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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사투리 대신 본토 발음" 中보이스피싱 조직 한국인 노렸다[수사반장]"

연변사투리 대신 본토 발음" 中보이스피싱 조직 한국인 노렸다[수사반장]"


지난달 26일 새벽 경기남부지방경찰청 112신고센터에 알 수 없는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전화는 "카카오톡 아이디 OOO"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 뚝 끊겼다. 발신처를 추적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국내(國內)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정선호 경기 이천경찰서 강력1팀장이 일러준 카카오톡 아이디로 대화를 시도했다.

"경찰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중국에 감금됐습니다. 도와주세요."

조선일보
두 사람은 카카오톡으로 긴 대화를 나눴다. 신고한 사람은 김성만(29·가명)씨였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인터넷에서 ‘해외 무역회사’의 채용광고를 접했다. 중국에 고수익을 보장하는 일자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씨가 광고를 낸 ‘해외 무역회사’로 전화하자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 값까지 회사가 부담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렇게 김씨는 ‘차이나 드림’을 품고, 지난달 16일 중국 옌지(延吉·연길) 차오양촨(朝陽川)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회사 사람 4명이 마중까지 나왔다. 일행은 옌지 시내의 한 빌라에서 첫날밤을 묵었다.

하지만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들은 무역회사 직원들이 아니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었다. 이들은 김씨를 협박했다. "지금부터 대포통장을 만들어라. 한국에 전화를 걸어. 여기서 살아서 돌아간 사람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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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중국에 도착한 이튿날부터 한국에 무작위 전화를 걸어 "통장명의만 빌려주면 한 달에 400만원 지급하겠다"고 속이는 일에 동원됐다. 날이 갈수록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김씨를 ‘소중한 인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옌볜(延邊·연변) 사투리’ 없이 정확한 표준어 발음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감시망은 이때부터 점차 느슨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옌볜사투리=보이스피싱’으로 인식되면서 사기 치기도 어렵게 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어민’ 김씨를 중국으로 유인·납치한 겁니다. 조선족이 대부분인 이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본토 억양’ 김씨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처음에는 감금하고 윽박질렀지만, 차츰 김씨를 대우해주기 시작했지요. 사우나를 데려가고 밥도 사주면서 도리어 환심을 사려고 했습니다." 정선호 강력팀장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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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경찰서 형사들과 김씨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 사진 뒤편에 보이는 하늘색 건물이 김씨가 감금됐던 빌라다. /이천경찰서 제공


김씨는 감금 9일째 경찰에 신고를 감행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카카오톡 아이디’만 112에 재빨리 말하는 기지(機智)를 발휘한 것이다.

경찰도 순발력 있게 대응했다. 중국 선양(瀋陽) 영사관에 파견된 경찰 주재관이 옌볜으로 급파됐다. 구체적인 위치 정보는 카카오톡 대화로 파악했다. "보이스피싱 일당과 갔던 사우나 간판이 기억납니다. ‘OO사우나’였던 것 같습니다. 뒤로는 강이 흘렀고, 주변에 PC방도 있었습니다."

경찰은 단편적인 위치 정보를 토대로 좁혀 들어갔다.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 것은 지난달 28일 새벽 2시였다. 김씨가 일러준 6층짜리 하늘색 빌라가 옌볜 시내에서 발견됐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본거지를 급습한 것은 같은 날 오전 8시 55분. 선양 대사관의 경찰 주재관과 중국 공안이 잠금장치를 부수고 들어가 일거에 제압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 4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납치된 김씨도 빌라 내부에서 구했다.

선양 주재 한국 영사관은 "김씨가 범행에 가담하긴 했지만, 순전히 보이스피싱 일당의 협박에 의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중국 공안은 조사 4시간 만에 김씨를 풀어줬다.

경찰은 ‘해외 고수익 보장’이라는 광고로, ‘본토 발음’ 한국인을 유인·납치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더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씨는 "앞으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고 착실히 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흐레 동안 옌볜에 감금된 김씨는 지난달 29일 무사히 귀국했다.

[한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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