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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임대차법 개정 한달②] “장사 안돼 나갈 판인데, 10년 보장 무슨 소용”…한숨쉬는 ‘○리단길’

[상가임대차법 개정 한달②] “장사 안돼 나갈 판인데, 10년 보장 무슨 소용”…한숨쉬는 ‘○리단길’

-자영업자들 회의적 “개정된 상가입대차보호법 혜택 받는 사람 적을 것”

-“최저임금까지 오르면서 인건비 부담…장사 접을 판인데 임차 10년 무슨 소용”

-“재계약 때 불리하게 작용할까” 오히려 걱정도


헤럴드경제

지난 5일 휴일을 맞아 사람들로 붐비는 연남동 일대[사진=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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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정세희ㆍ성기윤 기자] “방송에 나오는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니까요. 경리단길 꼴 나면 어떡해요.”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만난 한 한정식집 주인 이모(53) 씨가 건너편 파스타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식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손님 5~6명이 줄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가게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손님들이 ‘핫한 동네’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실제 이 골목은 얼마 전 이 가게가 방송에 소개된 뒤 손님이 2~3배로 늘었다. 이웃 가게가 인기를 끌면서 이 씨의 가게를 찾는 사람들도 덩달아 늘었지만 이 씨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는 “곧 재계약해야 하는데 상권이 뜨면서 임대료까지 뛸까봐 오히려 걱정만 늘었다”고 전했다.



지난 13일 서울 경리단길 입구에 임차인을 구한다는 부동산 광고가 붙어있다. 경리단길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임대료가 크게 오른 대표적인 상권이다. [사진=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p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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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자영업자 대부분은 상가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법의 허점을 이용해 건물주가 임대료나 관리비를 올릴까 봐 걱정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마포구 서교동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50대 이인영(가명) 씨는 권리금 회수 보호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내용으로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지만, 건물주가 언제 나가라고 할지 몰라 속앓이하는 것은 여전하다고 했다. 그는 “들어올 때 건물 전체 시설을 개보수 하는데 3억7000만원이 들었다. 나갈 때 시설에 대한 권리금을 어느 정도는 받아서 나가야겠지만 건물주가 갑자기 재건축 등을 이유로 나가라고 할까봐 항상 걱정이다”고 말했다.

계약갱신요구권 보장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한 내용에 대해서는 “장사가 안되는데 임차 10년 보장이 무슨 소용이냐”고 딱 잘라 답했다. 그는 올해 비싼 임대료에 최저임금까지 오르면서 인건비가 큰 부담으로 다가와 6명이던 종업원을 절반으로 줄였다. 이 씨는 “사실 10년이나 계속 장사를 할 만큼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은 10% 정도 밖에 안 될 것”이라면서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면서 10년을 보장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상인들도 상가 임대차보호법의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보였다. 10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영업을 유지할만큼 소위 ‘잘 되는’ 가게가 많지 않은 만큼 개정된 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좁은 데다, 10년으로 보호 기간이 늘어난 부분이 오히려 재계약 때 임차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게 이유였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서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7) 씨는 “인위적으로 계약갱신기간을 묶어둔다고 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개정안이 적용 안 되는 기존 임차인을 내몰고 새로운 임차인에게 임대료를 올려 받는 꼼수가 이미 이뤄지고 있다. 가뜩이나 유행이 시시각각 달라져 익선동 인기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임대료는 계속 오르고만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익선동 근처 인사동, 삼청동 일대는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돼 사람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였다. 지난 연휴기간 방문한 북촌 한옥마을은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 4~5팀만 보일 뿐 한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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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의 해방촌의 모습. [정세희 기자/say@heraldcop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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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 사이에선 한번 뛴 임대료는 쉽게 내려가지 않는데 공시지가 상승 등 임대료 상승을 부추길만한 요인들만 더 늘었다는 푸념이 나왔다. 망원역 근처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40대 김모 씨는 “최저임금이 올라서 안 그래도 어려운데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월세 상승 압박도 있어 내년에 재계약을 하게 되면 집주인들은 월세를 더 올리지 않겠냐”면서 “임차인들은 점점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소규모로 임대임차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적인 것보다 ‘카더라’하는 말이 더 중요하다. 법망을 피해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법적인 규제보다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몰락한 생생한 사례들이 무차별적인 임대료 상승을 막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말도 나왔다. 종로구의 한 부동산중개소 관계자는 “이태원 경리단길이 임대료를 계속 올리다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망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임대인들도 분명 느낀 점이 있었을 것”이라며 “실제로 건물주 사이에서도 최근 무조건적으로 임대료를 올리는 게 답이 아니다라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sky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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