽이 신립 장군의 묘다. 문인석·동자석 등 석물들이 볼만하고, 전망도 괜찮다.
조선 왕실 도자기 역사가 한자리에
곤지암읍 내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경기도자박물관이다. 광주는 조선시대 왕실용 도자기를 생산해온 관요의 고장이다. 왕실 도자기를 생산하고 관리하던 사옹원의 분원이 설치됐던 곳으로, 곤지암읍 등 광주시 전역에서 300여개의 가마 터가 발견됐다.
도자박물관 1, 2층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도자기의 역사, 도기와 자기, 청자와 백자 등 도자기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풀 수 있다.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도자기로 보는 우리 역사’전이, 1층 기획전시실에선 ‘광주 백자: 발굴로 다시 쓰는 분원 이야기’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실을 다 돌면 조각공원으로 나서게 된다. 박물관은 숲길 사이로 대형 조각 작품, 도자기 작품들을 설치한 곤지암도자공원이 둘러싸고 있어 작품들을 감상하며 산책해볼 만하다.
도예·공예 작가들이 입주해 창작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전통공예원도 있고, 일반인들이 도자기 역사를 배우며 토기화분·와당목걸이·머그컵 등 직접 도자기류를 만들어볼 수 있는 교육체험교실도 운영된다. 체험비 8000~1만5000원.
이밖에 곤지암읍에 특별한 볼거리는 없지만, 열미리마을에는 액운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쌓은 오래된 마을 돌탑(돌무더기)이 있어 관심이 있다면 찾아볼 만하다. 동래 정씨 집성 마을인 상열미리 논가에 수백년 전에 쌓았다는 마을 비보탑이 남아 있다. 바닥 너비가 10m쯤 되는 장방형 계단식 돌무더기다. 이 마을에서 14대째 이어 살고 있다는 정상직(78)씨는 “뒷산이 용머리 형세인데, 용이 물을 마실 수 있게 논을 만들고 거기 돌탑을 쌓아야 마을이 잘된다 해서, 최소한 내 고조할머니 그 윗대에 쌓은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에선 요즘도 사월 초파일이면 이 돌탑에 술을 올리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도축장직판장 뒤 곤지암천 건너 절벽에는 조선 중기 문인 송시열 행적이 전해오는 정자 백인대가 있으나, 접근로가 마땅치 않다.
곤지암읍 인접 백사면엔 노란 산수유꽃 물결
곤지암읍 동남쪽은 산수유마을로 이름난 이천시 백사면과 경계를 이룬다. 곤지암읍에서 차로 20분 거리, 원적산 남쪽 자락에 봄마다 백사산수유꽃축제를 벌이는 도립리가 있다.
올봄 축제 기간은 4월6~8일(금~일요일)이지만, 이미 일부 나무들은 노란 산수유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산수유꽃 감상하며 산수유마을 둘레길을 걸어봐도 좋다. 둘레길 초입에는,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를 피해 은둔한 엄용순 등 여섯 선비가 우의를 다지며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 세웠다는 정자 육괴정이 있다. 600년 됐다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남아 있다.
수령 500년의 ‘도립리 반룡송’(천연기념물)과 수령 200여년의 ‘이천 백송’(천연기념물·신대리)도 볼거리다.
반룡송(蟠龍松)이란, 하늘에 오르기 전 땅에 살고 있는 용을 닮은 소나무라는 뜻이다. 키는 4~5m에 불과한데, 휘고 비틀리고 배배 꼬이며 굽이쳐 나간 나뭇가지들이 기이하다. 나무를 어떻게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곤지암읍 여행 팁]
△ 경강선 전철/신분당선 판교역에서 여주행 경강선 전철이 20분 안팎 간격으로 운행된다. 곤지암역까지는 21분 걸린다. 요금 1550원. 곤지암역에서 300번 버스를 타면 곤지바위가 있는 읍내를 거쳐 경기도자박물관까지 갈 수 있다.
△ 먹을 곳/곤지암읍내에 최미자소머리국밥(2곳), 골목집소머리국밥, 배연정소머리국밥(2곳), 동서소머리국밥 등 소머리국밥을 내는 식당이 여러 곳 있다.
△ 여행 문의/광주시청 문화관광과 (031)760-2723, 경기도자박물관 (031)799-1500, 광주문화원 (031)764-0686.
곤지암
행정구역상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에 해당하는 지역이지만, 일반적으로 중부고속도 곤지암 나들목 일대를 칭함. 조선 중기 무신 신립의 묘 인근에 있는 큰 바위 곤지암(昆池岩)에서 이름을 따옴. 최근 곤지암 정신병원 괴담을 소재로 한 영화 <곤지암>의 개봉을 앞두고 ‘실검’(실시간검색어) 1위를 기록함.
광주 이천/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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