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등산 자료☆★★/★☆ 등산 여행☆

지리산 천왕봉 일출과 운해, 표현할 생각마라[더,오래]

 지리산 천왕봉 일출과 운해, 표현할 생각마라[더,오래]


하만윤의 산 100배 즐기기

버킷 리스트에 담은 중산~음정 26km 지리산 종주

하산길, 주능선 경치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며 걸어

일출, 운해, 그리고…

자연의 경이로움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중앙일보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중에 만난 일출. 행운이다. [사진 하만윤]



이번 산행은 지난 9월 중순에 다녀온 노고단~반야봉~뱀사골~반선으로 내려온 코스와 연결해 지리산 주능선 종주 코스를 완성하는 연계 산행이다. 중산리에서 시작해 천왕봉~장터목~제석봉~연하봉~촛대봉~세석~벽소령~음정으로 하산하는, 26km에 달하는 거리다. 여기에 화엄사와 대원사를 이으면 화대종주를 완성하게 된다.

이번 산행길은 지리산 10경 중 천왕봉 일출, 연하봉 선경, 세석평전 철쭉, 벽소령 달빛 등을 접할 수 있다. 오른다고 어느 때고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아닐 테고, 운 좋게 설령 본다고 하더라도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절경일 터. 그러니 때때마다 직접 찾아가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을 수 있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다행히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 않은가. 필자의 버킷리스트에 언제 어느 때고 지리산 종주를 담아놓는 이유다.

금요일 밤, 일행은 서울 잠실역에 모여 예약한 버스를 타고 지리산 중산리탐방센터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잠깐 들른 휴게소에서 바라본 하늘이 맑아 별들이 제법 보였다. 이번에 접할 지리산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올까, 기분 좋은 상상이 절로 이어진다.   

다름을 아는 산


지리산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다. 지리(智異)는 다름을 아는 것, 차이를 아는 것, 그리고 다름과 차이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혹자는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나와 다름을 틀렸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편협함에 갇히기 쉬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곱씹어봐야 할 덕목이 아닐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중앙일보

중산리탐방센터를 지나 얼마 후면 만나게 되는 통천길. 여기서부터 3시간 남짓 오르면 천왕봉에 다다른다. [사진 하만윤]



중산리탐방센터에 예정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으나 아직은 새벽어둠이 짙다. 지난 9월에 비하면 오히려 날씨가 푹하다. 주차장에 내려 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중산리탐방센터를 지나고 조금 더 오르면 통천길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천왕봉에 다다르는 두세 시간 동안 내내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중앙일보

정상에 오르기 전에 만난 일출. 자연이 주는 감동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사진 하만윤]


로터리대피소와 법계사를 지나 부지런히 오르는 중에 해가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정상에서 만난 일출은 아니었으되, 어디든 어떠랴. 솜털같이 깔린 구름 사이로 기어이 빛을 내뿜어 세상을 밝히는 풍경에 일행들 모두 넋을 놓는다. 자연이 주는 감동은 결코 야박하지 않음이다.

중앙일보

개선문을 지나 정상을 목전에 둔 마지막 고객. 저 멀리 겹겹이 놓인 구름이 꿈처럼 아련하다. [사진 산처럼]



마음 저 내밀한 곳에 일출의 감동을 쟁여놓고 일행은 다시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개선문을 지나 마지막 고개를 오르면 정말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그렇다고 멈출 순 없다. 고개 넘어 정상이 보이기에 한 걸음 한 걸음, 마치 바닥을 다지듯이 발걸음들을 뗀다

중앙일보

지리산 정상석. [사진 하만윤]


마침내 정상이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문구를 새긴 정상석이 일행을 반긴다. 제1호 국립공원으로 수많은 등산객이 다녀간 이곳에 나도 서고 우리도 섰다. 산은 언제나 힘들게 오른 수고로움을 그 끝에서 멋진 풍경으로 보상해준다더니 오늘이 그런 날인가 싶다. 겹겹이 쌓이고 쌓여 그 속을 알 수 없고 꿈인가 생시인가 싶은 천왕봉 운해가 눈앞에 펼친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겸손히 두 손 모으고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중앙일보

아련한 꿈인 듯 그저 바라본 천왕봉 운해. [사진 하만윤]



자연이 주는 감동에 넋을 놓다가 전체 일정에 차질을 빚을까 마음이 급해진다. 천왕봉에서 통천문을 지나 부지런히 걸어 40여 분만에 장터목 대피소에 도달한다. 천왕봉 남쪽 산청군 시천마을 주민과 북쪽 함양군 마천마을 주민들이 해마다 봄가을 장을 열어 물품을 교환했던 곳이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길 없으니, 옛사람들의 삶의 수고로움을 가늠해 볼 따름이다.

먼저 도착한 선두 일행은 라면을 끓이고 삼겹살을 구워 후미 일행을 기다린다. 새벽부터 시작한 산행의 허기를 달래야 남은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으리라. 

중앙일보

삼겹살과 라면. 장터목대비소에서 먹는 별미 중 별미다. [사진 산처럼]



늦은 아침을 해결하고 목적지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선다. 주능선을 따라 왼쪽과 오른쪽 지역 날씨가 하늘과 땅 차이다. 한쪽은 운무가 가득하고 한쪽은 푸른 하늘이 맑게 펼치니 신기하고도 재밌다. 산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의 해학일 게다.

중앙일보

주능선의 왼쪽 산청군은 흐림, 오른쪽 함양군은 맑음. [사진 하만윤]



이제부터는 지리산 주능선의 경치를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며 걸으면 된다. 하산길이 제법 길어 힘들 수 있으나 발밑만 보지 말고 고개를 들고 걸으면 연하봉에서 세석까지 유려한 능선이 보인다. 촛대봉의 기암과 세석의 고산 평지 또한 찬찬히 뜯어보길 권한다. 지금은 주목 군락지만 세석이 철쭉으로 붉게 타올랐을 그 어느 봄날을 상상해보길. 

중앙일보

세석대피소로 가는 길. [사진 하만윤]



지루한 벽소령 하산길



세석대피소에 도착한 일행은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와 시간을 가늠해보고 길을 좀 더 재촉하기로 한다. 벽소령까지 약 7km에 달하는 하산 길은 대체로 야트막하게 오르고 내리기를 수차례 반복해야 한다. 늦은 아침을 먹었음에도 어느 새 허기가 지고 밤새 달려오느라 잠까지 설친 탓에 간간이 졸리기도 할 터. 어찌 보면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구간이다. 그래도 잠시 쉬는 틈에 서로를 챙기는 일행이 있어 반드시 이기는 여정이리라.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관계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중앙일보

벽소령대피소에서 음정마을로 내려가는 초입. 5분여를 내려가면 임도가 나온다. [사진 하만윤]


벽소령에서 음정마을을 향해 하산 길로 들어선다. 조금만 내려가면 임도가 나 있어 힘들지는 않다. 6~7km 남짓한 하산 길에서 만나는 지리산 자락의 단풍은 이번 산행의 마지막 감동이자 즐거움이 된다.

중앙일보

음정마을로 향하는 길에 단풍이 좋다. 주위 능선들의 단풍과 어우러지면 더 아름답다. [사진 하만윤]


필자는 3년 전 이맘때쯤 음정마을에 들렀다. 아들과 함께 야심 차게 지리산 종주에 나섰으나 첫날 저녁부터 무릎이 아파 결국 절반도 채 걷지 못하고 이곳 음정마을로 하산한,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엔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위 풍경을 즐기며 그 길을 내려간다. 

중앙일보

2015년 11월께 아들과 나선 지리산 종주는 미완의 상태로 둘만의 버킷리스트로 남아있다. [사진 하만윤]


요즘 들어 무박 원정 산행이 제법 잦다. 금요일이면 퇴근하기 바쁘게 배낭을 꾸려 원정 산행에 나선다. 원정 산행이 아니더라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배낭을 둘러매고 집을 나서는 남편이 달가울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새로 시작한 글쓰기와 산행을 묵묵히 응원해 주는 것에 이 글을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더불어 산이 좋아 즐겨 산을 찾는 나 같은 이가 있다면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한 번이라도 마음을 표현해보길 권한다. 

중앙일보

중산리-법계사-천왕봉-제석봉-장터목-연하봉-세석-벽소령-음정마을. 거리 약 26Km, 시간 약 13시간 30분. [사진 하만윤]


하만윤 7080산처럼 산행대장 roadinmt@gmail.com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