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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 자료☆★★/★☆ 자연 풍경☆

마이산(馬耳山) 탑사(塔寺)..!!

 

진안군(鎭安郡) 마이산(馬耳山) 탑사(塔寺)

소재지: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367(동촌리 8)

 

 

 

 

 

 

 

 

 

흔히 제 고장의 운치 있는 풍광을 관동팔경, 단양팔경 하듯이

그 고장 이름을 붙여 무슨무슨 팔경하는 것을 본다.

 

조선시대 문학과 그림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던

중국의 소상팔경()을 본뜬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

 

굳이 여덟 가지로 짝맞추어 부르는 이유도 모르겠거니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아리송하다.

 

때로는 좀 억지스런 구석이 없잖아 있지만,

이른바 팔경(八景)이라는 것들이 남들이야 알아주든 말든

그 고장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풍치임에는 틀림없겠다.

 

 

 

전라북도 진안군 마이산 서봉 아래 탑사에는

80여 기의 자연석 돌탑들이 쌓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 탑들 중 특히 가장 윗부분에 위치한 탑 ~천지탑~ 이 다른

탑들에 비하여 한층 그 규모나 결구와 조형미가 돋보인다.

 

탑의 구성을 보면 자연석을 원뿔형으로 쌓아 올린 탑이 5기,

넓적한 자연석을 포개 쌓은 외줄 탑이 80기에 이른다.

 

 

 

 

 

 

 

 

 

 

 

 

 

 

 

 

 

 

 

 

 

 

 

 

 

 

 

 

 

 

 

 

<이갑용 처사(李甲龍 處士)>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효령대군 15대손 이성우의 차남으로 태어나

암울한 시대에 농사를 짓고 살던 이갑용(李甲用)은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묘옆에 움막을 치고 3년간 시모상을 지낸후 한국의 영산을 두루 다니다가

 

25세 때인 1885년(고종 25년) 명성황후가 살해되는 을미사변

전해 듣고 입산(入山)하여 마이산(馬耳山)에 머물면서

 

솔잎 등을 생식하며 수도하던 중, 꿈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돌탑을 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현재 마이산 탑사(塔寺)에 쌓아올린 석탑(石塔)은

혼자서 축성(築城)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돌탑을 축성

(築城)하는 방법과 과정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1957년 98세로 생(生)을 마감하였다.

 

 

탑(塔)을 만들어 시물(施物)과 사람을 모으고, 그 시물(施物)로

송아지를 사서 길러 독립운동에 이바지 한 농부 이갑용.

 

비록 배운 바 없어 글자 하나 아는 것 없는 흔한 농부였으나,

농부였기에 가능한 할 수 있는 자신의 방법대로 독립운동

선택하였는데 당시 탑을 쌓고 소를 길러서 독립운동

하는 일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이산의 돌답은 몸체에 해당하는 탑신의

돌멩이가 밑에는 '음돌'로, 위에는 '양돌'로 이루어져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 박아둔 '샛돌'도 탑신에 물려 있어 탑신의

움직임에 같이 이동하면서 탑신을 잡아줬다고 한다.

 

10년 동안에 120여 개에 달하는 여러 형태의 탑을

쌓았다고 하는 이갑용은 글자 한 자 모르는,

책이라고는 한번 펼쳐본 적도 없는 농부였다.

 

 

 

 

 

 

 

 

월광탑(月光塔)

 

 

 

 

 

 

 

 

 

 

 

 

 

원뿔형 탑에는 각 이름을 부여했는데 위 천지탑 2기를 비롯하여

탑 무리 앞~남서쪽~ 부분에 좌로부터 월광탑, 약사탑, 일광탑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는 사찰 약사전(殿)에 있는 약사여래의 협시불로

좌측에 월광보살, 우측에 일광보살이 위치한 데서

이를 본떠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갑용은 10여년을 아무 말 없이 뜻하는 바에 몸을 바쳤다.

오직 탑을 쌓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작업을 비웃거나 허투루 보았으나,

어느덧 탑이 하나둘 완성되어 가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외줄 탑 중 규모가 웅대한 것은 천지탑 앞에 쌓여진 오방탑()인데

동서남북 사방과 중앙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동서남북의 방향은

일치하지는 않고, 북동, 남동, 북서, 남서쪽을 가리키고 있다.

 

천지탑과 오방탑을 볼 때 이 탑들은 음양오행 탑이라 볼 수 있다.

천지탑은 음양탑의 다른 이름이고, 오방탑은 오행탑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섬진강(蟾津江) 발원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섬진강의 발원지를 중대산

또는 마이산으로 보았고, 『택리지』에도 역시

마이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 「지리전고」에는

이렇게 실려 있다.