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마음으로 찾는 남해의 산.. 어머니들의 산상기도 '금산39경'이 되다
경향신문남해 | 글 정유미 기자 ·사진 남해군청 제공
간절히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곳들이 있다. 하늘이 내린 땅이다.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기운이 솟는 곳을 사람들은 ‘영지(靈地)’라 부른다. 경남 남해의 금산 보리암도 그 중의 하나다. 원효가 중생의 고통을 씻어주는 대자대비 관음의 빛줄기를 맞아들여 득도한 곳이고,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려 대업을 달성한 곳이라니 영지라 할 만하다. 묵직하고 단단한 기암괴석과 숲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뭇 섬들이 뿌리를 내린 푸른 바다와 맑은 바람이 있는 풍광만으로도 신령스러운 기운이 모여 있을 것 같다. 법정 스님은 “단지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염하는 것이 기도”라고 했지만 필부들은 소망을 염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기도가 이뤄지길 염원한다. 그래서 영지를 찾는다.
이성계의 기도가 이뤄진 산, 한 해 70만명 이상이 찾는 기도처다.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금산을 오르는 ‘어머니’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수능이 끝나면 자녀와 함께 한 번 더 찾는다고 한다. 힘들 때 복을 비는 기도처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장이기도 하다.

경남 남해 금산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단정하게 자리 잡은 보리암은 강화 보문사, 양양 홍련암과 함께 대표적인 관음기도 도량으로 꼽힌다. 소원을 빌면 평생 한 번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영지로 알려지면서 수능철이면 전국에서 기도객들이 몰린다. |
금산 보리암에는 사시사철 기도객들이 몰린다. ‘해수관음상에 기원하면 평생 소원을 한 번은 꼭 들어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다가오면 보리암은 더욱 붐빈다. 수능을 보름 앞두고 보리암을 찾았다. 수많은 어머니들이 무릎이 시리도록 절하며, 자식과 가족의 성공과 안녕을 빌고 있었다.
■두 손을 모은 어머니들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2065번지. 금산은 백두대간 정맥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동남쪽 끝자락에 우뚝하다. 해발 705m라고 하지만 차로 가는데도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10분 넘게 올라야 했다. 예전엔 보리암에 가려면 상주리에서 도보로 한 시간 넘게 고행하듯 산길을 걸어야 했다. 반대방향 복곡저수지 쪽에 도로가 나면서 요즘은 산길 대신 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보리암 입구에 도착하자 소망을 이고 진 어머니들이 줄을 이었다. 보리암은 24시간 문을 개방하는데 주말에만 4000~5000명, 한 해 70만~80만명이 찾는다고 한다. 보리암은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 양양 홍련암과 더불어 대표적인 관음기도 도량이다. 속된 말로 ‘기도발’이 잘 듣는 곳들이다.
보리암은 금산 절벽에 서 있다. 오르는 길은 경주 석굴암 오르는 길을 닮았다. 나무들은 숲을 이루고 하나 둘 소원이 모여 쌓인 돌탑들은 정성스럽다. 앞서 가던 사람들이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합장했다.
도량은 가을빛 금산을 가사처럼 두른 채 기도객들을 맞고 있었다. 관음상이 있는 보광전까지는 계단으로 이어졌는데 세어보니 108계단이다. 사람들은 내려가는 길에 100원짜리나 500원짜리 동전을 바위에 붙였다. 자녀들이 수능시험 잘 치러 원하는 대학에 착 붙기를 바라는 마음이겠다. 보리암 소담 스님은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삼삼오오 찾아와 수능을 잘 치르게 해달라고 2~3일씩 기도하는 어머니들이 많다”며 “1000개의 눈과 1000개의 손을 가진 관음상이 밤새 철야하는 어머니들의 지극정성을 보고 듣고 있다”고 말했다.
관음상이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법당은 웅장하지는 않지만 엄숙했다. 어머니들이 두 손을 모으고 엎드려 절했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어머니들은 밖에서 고개 숙여 합장했다. 서울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왔다는 김남희씨(53)는 “아들이 수능을 치르는데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식과 손주를 위해 기도하러 왔다는 70대 할머니의 굽은 등은 경건해서 더 애틋했다.

보리암 해수관음상 앞에서 기도객들이 소원을 빌고 있다. |
법당을 나와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해수관음상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앞에는 나지막한 돌탑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 3층석탑이다. 나쁜 기운을 눌러주고 약한 기운을 채워준다는 탑이다. 해수관음상과 석탑의 좌우로 말로만 듣던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쌀쌀한 날씨인데도 기도객들은 차디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댔다. 그 옆에선 또 다른 기도객들이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수능 100일 전 집을 나선 어머니들도 있어요. 불철주야 간절히 기도하면 자식을 명문대에 보낸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어머니들이 많지요.” 남해 문화관광해설사 정문영씨(49)는 “서울은 물론이고 매일 전국 각지에서 보리암을 찾는 행렬이 끝이 없다”며 “수능이 다가오면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여행의 최고 경지는 영지 여행”
보광전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 선은전이 있다. 선은전은 이성계가 왕이 되길 비는 제사를 100일 동안 지낸 곳이다. 지리산, 계룡산 등에서도 기도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자 이곳을 찾은 것이다. 보광전에서 내려가는 길은 돌계단이었다. 깎아지른 절벽에 놓인 계단을 내려가는데 선은전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나무숲을 지날 땐 미끄러워 넘어질 뻔했다. 바닥이 온통 단단한 화강암인 탓이다.
“와! 대다.” 경상도에서 온 어머니들인지 연신 이마의 땀을 훔치며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금산의 명당 중 명당에 자리 잡은 선은전은 여기가 대업을 이뤄준 기도처가 맞나 싶을 정도로 별다른 특징은 없다. 오히려 선은전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가 장관이었다. 바위에 등을 대고 눈을 감은 채 수평선을 당겼다 풀었다 해본다. 이성계도 이곳에 서서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야망을 키웠으리라.
남해는 ‘한 점 신선의 섬’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그 중에 최고는 역시 금산이다. ‘금산38경’은 괜한 말이 아니다. 국토 남단에서 뭇 별들을 거느리고 밝게 빛나는 노인성(남극성), 해가 남쪽에서 뜨는 것으로 착각하게 할 만큼 장엄한 일출경, 두 개의 굴이 무지개처럼 뚫려 있는 쌍홍문, 바위 모양이 화엄의 한자 화(華)를 닮았다는 화엄봉, 암반 섬 한복판에 동굴이 있는 세존도…. 조금 과장하면 금산은 발길 닿는 곳, 눈길 닿는 곳이 모두 경승지다.

이튿날, 보리암에 다시 올랐다. 영지의 기운을 받은 덕분일까. 오르는 길이 첫날처럼 힘들지 않았다. 어제 무심코 지나친 기암괴석들이 말을 거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그저 무심한 바위들이 아니었다. 억울함을 당한 사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여인, 괴로워하는 개나 돼지 형상 등 하나하나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태순 작가는 일찍이 이 바위들을 중생들의 얼굴로 읽고 “원효 시절보다 더 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 나름으로 참회하고 속죄하는 청정의 신성공간으로서 이 산상기도처는 소중하다”고 말했다. 보리암은 복을 비는 기도처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성찰해 주변 사람들에게 밝음을 주는 기도처이기도 하다는 뜻이겠다.
보리암을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두 번은 찾는다고 한다. 힘들고 괴로울 때 새로운 기를 받아 다시 시작하기 위해 한 번, 한발 더 나아가 큰 꿈과 뜻을 펼치기 위해 또 한 번 보리암에 오른다는 것이다. 수능 전에 혼자 왔던 어머니들도 수능이 끝나면 자식과 함께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에너지 충전이 필요하거나 깨진 꿈, 헝클어진 삶을 복원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보리암에 가 볼 일이다.
<남해 | 글 정유미 기자 ·사진 남해군청 제공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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